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YTN 뉴스 캡처



“과잉의욕” “마음이 나쁘신 분” “공감능력, 감수성 떨어지는 분”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첫 만남에서 ‘드루킹’ 사건을 언급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에 대해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이 대표는 5일 오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전날 황 대표의 ‘드루킹’ 언급에 대해 “갑자기 그 질문이 툭 튀어나와 저도 참 놀라웠다”며 “새 당 대표가 전투력을 제대로 보여주겠다고 하는 과잉 의욕이 있으신 거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전날 오후 YTN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인터뷰에서도 “그 이야기를 황 대표가 계획해 준비해오셨던 발언이라면 참 마음이 나쁘신 분이고, 순간적으로 그 이야기가 나온 것이라면 공감 능력이나 감수성이 굉장히 떨어지는 분”이라고 직격했다.


황 대표는 취임 후 처음으로 전날 국회 정의당 대표실을 방문했다. 황 대표는 취임 인사 첫 질문으로 “김경수 지사 댓글조작사건에 대해 당에서 어떻게 하고 계시냐”며 ‘드루킹’ 사건을 언급했다. 이 대표는 “정의당을 처음 찾아와서 드루킹 사건을 말씀하는 건 놀랍고 유감”이라며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황 대표 발언에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도 유감을 표시했다. 윤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의원총회를 주재하며 “(황 대표가)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으나 드루킹과 관련해 고 노회찬 전 원내대표의 아픔을 갖고 있는 정의당에서 그런 질문을 연이어 한 것은 예의에 어긋난 것이고, 강력한 유감을 표명한다”며 “정치의 예부터 갖추기 바란다”고 말했다.


노회찬 전 의원은 2016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드루킹’ 김동원씨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5000만원을 받은 의혹으로 특검 수사 대상에 오른 뒤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의당에게 드루킹 사건은 그것의 팩트를 논하기 앞서 당의 간판이었던 노회찬 전 의원이 자살을 했던 불행한 일이고 이는 여전히 정의당에게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당 대표라면 '정치협력'을 논하기 이전에 최소한의 예는 갖췄어야 한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연일 작심하고 비난을 하는 것도 노회찬 자살의 생채기가 아물기도 전에 정치적으로 언급하는 것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다. 소수정당이라고 해도 아직도 마음의 상중에 있는 이들의 가슴에 소금을 뿌리는 일은 적절치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그렇다면 황교안 대표는 정말 공감능력이 떨어져 이런 발언을 한 것일까. 일단 두 가지 정도를 생각해볼 수 있다. 아직 초짜 정치인의 틀을 벗지 못한 황 대표는 당 정무라인에서 '정성스럽게' 써준 '말씀자료'를 충실히 되내었을 가능성이 크다.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한 당 정무라인의 공식 멘트였을 것이다. 대체로 당 대표의 정치단체 방문은 공개된 자리이기 때문에 개인 메시지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돌출발언이 아닌 이상 당 정무라인에서 미리 몇 가지 포인트를 정리해서 '꼭 이 말씀은 해야 한다'고 보고하게 되고 대표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그 말씀자료는 꼭 소화하고 나와야 한다.


그런데 백번 양보해서 당에서 써준 것이라고 해도 그가 정치인의 프레임에서가 아니라 상식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김경수 드루킹' 이야기를 덕담하는 자리에서 눈치 없이 쏟아낼 정도로 미숙한지 의구심이 든다. 지금까지 비단길만 걸은, 성숙하지 못한 엘리트의 전형적인 일방통행식 행동을 여기서 볼 수 있다. 상대가 어떤 어려움에 있든, 일단 자신의 일에만 신경을 쓰고, 자신이 해야할 말만 쏟아내는, 그런 비뚤어진 엘리트 의식의 발로다. 상대의 이야기는 귓등으로 흘려듣고 본인의 이야기만 하는 오만함이 평소의 행동에 배 있는 것이다.


이정미 대표가 당 정체성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황 대표에게 큰 덕담은 기대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황 대표가 이 대표의 '기나긴 말'(황 대표의 은연중 표현)이 끝나기가 무섭게 드루킹 드립을 시전한 것이다. 이 대표의 '일장연설'에 아마 기분이 상했을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그 메시지에 대한 답부터 내놓는 게 예의다. 대화에는 순서가 있고, 특히 정치적 대화에서 '수순'은 굉장히 중요하다.


앞으로 자유한국당은 좋든 싫든 정의당과 함께 드루킹 사건에 대해 공동 대여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하지만 시작부터 거대야당의 일방적인 요구만 쏟아낸 까닭에 앞으로 드루킹 사건뿐 아니라 다른 정책공조도 지난한 길이 될 것이다. 정의당을 민주당에 갖다바친 꼴이 된 셈이다.


그런데 왜 하필 '김경수 드루킹'이었을까. 정의당에 가서까지 터부시 되는 말들을 쏟아낸 것에는 황 대표의 향후 정국운영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봐야 한다. 황 대표는 자신의 체제가 총선 전까지 유지될지에 대해 상당히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 우군이 많지 않다. 방패막이도 없다. 오로지 본인이 뚫고 나가야 한다. 과거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민정계'와 신진세력이라는 우군이 있었고 민주계에 맞설 수 있었다. 지금의 황 대표는 친박에 그런 기대를 할 수 없다. 이미 친박계와 전당대회 전 균열이 생겼기 때문이다. '친이'에 뿌리를 둔 나경원 원내대표는 그의 최대 적이다. 당 대표가 궐위되었을 경우 그가 김성태 전 원내대표처럼 당을 비상체제로 이끌고 갈 수 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황 대표의 낙마를 위해 몸을 던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황 대표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여론전'이다. 드루킹 사건을 두고 그는 '문재인 대통령 책임론'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대선불복까지는 아니지만 이 문제를 상시 정치쟁점화 시킬 가능성이 크다. 태극기부대의 은연중 기대를 드루킹 사건을 통해 무마시키려 할 것이다. 법조계 출신인 황 대표에게 드루킹 사건은 자신의 전공분야다. 이정미 대표에게 내뱉은 제 일성이 드루킹 사건이라면 앞으로 그가 어떻게 정국을 운영할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문제를 정치쟁점화 시켜 총선까지 끌고갈 것이다.


이정미 대표 지적처럼 그가 나쁜 마음을 가졌든 공감능력이 떨어지든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황교안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가 드루킹이라는 점이다. 과연 이 문제가(시시비비를 가리는 정도의 의미를 가진 것이라면) 그가 당 대표직을 걸 정도의 중차대한 문제인가? 이를 통해서 황교안이라는 정치인의 미래를 예측해볼 수 있다. 그는 전형적인 엘리트 법조인이다. 권력을 잡기 위해 국가나 정치에 해가 되든 안 되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이기기 위한 싸움에만 몰두하고 있다. 비뚤어진 호승심에만 매달려 있는, 억세게 운좋은 정치 엘리트 한 사람을 지금 우리는 마주하고 있다. 그에게 과연 밤을 새워 고민한 국가와 한반도 평화와 정치혁신에 대한 고민이 엿보이는가? 필자는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운좋은 법조엘리트의 탐욕과 오만이 보일 뿐이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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