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의 존재감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2017년 조기 대선이 다가오면서 대권주자들도 물 들어올 때 열심히 노를 저을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안철수 전 대표는 좀처럼 노 저을 기회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2011년 10월 MBC의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뒤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정치에까지 입문한 안철수. 그 뒤 1등이 꼴찌에게 양보한 서울시장 선거, 정치 선배들의 경선 룰 장난에 놀아났던 2012년 대선 정국 등을 거치며 안철수 전 대표도 많이 단련이 됐다는 평가가 있지만 여전히 카리스마있는 정치인으로서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 안철수 전 대표가 지난 12월 초 대구 촛불집회에 참석한 장면. 여기서 시민들로부터 야유를 들으려 곤혹을 치렀다.



최근 안 전 대표는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일단 지지율이 정체에 빠져 있다. 지난 12월 27~28일 실시한 문화일보 여론조사에서 안 전 대표는 문재인-반기문-이재명에 이어 심지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까지 밀리며 5위로 주저앉았다(5.7%). 이런 지지율 하락은 당내의 입지를 상당히 위축시키고 있다. 국민의당 일부 의원들은 '대권주자로서 다른 대체 인물을 찾아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국민의당 '오너' 안철수가 세입자들에게 밀려나게 생긴 꼴이다.


왜 이렇게 지지율이 하락했을까. 안철수 전 대표는 탄핵 정국이라는-남의 불행을 본인의 기회로 여기는 것은 좀 그렇지만- 최고의 기회를 그냥 저냥 흘려보내 버렸다. 한마디로 전략부재다. 일단 탄핵정국 초기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가장 먼저 강력하게 주장한 이가 바로 안 전 대표였다. 하지만 이재명 성남시장이 막강한 SNS팀을 바탕으로 골리앗 문재인과 '사이다-고구마' 논쟁 등을 불러일으키며 선두경쟁을 벌이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면서 지지율이 역전되는 상황을 맞게 됐다.


특히 안 전 대표는 지난 12월 3일 대구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일부 시민들로부터 야유와 호통을 들은 것이 본인에게 타격이 됐다. 심리적으로도 위축이 됐을 것이다. 유튜브 등으로 급속하게 확산된 이 장면에서 시민들은 "안철수 빠져라" "광장에 앉아있으면 끝까지 함께 해라"는 등의 야유성 질책을 들어야했다. 이에 소신과 자기확신을 가진 정치인이라면 당당하게 '나는 이 자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을 했어야 한다. 하지만 안철수는 촛불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서 정말 나가려고 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주변 참모들도 돕지 못했던 상황.


적어도 대권을 꿈꾸는 정도의 리더라면 그런 논쟁이 있는 자리에서 당당하게 소신을 밝히고 야유를 잠재울 정도의 기지와 용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국민들이 안철수 전 대표를 '샌님'으로 보는 이유도 바로 이런 데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장인의 좌익 활동 논란에 대해 '그렇다고 마누라를 버려야 합니까'라고 당당하게 되묻던 장면과 묘하게 오버랩이 되는 장면이었다. 홍보부족과 전략부재로 탄핵정국에서 안철수는 이재명으로부터 완전히 존재감을 뺏기고 말았다. 탄핵과정에서 가장 강성으로 나갔던 안철수였지만, 정작 국민들은 이재명의 '사이다'만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대구의 촛불집회는 안철수가 이재명에게 탄핵정국의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긴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탄핵정국 후반기로 들어오면서 안철수의 지지율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으로부터도 빼앗기는 신세가 됐다. 반 총장의 대권도전이 기정사실화 되면서 그동안 부동층 가운데 안철수 지지로 남아있던 사람들이 반기문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중도보수성향의 안철수로서는 반기문과의 확실한 차별화에 실패하고 오히려 자신의 지지자들마저 뺏기고 있는 실정이다. 종합해보면 안철수는 왼쪽으로는 이재명, 오른쪽으로는 반기문 사이에 끼여 좌도 우도 아닌 어정쩡한 포지셔닝으로 지지율만 양쪽으로부터 야금야금 먹히고 있는 꼴이다. 전략부재와 메시지 부재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 시민들의 ˝빠져라˝ 구호에 민망해하며 촛불을 끄고 있는 안철수 전 대표.



이재명같이 국민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사이다 한방을 먹이든지, 반기문처럼 오랜 관료생활과 유엔활동을 통한 중량감 있고 신뢰있는 이미지를 보여주든지 해야하는데, 안철수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다. 2011년 무릎팍도사 출연 때야 '성공한 벤처인' '합리적인 시민대표' 등의 이미지가 있었지만 '난장판'에 들어오면 그만의 한방이 있어야 한다. '샌님'이나 '점잖음'이 정치 정글에서 먹힐 리는 없지 않은가. '제 3지대 대표주자' 자리마저 반기문 총장에게 뺏기게 생겼다.


지지율이 하락함에 따라 당내 입지는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최근 치러진 국민의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그가 밀었던 김성식 의원과 권은희 의원 조는 상당히 큰 표차로 패하고 말았다. 국민의당은 안철수가 사재를 털어 만든 어찌보면 안철수당이다. 안철수 전 대표측은 이 결과에 대해 "전혀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결과"라며 멘붕 상태에 빠졌다는 전언이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예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단협 사태'가 국민의당에 몰아칠 수도 있다. 확실한 대권주자를 내야만 국민의당 의원들도 차기 총선에서 입지가 유리해진다. 언제 등을 돌릴지 모르는 상황이다.


안철수 전 대표는 지지율 하락, 제 3지대 존재감 상실, 당내 입지 위축 등으로 탄핵정국에서 죽을 쑤고 있다. 그를 둘러싼 바이러스는 하나같이 악성이다. 근본적인 체질(본인의 성격) 개선과 선명한 메시지, SNS에서의 공격적인 대응 없이는 안철수 백신만으로는 악성 바이러스들을 잡기에 버거워 보인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저작권자 © 피처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