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장춘몽이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꿈을 접었다. 그런데, 그는 과연 꿈은 있었을까? 있었다면, 어떤 꿈이었을까? 대통령이 꿈이었을까. 정치교체가 꿈이었을까. 이도 저도 아니면 공무원 생명 연장을 위한, 단순한 ‘잡 헌팅’(job hunting)이었을까. 왜 한국의 대통령이 되려한 것이지? 공무원 생활의 화룡정점을 위한 것이었을까? 반기문의 갑작스런 기권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먼저 그의 기권의 변을 한번 들어보자. 반기문은 대선 불출마 결정의 계기에 대해 “3주간 정치인을 만나보니까 그분들 생각이 모두 다르고 한 군데 끌어모아서 대통합을 이루는 게 어렵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시간을 소비하기엔 내가 상당히 힘에 부치고 시간은 제약이 있고 여러 가지 현실적 어려움이 있었다”라고도 덧붙였다.


일단 반기문 자신의 정치적 역량에 대한 한계를 인정했다고 본다. 하지만 여기에 하나 이상한 생각이 든다. ‘그분들 생각이 다르고 한군데 끌어모아서 대통합을 이루는 게 어렵겠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한국정치의 대통합? 이 단일 주제 하나로 우리 정치권은 지난 50여년 동안 치열하게 토론하고 대립하고 분열해왔다. 반기문은 입국 20일만에 그 큰 주제인 ‘대통합’ 실현에 두 손을 든 셈이 됐다.


그의 기권 결정이 아쉽다기보다 그가 과연 대통합이라는 주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되묻고 싶다. 통합이라는 게 무엇인가. 일단 마음과 마음이 맞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상대를 알 시간이 필요하다. 반기문은 그 최소한의 시간이라도 정성을 들여 상대들에게 진정성을 보여주었을까. 자신이 한때 여론조사 지지율 1위라는 사실만 머릿속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20일동안 대통합을 위해 노력했는데 어렵다라고 한 말은 대체 무엇인가. 정치를 너무 쉽게 본 것은 아닐까. 아니, 국민들을 너무 우습게 본 것은 아닐까. 유엔 사무총장 경력에 지지율 거품 1위를 훈장같이 달고 대통합을 외친 꼴 치고는 좀 안쓰럽다. 머리가 나쁘지도 않을 텐데 그만한 노력과 정성으로 대통합이 이뤄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반기문은 너무 준비도 없이,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그 알량한 ‘스펙’만 믿고(그 스펙마저도 친정 유엔에서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덤비다가 제풀에 나가자빠진 꼴이 됐다. 초등학교 학생회장 선거도 몇 달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하는 게 요즘 한국의 선거 모습이다. 최소한의 준비도 하지 않고, 국가를 위해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어떤 정책과 비전을 제시할 것인지는 접어두고 현장방문 같은 옛날 보여주기식 이벤트정치만 하다가 20일을 그냥 보내버렸다.


반기문은 조용히 떠나지 않았다. 인터뷰 곳곳에 남탓하는 말들이 나온다. 우물 안 개구리들이 답답하다고 했다. 그는, 그 작은 우물 하나도 소신껏 변화시키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했다. 국가와 국민을 그토록 걱정한다면 개인의 어려움쯤은 딛고 일어서야 하지 않을까. 아직도 반기문이 왜 대통령에 도전하려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20일 동안 그가 보고 겪은 한국 정치의 병을, 꼭 대통령이 되어야만 고칠 수 있는가. 대통령 아니면 국가와 국민에 봉사할 길이 없는가. 왜 그는 처음부터 대통령으로서가 아니라 한 평범한 전직 외교관으로서 국가를 위해 봉사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대통령 안 시켜주니, 유엔 사무총장 10년 경력을 몰라주던 사람들을 원망하며, 그는 떠났다. 야속한 정치바닥에 침을 뱉고, 그렇게 그는 떠났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얼룩이 남았다. 그걸 누가 닦아내는가. 애먼 국민들이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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