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이명박 전 대통령(78)의 보석을 6일 허가했다. 법원은 이 전 대통령이 1심에서 징역 15년의 중형이 선고된 점을 고려할 때 보석을 위해선 엄격한 조건을 내걸어야 한다면서 이 전 대통령이 석방되는 대신 보증금 10억원과 주거·접견·통신 제한을 제시했다. 이 전 대통령이 이 조건을 수용하면서 구속된 지 349일만에 석방되게 됐다.


이날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 부장판사)는 이 전 대통령의 보석을 허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건강 상태가 좋지 않고, 어차피 다음달 8일 구속기간이 만료되는 상황에서 그 전에 재판이 종료되기 어렵다면 미리 풀어달라고 요청했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도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없다고 이 전 대통령 측은 주장했다.


재판부는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구치소 내에 의료진이 충분하다는 검찰의 주장을 인정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재판부는 “항소심 재판부가 새롭게 구성돼 구속기간이 만료되는 날에 판결 선고를 한다고 하더라도 43일밖에 없다. 증인 수를 감안하면 그때까지 충실하게 심리하고 선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보석을 허가했다.


재판부는 보석 조건으로 보증금 10억원과 주거·접견·통신 제한 등을 걸었다. 재판부는 “보석제도가 국민의 눈에 불공정하게 운영된다는 비판이 있다”며 “자택 구금에 상당한 엄격한 조건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이 전 대통령은 주거지인 논현동 사저에서 주거해야 하고 외출도 제한된다. 논현동 사저를 관할하는 강남경찰서장은 하루에 1회 이상 주거와 외출제한 조건을 준수하고 있는지를 확인해 법원에 통지해야 한다. 배우자나 직계혈족과 그 배우자, 변호인을 제외한 다른 이들과는 접견과 통신을 할 수 없다. 특히 재판부는 “재판에 필요한 사실을 알고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과는 일체의 접견 및 통신이 제한된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에게 “보석은 무죄 석방이 아니라 엄격한 보석조건을 지킬 것을 조건으로 구치소에서 석방하는 것”이라며 “보석조건 위반을 이유로 보석이 취소돼 재구금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측은 당초 진료를 위해 서울대병원에도 방문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입원 진료가 필요할 경우에는 오히려 보석 허가를 취소하고 구치소 내 의료진의 도움을 받는게 타당하다”며 “만약 진료를 받을 필요가 있다면 사유와 병원을 기재해 법원의 허가를 받고 진료를 받으면 된다”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 측은 이 조건을 수용했다. 보석 조건을 이행할 수 있겠느냐는 재판장 질문에 이 전 대통령은 “구속 전부터 오해의 소지가 있는 일은 하지도 않았다”며 “걱정 안하셔도 될 듯하다”고 답했다.


이에 따라 항소심 판결 선고가 나올 때까지 이 전 대통령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해 3월22일 구속영장이 발부돼 현재까지 1년 가까이 수감돼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보석 석방은 엄격한 조건이 걸렸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단 그의 석방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도 구속할 '정치적 근거'가 미약해지고 있다. 상황에 따라 박 전 대통령도 풀려나올 가능성이 있다. 법적 절차에 따라 전직 대통령의 석방이 이뤄지긴 하지만 정치적으로도 적폐청산의 마무리 수순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일단 문재인 정권으로서는 출범 초기 적폐청산작업을 통해 지지층을 묶어두는 효과를 보았지만, 북미회담 결렬과 최근의 미세먼지 책임론 등으로 적폐청산 아젠다도 그 약발이 떨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제 취임 초의 '컨벤션 효과'를 거의 다 소진한 셈이다. 이제 그야말로 실력으로 승부를 할 때다. 국정운영 2기를 맞아 적폐청산의 출구전략을 마련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진정한 국정철학을 실천해야 할 때다.


현재 상황은 결코 문 대통령에게 녹록치 않다. 북한이 해체했던 동창리 미사일 기지를 재건하려는 움직움이 포착되고 있는 등 북미회담을 둘러싼 한반도 정국은 다시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여기에 미세먼지 악화로 민심도 문 대통령에게 혹독한 편이다. 장기적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고, '2년 동안 뭘 했느냐'는 여론의 따가운 질책에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두 전직 대통령의 구금과 국론분열은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또 다른 부담일 뿐이다.


문제는 문 대통령 지지층의 역풍이다. 아직 두 전직 대통령의 재판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섣부른 석방은 지지층의 반발을 부를 가능성이 있다. 이럴 경우 문 대통령으로서는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전 대통령은 재판이 확정되면 다시 법정구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석방도 올해를 넘길 수 있다. 안팎으로 밀려오는 상황이 문재인 대통령을 더욱 옥죄고 있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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