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압도적 득표율로 자유한국당 대표에 선출됐다. 그가 대표에 당선된 이유를 세 가지 정도로 보고 있다.


첫째, ‘신상 효과’다. 황교안 대표는 정치 신인으로서 신선함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같은 탁류 속에서 그는 상대적으로 1급수로 통한다.


둘째, ‘주류 효과’다. 그는 법무부 장관,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냈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기본적으로 관료 출신 고위 공직자에 대한 신뢰가 있다. 더구나 기독교 신자다. ‘종북세력’에게 정권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일부 대형교회 목회자나 신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다.


셋째, ‘홍준표 효과’다. 홍준표 전 대표는 기분 나쁘겠지만 보수는 기본적으로 점잖은 사람을 좋아한다. 황교안 대표는 말과 행동이 점잖다. 법무부 장관이나 국무총리 시절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 의원들에게 심하게 공격을 받을 때도 언성을 높인 일이 없다.


2013년 9월 관상가 신기원 씨가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한 일이 있다고 한다.


“마의상법은 관상의 완성을 목소리라고 본다. 다른 모든 것이 좋아도 목소리가 나쁘면 완벽한 관상이 못 된다. 그런 예가 바로 김종필씨다. 그는 세상에 없는 귀상이다. 그런데도 그가 최고 권좌에 못 오른 것은 탁성 때문이다. 반면 최근 공직자 중에서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목소리까지 갖춘 귀상이다.”


신기원 씨의 말대로라면 황교안 대표가 최고 권좌 직전까지 오른 타당성이 보인다. 그런데 과연 지존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을까? 정치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회의적이다. 정치인의 관상은 좋다고 할 수 있지만, 정치인이 살아온 삶의 궤적과 그가 가진 가치관 등 정치인의 ‘내용물’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황 대표가 당수에 오르자마자 이런 분석을 하는 게 적절치는 않지만, 벌써부터 당 안팎에서는 그가 과연 얼마나 버틸지 내기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 자유한국당이 어떤 당인가? 한국 정치의 기득권층 집합체다. 전두환 정권 민정당 시절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본능적인 권력유지 속성이 있다. 뺏기는 것을 용납 못한다. 당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입당 43일짜리 신출내기한테 당권을 맡기는 게 치욕으로 받아들인다.


자유한국당에는 113명의 국회의원이 있다. 국회의원들은 국회의원이 아닌 사람을 정치인으로 잘 인정하지 않는 속성이 있다. 원외 권력은 유력한 대권주자라도 잘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원외 당대표는 리더십에 한계가 있다. 나경원 원내대표의 성격상 원외인 황교안 대표가 국회 일에 개입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자유한국당에는 벌써부터 두 사람의 신경전과 불화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황 대표가 넘어야 할 1차 허들은 바로 이것이다. 당내 의원들을 어떻게 통솔할 것인가가 급선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그를 지지하는 선봉대가 있어야 한다. 황 대표는 아마도 내년 총선 공천을 보장하면서 그의 친위부대를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세력이 몸빵을 해나가줘야 그나마 당 리더십을 몇개월이라도 연장할 수 있다.


황교안 대표 또한 원내에 진입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여야 전략통 중에는 4·3 재보선 경남 창원성산에 황교안 대표가 전격 출마할 가능성을 점치는 사람들이 있다. 비슷한 전례가 있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1999년 6·3 재보선 서울 송파갑에서 당선됐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2011년 4·27 재보선 경기 분당을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러나 선거에 출마하는 일은 낙선이라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황교안 대표가 과연 그런 정치적 결단을 내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황 대표의 전투력도 그의 당수 생명을 단축시킬 위험요소다. 27일 전당대회에서 황교안 대표의 연설은 세 후보 가운데 가장 어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장에 모인 기자들도, 대의원들도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정치인에게 연설은 단순한 포장이 아니다. 연설은 곧 메시지요, 진정성이다. 정치적 역량이다. 이런 역량은 단박에 완성되는 게 아니다. 부딪히고 깨지는 과정에서 쌓인 학습효과의 결과물이다.


대외적으로 황교안 대표는 당장 문재인 대통령을 상대해야 한다. 현직 대통령은 청와대라는 참모 조직과 집권여당이라는 정치적 기반을 갖고 있는 권력자다. 버거운 상대다. 더불어민주당의 이해찬 대표는 더 벅찬 상대다. 이해찬 대표는 산전수전 다 겪은 7선 국회의원이다. 이해찬 대표가 그를 '가지고 놀' 가능성이 농후하다. 전투에서 견제능력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게 아니다. 기싸움에서 밀린다면 당도 어정쩡하게 따라갈 수밖에 없다.


황교안 대표는 의원수 113명의 제 1야당의 당수다. 국정을 견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막중한 책임이 놓여 있다. 출발은 그의 권력욕에서 시작됐지만, 이제 실전이 시작되면 그의 불행과 실패로 끝나는 게 아니다. 산적한 국정현안과 정치 갈등을 풀어내야할 국정운영의 한 파트너다. 그가 무력하고 힘이 없고 어리버리하면 국정은 일방적으로 줄달음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제대로 가는 길이라면 야당의 존재감이 없어도 괜찮겠지만, 권력의 속성은 타락과 부패를 동전의 양면처럼 가지고 있다. 힘센 야당이 필요한 까닭이다.


황 대표는 이제 모든 반대세력의 표적 한 가운데에 섰다. 그 강단 있는 홍준표 전 대표도 지방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황 대표는 홍 전 대표에 비하면 몇 수 아래다. 그에게 분명 총선 전까지 한 두 차례 버티기 힘든 국면이 올 것이다. 유력한 전장은 공천이 되겠지만 그 전에 원내의 현안을 두고 반대파들과 극렬하게 대립하는 상황이 있을 것이다. 아니면 반대파들이 그런 상황을 의도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 지금부터 한창 모의가 시작되고 있을 것이다.


2020년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이 패배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지면 의원들이 가만히 앉아서 죽으려고 할 것인가? 자유한국당 당원과 국회의원, 그리고 보수 세력 전체가 나서서 황교안 대표를 끌어내릴 수도 있다. 아직 정치신인에 불과한 그가 감당하기에는 자유한국당의 기득권 세력의 발톱은 너무도 매섭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5일 아침 마지막 최고위원회의를 했다. 누군가 ‘마지막까지 수고가 많았다’는 말을 했습니다. 김병준 위원장이 웃으며 “마지막이 아닐 수도 있다. 당이 또다시 어려워지면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고 돌아올 수도 있다”고 우스개를 했다고 한다. 본인의 욕망이 숨어있기도 하지만, 출범하는 황교안 체제를 보는 우려의 표현일 것이다.


자, 여러분들은 황교안 대표가 내년 총선 때까지 무사히 직을 유지해 선거를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아니면 중도에 낙마하게 될지, 주변 사람들과 내기를 한번 하는 게 어떨까요? 저는 낙마쪽에 걸겠습니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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