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났네.” “분리를 안 시키면 다죽어.”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2월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3차 청문회에서 최씨가 지인에게 증거인멸을 지시하는 통화내용 녹음파일 2개를 공개했다. 그동안 화면속에서만 맴돌던 ‘강남 아줌마’ 최순실의 실체가 더 가깝게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최순실의 목소리는 어물어물 흘리는 듯 불분명한 말투였지만 말 마디는 단호하고 권위적이었다. 평소 지시를 내리는 것에 상당히 익숙해 있는 목소리와 말투였다. 특히 최순실의 말을 듣는 상대 남성은 즉각즉각 “예”라고 반응하며 지시를 적극적으로 따르려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 사진=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생방송 화면 캡처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상대남성이 최순실의 말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한다며 주종관계나 혹은 지휘 상하관계가 뚜렷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한 독일에서 귀국하기 직전이었던 만큼 목소리에선 긴박함이 묻어났지만 결단력이 강하고 상황을 주도적으로 리드하려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한 최순실이 치밀한 성격일 것이란 분석도 내놓았다. 이런 단호하고 결단력 있어 보이는 목소리의 소유자가 검찰에 출두했을 때 거의 실신직전의 쇼를 하며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울부짖는 부분은 분명히 평소 그런 장면을 많이 봐온 사람이 할 수 있는 철저히 연출된 장면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최순실이 비록 ‘강남 아줌마’에 불과하지만 그동안 그도 박근혜 대통령 곁에서 수십년 동안 정치밥을 먹은 사람이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다. 비록 정청래 전 국회의원이 자신의 SNS에 “음모와 계략은 거대했으나 은폐의 계략은 수준 이하”라며 “증거인멸 작전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뻔히 들통 날 것을 구체성, 치밀함도 없는 지시를 내렸다”라고 꼬집기도 했지만 그 말 속에 녹아있는 말투와 분위기는 이미 권력에 상당히 익숙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최순실을 그냥 ‘강남 아줌마’ 정도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남편 정윤회도 자신의 권력가도에 걸림돌이 되자 냉정하게 쳐낸 사람이다. 검찰에 출두할 때 울부짖고 괴로워하는 모습과는 달리 권력의 냉정하고 비정한 면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그다. 최순실의 목소리에는 바로 그런 정치세계의 풍월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우습게 볼 정도였다면(자기가 진짜 공주인줄 안다고 하는 발언을 보면) 강남 아줌마의 단순한 국정농단이 아니다. 최태민에 이어 2대에 걸쳐 이어져 온 최순실 집안의 권력농단 노하우가 그 목소리에 철저하게 스며들어 있다. ‘그놈 목소리’는 한국 정치의 엇박자가 낳은 최악의 소음이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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