▲ 사진=오마이뉴스 방송 캡처



조금 오래 전 일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을 거치며 막 대선주자로 부상할 때였다. 그는 앞 머리 숱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인가 머리숱이 점점 늘어나 새카맣게 변한 적이 있었다. 그는 강남의 한 업소에서 머리 시술을 받아 머리가 새카맣게 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보도하려 이 전 대통령측에 확인을 했더니 역정을 내며 극구 아니라고 부인을 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는 그렇게 머리를 심으며 '관리'를 한 것이 밝혀졌다. 정치인의 '외관'은 상당히 중요하다. 머리숱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최근에는 황교안 전 총리의 머리숱도 화제가 됐다. 수년 전부터 일부 사이트에서 그의 머리가 가발이라는 의혹이 제기됐고 지금도 포털사이트에 '황교안'을 검색하면 '가발'이라는 단어가 자동연관어로 뜬다.


설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6일 황 전 총리는 서울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출입기자들과 오찬을 했다고 한다. 담소 중 조심스레 가발 질문이 나왔다. 답은 비교적 단호했다. 그는 "만져 보세요"라며 웃었다. "보면서도 그런 질문을 한다"고도 했다. 항상 일정한 스타일이 '의혹'을 부른다는 점을 의식한 듯 "스타일을 바꿔보려고 한다"는 말도 했다. 만져보라고 할 정도였으니 가발이 아니라는 점을 강하게 어필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른 민감한 질문에는 선명한 발언 대신 모범 답안을 내놓았다고 한다. 탄핵 평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 필요성 등을 물으면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자",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보면 결론 나온다" 등의 답을 내놓는다.


'친황'이니 '친박'이니 하는 말에는 "굳이 계파를 말하자면 나는 '친한'(친대한민국)"이라고 한다. 1월15일 입당한 이후 계속 그랬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경쟁자들의 날 선 비판에도 맞대응한 적이 없다. "그분들도 보수의 귀한 자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기 위해서 함께 힘을 합쳐야 한다"며 '통합'만 줄곧 강조했다.


가장 유력한 당 대표 후보이자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 1위(리얼미터 1월29일 발표)로서 어쩌면 당연하다. 굳이 논란을 만들 이유가 없다. 정치 새내기가 당에 들어오자마자 신경전을 벌이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하지만 언제까지 모범생일 수 없다. 명망과 경력, 이미지로 단숨에 대선주자로 떠올랐다가 바람처럼 사라진 헤비급 신인들은 많았다. 게다가 넘어야 할 벽도 양쪽에 있다. 중도나 왼쪽에서는 친박이라하고, 오른쪽 일부에서는 '주군이 감옥에 있는데…'라며 불편함을 감추지 않는다.


실력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지금부터 보수 통합의 로드맵, 경제와 안보 정책을 하나하나 제시해야 한다. 당 대표가 되기 위해, 대권을 위해 가혹한 검증과 평가는 필수다. 두루뭉술하고 듣기 좋은 말은 옳지만 유효기간이 짧다.


황 전 총리의 높은 지지도는 새로움에 목마른 보수층의 간절함이다. 탄핵 사태 이후 마음 붙일 곳 없는 보수 성향 국민들에게 실력 있는 지도자는 절실하다.


기대가 크면 무서운 법이다. 황 전 총리가 앞으로 보여줄 비전과 행보에 따라 열광 혹은 싸늘함이 몰려올 수 있다. 당장 보름 후 전당대회를 앞두곤 당권 후보들이 보이콧을 선언하며 당이 혼란에 빠졌다. 잘잘못을 떠나 논란의 중심에는 황 전 총리가 있다.


가발인지 만져보라고 했을 때야 진짜 만지는 사람은 없었지만 앞으로는 다르다. 내놓는 청사진을 구체적으로 만져보고 당겨보고 풀어헤쳐 볼 것이고 그렇게 해야 한다.


한 언론인이 그의 가발을 언급하면서 정치적 미래를 우려하는 글을 썼다. 적극 공감하면서 덧붙이고 싶은 것은, 황 전 총리의 애매모호하고 어정쩡한 정치적 행보에 대한 정치의 희화화다. 그는 누가 뭐래도 '박근혜의 아들'이다. 그걸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그런 '모태'를 부정하고 있다. '친박'이 아니라고 한다.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누가 들어도 아닌 말을 그는 버젓이 해댄다. 그리고 '친한'이라고 우긴다. 그 간극을 국민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비웃는다.


차라리, 나는 친박이었고 지금도 친박의 정치적 가치와 억울한 오해를 풀기 위해 당당하게 정치를 하고 싶다고 외쳐야 한다. 그게 상식이다. 정치가 이렇게 왜곡된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을 정치인(권력자)들은 아니라고 우기며 위선적이고 이기적이고 이중적인 행보를 보이는 데 있다. 초등학생들도 이해하는, 누구나 수긍하는, 그런 당당한 정치인이 등장해야 한다. 보수는 더욱 그래야 한다.


그랬을 때 설령 가발이라고 한들, 국민들은 그쯤이야 우습게 넘어가며 이해해줄 것이다. 가발 논란에 대해 "만져보라"고까지 당당하게 말하는 황교안 전 총리가 왜 '친박'을 '친박'이라고 하지 못하는 것인지...


그런데 그의 머리 누구도 만져본 적이 없다. 진짜 머리 맞을까?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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