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미사일? 발사체?…협상 판 깰라 ‘조심조심’


2019년 5월 4일 오전 9시 6분. 북한 강원도 원산의 한 해안. 검은색 몸체에 끝이 뾰족한 원통형의 물체가 북한식 표현대로 ‘번개 같은 섬광 속에 시뻘건 불줄기들이 대지를 박차고’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이 물체는 북한 북동쪽 해상으로 200여km를 날아가 목표물에 명중했다. 김정은 위원장도 직접 참관한 이번 훈련의 목적은 전술유도무기 운영능력과 화력임무 수행의 정확성을 검열하기 위한 것이라고 북한은 밝혔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그 어떤 세력이 우리의 자주권과 존엄, 생존권을 해치려든다면 추호의 용납도 없이 즉시적인 반격을 가할 인민군의 견결한 의지를 과시한 훈련은 가슴 후련하게 끝났습니다.”


발사 뒤 북한이 해당사진을 공개하자 무기 전문가들은 러시아제 이스칸데르 단거리 탄도 미사일과 매우 유사하다며 ‘북한판 이스칸데르’ 단거리 미사일이라고 분석했다.


그러자 우리 정부는 물론 미국도 미사일이라는 표현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다. 국방부는 물론 국정원도 이 발사체가 미사일인지 여부를 분석중이라며 제동을 걸었다. 미국 폼페이오 장관도 북한 발사체를 ‘그것들’이라고 지칭하면서 중장거리 미사일이나 ICBM은 아니라고 밝혔다.


혹시나 탄도미사일이라고 하면 모든 종류의 탄도미사일 실험을 금지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위반이 되고, 그동안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없었다는 걸 외교적 성과로 삼고 있는 트럼프 정부도 곤혹스러울 수 있다. 또한 ‘하노이 노딜’ 이후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북미 비핵화 협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탓에 한국과 미국이 미사일이라는 표현이 가져올 논란을 차단하려고 애쓰고 있는 건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 발사가 미국에 위협이 되지 않다며 대화 재개를 촉구했으며 국정원도 ‘북 발사체가 도발은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있다. 북한마저도 ‘자주권, 생존권을 해치려 한다면 추호의 용납도 없이 반격하겠다’는 발표 내용을 조선중앙통신 영문판에서는 삭제했다고 하니 하노이 노딜 이후 진전이 없는 북미 비핵화 협상의 동력을 살리려는, 아니 적어도 판을 깨지는 않으려는 미국과 한국, 북한의 노력이 눈물겹기까지 하다.


이런 와중에 문재인 대통령은 독일 유력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에 기고문을 싣고 ‘한반도에 총성이 사라지고 봄이 성큼 다가왔다’고 말했다.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라는 큰 꿈을 이야기 해 왔는데, 북미 대화가 완전한 비핵화와 북미 수교를 이뤄내고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된다면 한반도에 새로운 평화체계가 들어설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② 2017년 여름과 2019년 5월은 닮았다?


그런데 북한 미사일 발사와 대통령의 독일발 메시지는 2년 전인 2017년 여름을 떠올리게 한다.


2017년 8월 26일. 북한은 강원도 깃대령이라는 곳에서 비행거리가 250km 정도 되는 발사체를 동해로 쏘았다. 당시 정부는 개량된 300mm 방사포로 추정되나 정확한 특성과 재원은 정밀 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반면 미군 태평양사령부는 북한이 약 30분에 걸쳐 탄도 미사일 3발을 쐈으며 두 번째 미사일은 발사 직후 폭발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쏜 건 단거리 탄도 미사일이라는 것이다. 재원을 보면 2019년 5월 4일 북한이 쏜 발사체와 유사한 종류인데, 당시 미국은 단거리 탄도 미사일이라고 분석한 것이다.


2017년 7월 6일 문재인 대통령이 독일 쾨르버 재단 초청 연설에서 이른바 ‘새로운 한반도 평화 구상’을 북한에 제안한다. 한반도 비핵화, 북 체제 안전보장,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적대 행위 중단과 이산가족 상봉, 평창 올림픽 참가 등을 포함했다.


하지만 북한은 “대결의 저의가 깔려있는 잠꼬대 같은 궤변”이라며 매몰차게 반응했고, 자신들의 미사일 폭주는 계속 이어갔다.


2017년 5월부터 줄기차게 미사일을 쏘아 올린 북한.


2017년 7월 4일 ICBM급 미사일인 화성-14형을 김정은 참관 하에 쏘아 올리더니 7월 28일 화성-14형 시험발사 → 8월 26일 단거리 탄도 미사일 발사 → 8월 29일 중거리미사일인 화성-12형 발사 → 9월 3일 북한이 수소폭탄 실험이라고 주장하는 6차 핵실험 단행 → 9월 15일 중거리 미사일 화성-12형 발사로 이어졌다.


그리고 2017년 11월 29일 북한은 대륙간 탄도미사일인 화성-15형을 쏘아 올리면서 전 세계에 자신들이 미사일 강국임을 실물로써 증명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당시 화성-15형 발사를 승인하면서 “국가 핵 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을 완성했다”고 선포했다.


비록 문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 구상을 2017년 7월 제안했지만 북한은 초기엔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자신들의 시간표대로 그 해 연말까지 핵과 미사일 실험을 착착 진행한 것이다. 급기야 화성-15형 발사로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하면서 스스로를 핵 전략국가로 명명했다. 이 기간 동안 미국과의 갈등은 급격히 고조됐으며, 미국의 전략 무기들이 한반도에 전개되고, 북한의 괌 포격 엄포 등이 맞물리면서 한반도 정세는 말 그대로 전쟁 일촉즉발의 상황에 내몰렸다.


핵무력 완성을 선포한 북한은 2018년 경제 개발 총력 노선을 천명하면서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그리고 평양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굵직한 행사의 한 주체로 등장했다. 반세기 이상 적대하던 북한과 미국 지도자가 악수하고, 남북 정상이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함께 돌아보고 손을 맞잡는 미증유의 장면이 전 세계에 타전되면서 한반도엔 금방이라고 평화와 통일이 올 듯 환희가 감돌았다.


불과 1년 남짓 기간 동안 말 그대로 전쟁위기에서 평화의 환희를 맛본 한반도. 하지만 하노이 북미 회담의 결렬로 또다시 위기가 서서히 감돌고 있고, 북미간의 긴장과 힘겨루기로 살얼음판 위를 걷는 정세로 접어들고 있다.



▲ 화성-10(무수단) 미사일 발사를 지켜보는 김정은 위원장.




③ 새로운 길 찾는 김정은…한반도 앞날은?


북한이 5.4 단거리 발사체를 쏠 때 “강력한 힘에 의해서만 평화와 안전이 보장된다는 게 철리”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2017년처럼 미사일과 핵 폭주로 치달을 가능성은 아직은 미지수이다. ‘하노이 노딜’이라는 결과를 받은 김정은 위원장은 2019년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경고도 잊지 않았다.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 ICBM 요격을 가상한 미국의 실험과 한미 군사훈련 재개 움직임 등이 자신들을 심하게 자극하고 있어 매우 불쾌하다”며 “대북 적대정책이 노골화될수록 그에 대응하는 북한 행동도 뒤따를 것”이라며 군사적 위협 가능성을 열어 둔 것이다.


그러면서 기존의 협상 구도를 바꾸려고 시도하고 있다.


“미국이 전혀 실현 불가능한 방법에 대해 머리를 굴리고 똑똑한 방향과 방법론도 없이 회담장을 찾아 왔다”며 “새로운 계산법으로 접근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김정은은 “압박하면 굴복할 것이라고 미국이 오판하고 있다”며 “제재해제 문제에 목이 말라 미국과의 수뇌회담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어차피 미국과의 대치가 장기전이기에 “적대 세력의 제재는 자립 자력 열풍으로”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하노이 회담에서 제재 해제를 얻기 위해 매달리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게 패착이 됐다는 걸 의식한 발언이다. “장기간의 핵 위협을 핵으로 종식했다”며 은근히 핵 카드를 내비치기도 했다.


남한에 대해서도 요구조건을 분명히 했다. “화해협력과 평화 번영을 위해 외세 의존 정책에 종지부를 찍으라.”는 것이다.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며 거친 표현으로 남한을 비판했다.


이 같은 논리 전개는 경제 발전 혹은 경제적 어려움 해소를 위해 ‘비핵화 단계적 조치와 제재 일부 해제’를 중심에 놓고 협상하던 북한이 미국과의 핵 협상을 ‘비핵화 대 체제 보장’이라는 근본적인 틀로 돌아가겠다는 전략 수정으로 해석된다.

북핵 문제가 90년대 초반 불거진 이후 북한의 체제 보장 문제는 늘 핵심쟁점이었다. 제네바 합의와 북미 공동 코뮤니케, 북미 2.29 합의 등 지난 시기 체결한 북-미 합의 문건엔 북한 체제 보장을 의미하는 북-미 수교에 관한 문구가 최종적 목표로서 포함됐다. 하지만 비핵화와 체제 보장을 향한 구체적인 로드맵 창출을 둘러싼 의견차이 때문에 북미 합의는 계속 물거품이 돼 왔다. 이제 다시 북한이 비핵화와 체제 보장이라는 근본적인 틀로 전략을 수정한다면 앞으로 협상은 더 까다롭고 힘들어 질 것이며 따라서 장기화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동안 북핵 해법으로 빅딜(Big Deal), 스몰딜(Small Deal),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 얼리 하비스트(Early Harvest) 같은 영어 시험에나 나올 법한 문구들이 잇따라 제시됐다. 북미 협상 관련 보도를 꾸준히 따라가던 사람들도 이해하기 힘든 아이디어가 나온 것이다. 시기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국민들은 90년대 초반부터 플루토늄이나 우라늄, 흑연 감속로, 경수로 같은 핵 물질이나 관련 시설에 대한 상식도 넓혔다. 심지어 90년대 후반엔 ‘한국형 경수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반상회’까지 열렸으니 말이다.


그만큼 북핵 문제는 한반도에서 상수로 자리 잡고 있었고, 가깝게는 2017년부터 불과 2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전쟁 위기에서 극적인 평화라는 롤러코스터 같은 전환도 경험했다.


이제 다시 북-미간 힘겨루기가 시작된 지금, 또 다른 전쟁위기로 치달을지, 아니면 도저히 이룰 수 없을 것 같았던 민족적 소원을 달성할 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게 휘발성 높은 한반도의 정세 변화이다.



김연/통일전문기자(북한학 박사)


김연 통일전문기자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10여년동안 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이슈를 취재했다. 지금은 모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북한정세와 남북관계 관련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인동의 시절에 꽃피는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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