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A판 ‘썰전’인 ‘외부자들’이 첫방부터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데는 일단 성공을 거둬 앞으로 두 프로그램의 시청률 대결이 볼만 해졌다. '썰전'은 보수의 대표적 논객 전원책 변호사와 진보의 대표선수 유시민 작가 두 명의 패널과 함께 김구라가 사회를 맡아 진행하는 종편의 대표적인 정치예능 토크쇼다. 두 사람의 날카로운 입담과 현안에대한 심도있는 분석으로 방송가 인기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이 썰전을 타깃으로 한 것이 바로 '외부자들'이다.


방송인 남희석씨가 진행하고 안형환 전여옥 정봉주 진중권의 보수-진보 4인 패널로 무장한 채널A ‘외부자들’이 지난 12월 27일 첫 방송을 탔다. 외부자들 패널들은 썰전의 고강도 입담을 의식해서인지 첫방부터 본인들만의 경험과 높은 수위의 이야기들을 쏟아내며 일단 관심을 모으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첫방 시청률이 3.6%(전국기준, 닐슨코리아 제공)를 기록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썰전’은 10% 내외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JTBC의 대표적인 콘텐츠로 자리잡고 있다.


4인 패널은 썰전이 방송가에 몰고온 고수위 발언 기류에 부합하려 무척 애를 쓰는 듯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몰가치하고 불의하고 사회적 인식이 없는데, 이 정도면 한나라당이 막았어야 한다”(정봉주)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을세습왕조라고 생각한다”(전여옥) “박근혜는 정치의식, 정체성이 형성돼야 할 시기에 멈춰버렸다”(진중권)는 등의 강력한 발언들을 토해냈다. 특히 전여옥 전 의원은 자신이 20년 전 비선실세 최순실씨를 만난 일화를 전하면서 “(최순실은 박근혜 대통령이) 좋아하는 반찬까지도 알 정도로 매우 밀접한 관계”라고 전하기도 했다. 나름 방송을 위해서 자신만의 ‘특종’을 내세우려 애쓴 흔적이 보이는 대목이다. 다른 패널들도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표현으로 작심한 듯 독설들을 쏟아냈다.


그런데 이날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다소 의아했다. 채널A 하면 종편에서도 대표적인 보수층 대변 위주의 방송국으로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종편 시사프로그램도 MBN 등 다른 방송사들이 보수 패널과 진보 패널을 어느 정도 섞어서 출연시키는 데 반해 채널A는 보수 일변도의 편파방송으로 그동안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외부자들’ 패널 가운데 진보의 입담꾼인 진중권 교수와 ‘나꼼수’ 출신의 정봉주 전 의원의 경우 진보주의자 중에서도 상당히 급진적인 편에 속한다. 특히 정봉주 전 의원의 경우 ‘나꼼수’로 박근혜 정권과는 악연 중에서도 악연을 맺은 앙숙 사이다. 채널A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패널 선정이다.


이를 의식한 듯 정봉주 전 의원은 ‘외부자들’ 출연과 관련, “채널A가 제일 빨리 전향했다”라고 평가해 관심을 끈다. 정 전 의원은 12월 27일자 팟캐스트 ‘정봉주의 전국구’에서 “종편을 계속 거부하다가 전여옥, 진중권과 함께 채널A ‘외부자들’에 출연하고 있다. 재미있게 만들었다”라고 하면서도 “그런데 채널A에서 날 부른 게 이상하지 않느냐. 채널A가 내용적으로 제일 빨리 전향했다. 방송계에서 소문이 났다”라고 말했다.





전향? 간첩이 이념을 버리고 적대국에 ‘귀순’하는 행위를 말한다. ‘종래의 사상이나 이념을 바꾸어서 그와 배치되는사상이나 이념으로 돌리는 것’을 말한다(네이버 국어사전). 정 전 의원은 이에 대해 “정권 교체된다, 보험 들어야 하는데 저평가 우량주가 누구냐, 그래서 정봉주한테 붙은 거지. 그래서 내가 못 이기는 척 (출연 제의를 수락했다)”고 말했다. 채널A가 내년 정권 교체를 염두에 두고 진보진영 인사인 정봉주를 섭외했다는 것이다. 특히 정 전 의원은 “다른 방송사에서 프로그램 때문에 내게 연락을 했다. 내가 ‘채널A (출연)한다’고 말하니까 대뜸 (방송사 국장의) 첫마디가 ‘거기(채널A) 입장 바꿨다던데, 바로 줄섰네’라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그동안 채널A가 노년층을 타깃으로 보수층의 이념과 성향을 적극 홍보하고 나선 것에 비교해 보면 이번 패널 선정은 파격을 넘어 기적에 가까운 변신이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진보진영과 젊은 시청자를 겨냥한 콘텐츠 개발을 통해 시청자의 외연을 넓히겠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하지만 이번 채널A의 변신은 탄핵을 앞두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결별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치에 영원한 아군은 없다고 하지만 채널A의 기묘한 변신은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최근 들어 종편의 ‘박근혜 죽이기’가 점점 흥미위주의 ‘침 뱉기’로 달려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박근혜 정권과 코드를맞춰온 대표적인 종편 채널A도 더 이상 단물 빨아먹을 곳이 없어지자 냉정하게 그들의 ‘아이콘’을 차버리는 셈이다다. 종편 인기패널인 A씨는 "유독 채널A는 조직이 상당히 보수적이고 변화를 싫어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방송사 논조도 수구적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보수적이었다. 그런 곳이 진보진영의 입담 센 두 사람을 내세운 것에 대해 뭔가 설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갑작스런 변신에 당혹스럽지만 결국 시청률 전쟁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A씨는 "당연히 집권이 유력한 야당의 눈치를 보는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썰전’의 경우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까지 몰고올 정도로 시청자들의 신뢰를 얻고 있는 손석희의 ‘뉴스룸’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등에 업고 인기가 오른 측면이 있다. 하지만 ‘외부자들’의 경우 그동안 채널A가 박근혜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자처하며 철저하게 친 정부 성향의 프로그램들만 만들다가 이번에 갑자기 ‘진보-보수’ 믹스의 정치예능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방송의 변신은 자유이지만, 그동안 채널A가 ‘박정희-박근혜 빵빠레’에 열을 올리고 그들의 이념 수호에 적극적으로나선 것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묻고 싶다. 권력자의 힘이 빠지면 그 권력자를 밟고 대안을 모색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채널A가 그동안 보여온 보수층의 순수한 대변자 역할까지 단박에 내던지는 것은 신뢰의 문제를 넘어 방송사의 존재와도 관련이 있다. 한겨레나 경향이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박근혜 나팔수’로 변신을 했던 적은 없었지 않은가.


방송사의 이념과 철학에 대해 문제를 삼는 것은 아니지만, 별다른 설명도 없이, 맥락 없이, 손바닥 뒤집듯 뒤집는 그런 이념과 철학이면 초등학생이라도 그 방송사를 신뢰할 수 있을까. 다음 대선에서 보수층이 다시 집권했을 경우채널A의 기막힌 변신을 또 기대해 본다. 하긴 2017년 3월 종편 재승인에서 채널A가 사라진다면 그 재밌는 변신을 못볼 수도 있겠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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