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대선이 유력한 가운데, 대선 레이스에도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중도 낙마하고,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급부상 하고 있는 가운데 합종연횡과 정계개편의 핵심변수로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떠오르고 있다. 그의 몸값이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왜 그럴까.





김종인은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총선 승리를 위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모셔올 때와 지금의 김종인은 확연히 다르다. 사람이 그새 달라졌다는 얘기가 아니다. 김종인은 1940년생에 비례대표 5선을 한 뒤 보수와 진보를 넘나들며 구원투수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인물이다. 주무기는 유연한 ‘경제 민주화’와 돌직구 리더십이다. 어떻게 보면 그의 주무기가 하찮게 보인다. 하지만 조기 대선이라는 난국에서 빛을 발할 가능성이 높다. 나이도 많고 세력도 없는데, 김종인이라는 인물이 향후 대선의 구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람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상황이 달라졌다는 뜻이다. 대선의 주요변수를 구도, 인물, 정책으로 볼 때, 김종인은 ‘구도’에 적합한 사람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람은 그대로인데 구도라는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에 김종인의 효용성이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현재의 김종인은 문재인이 총선 때 모셔오던 ‘가정교사’급이 아니다. 그는 ‘킹메이커’가 아니라 ‘킹’으로까지 본인의 효용성을 끌어올리고 있다. 경제 대통령이다.


그의 경제에 대한 식견과 간단치 않은 리더십은,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으로 낙마하고 국가 시스템과 경제가 거의 결딴난 비상 상황에서 빛을 발할 수 있다. 조기대선이 아니고 예정된 대선이었으면 김종인 카드는 먹힐 리가 없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국정이 어수선한 상황에서는 국민들은 신뢰를 보낼 수 있는 경륜있는 인물을 원할 수 있다. 그가 개헌의 깃발을 들고 3년 반만 ‘과도기적’인 대통령을 해서 엉망이 된 국가시스템을 정상화시키는 정도의 역할만 한다고 했을 경우,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김종인이 좋아서가 아니라, 상황논리에 적합한 인물이기 때문에 그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접촉한 한 정치 전문가는 최근 김종인에게 정중한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조기 대선정국의 시대정신이 김종인 경제대통령이라는 소신을 갖게 되었다”는 배경 때문이란다. ‘20년 장기불황의 초입에서 한국 사회 문제가 하루 아침에 다 해결되기는 난망하다. 차기 집권세력마저 정책적으로 유능하지 못하면 더욱 그렇다. 역량은 안 되고 정권욕심만 있는 친노패권 세력으로는 안된다. 시대정신이 경제대통령 김종인이라고 확신한다’는 내용 정도다. 김종인은 비례대표로만 5선을 한 한국 정치판의 몇 안 되는 전략가다.


한때 대선후보였던 박찬종 변호사는 김종인에 대해 “(20대 총선에서) 스스로 비례대표 2번을 받는 ‘억지’는 나도 DJ도 못했다. 그런 점에서 YS DJ는 순수했다. 속이 보였다. 그런데 김종인은 정치는 속이 보이지 안 보인다. 그 점에선 오히려 박지원보다 고수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김종인는 지난 20대 총선에서 빗발치는(특히 친노 패권세력으로부터) 비난을 받았지만 끝내 비례대표 2번을 셀프 공천해 당선됐다. 이 정도의 내공과 인내력이면 정치 6~7단 정도된다는 게 박찬종의 설명이다.


상황논리가 김종인에게 유리한 측면이 있고, 문재인도 그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김종인의 효용성도 커지고 있다. 현재 민주당의 비문세력이나 중도성향 의원들은 문재인이 김종인을 꼭 잡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문재인은 사실 지금까지 본인 스스로 현재의 위치까지 오른 적이 없다. 안철수나 김종인 등 정치 파트너를 끌어들여와 본인의 직급을 올린 케이스다. 이런 점이 그에게는 상당한 단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문재인이 손잡았던 인물마다 떨어져 나갔다. 안철수가 대표적 케이스다. 김종인마저 또 떨어져 나가면 문재인으로서는 화합형이라는 이미지에 상당히 기스가 날 것이다. 문재인은 필요할 때 사람을 쓰다가 용도폐기하는 인물이라는 나쁜 이미지가 쌓일 수 있다.




하지만 김종인은 문재인을 좋게 보지 않는다. “싹수가 노랗다”라는 표현까지 쓸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다. 박근혜에게 한번 배신을 당한 김종인으로서는 다시 그런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가 총선에서 최선을 다해 문재인을 띄워 올려 총선에서 승리를 했지만 김종인은 친문 패권주의에 막혀 겉돌고 있다. 그래서 탈당설이 나온다. 문재인이 진정한 고수라면 김종인을 끌어안았어야 한다. 집권이 유력한 그로서는 김종인에게 적어도 경제팀 조각을 할 수 있는 권한까지 주고 그를 포용해야 한다. 하지만 문재인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렇게 통 큰 양보를 할까? 그럴 가능성은 낮다. 그를 둘러싼 친노.친문 패권주의자들이 그런 ‘지분 남발’을 용납할 리 없다. 이를 김종인이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래서 김종인은 안희정을 킹으로 만들기 위해 그를 탈당시키려 하거나, 이것이 실패할 경우 본인 스스로 탈당할 가능성이 있다. 나가서 비문연대의 빅텐트를 만든 뒤 본인이 스스로 ‘권좌’에 오르는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꿈이 아니라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고 본다. 현재의 대선 판세는 민주당 문재인 대 제 3진영의 경선 승리 대표주자의 2파전으로 모아진다. 정상적인 대선 레이스였다면 김종인으로서는 ‘킹메이커’ 정도로 만족하겠지만 조기대선이라는 변수가 생기면서 김종인이 직접 드라이브를 걸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김종인 본인에게 현재의 대선 구도는 매우 호의적인 편이다. 구원등판해서 3이닝 반 동안만 위기를 막아주는 구원투수, 경제 대통령이라는 포지셔닝을 한다면 그 전략이 먹힐 수도 있다. 여기에 문재인측에서 경제팀 조각권을 주는 정도의 파격적 ‘권력 분점’을 하지 않는 이상 김종인으로서는 굳이 민주당에 몸을 담을 리도 없다. 차라리 제 3지대의 수장을 노려보는 게 더 낫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상황논리가 김종인을 ‘감히’ 대선주자급으로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이는 본인의 뜻보다 반기문이 빠져 나간 대선구도가 점점 김종인의 효용성을 높여주는 쪽으로, 구도가 변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반기문, 안희정 다음 대선 관전 포인트는 바로 김종인이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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