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지사? 글쎄... - (1) 죽음을 대하는 자세]

안희정 현 충남지사가 내 인상에 남은 최초의 때는 노무현 대통령 장례기간 중이다.
그 전까지 스치듯 한두 번 인사한 적은 있으나 특별한 기억으로 남지 않았다.
다만 어르신의 측근이라는 언론보도를 보았을 뿐이었다.

벌써 7년의 시간이 훌쩍 흘러버린 2009년 5월의 그 날.
그 전 날 밤은 개인적 분노와 사회적 상황이 뒤엉킨 상태에서 친한 지인과 매우 취하도록 마시고 또 마셨다.
낯선 전화벨이 그 날 아침 이른 시간을 뒤흔들었다.
이상하게도 온 가족이 그 벨소리를 듣고 잠이 깨었다.
아내의 불안한 목소리에 모두들 서둘러 옷을 입었다.
나는 잠이 덜 깬 약간 몽롱한 상태에서 검은 양복을 차려 입었다.
왜 하필 검은 양복을 입고 그 날을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그 후 운전 중에 라디오를 통해 비보를 들었고, 곧 이은 아내의 오열과 아이들의 불안한 눈빛을 귀로 듣고 등 뒤로 느끼면서, 오직 운전에만 집중하며 고속도로를 달렸다. 이런 때 사고로 온 가족을 잃으면 안 되니까.
그 날의 경부고속도로의 풍경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렇게 2009년 5월의 그 날을 시작했다.
그리고 7일 동안 장례를 치렀다.

이상하게도 그 날 이후 장례를 마칠 때까지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국민장으로 7일 동안 진행되는 장례 기간 내내 잠을 자지 못했다.
이상한 경각심으로, 지금 주어진 일을 실수 없이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눈물도 흘리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지낸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거짓말 같지만.

장례를 치르면서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아마도 장례가 거행되었던 마을회관에서 만났던 분들이니 모두들 어르신과 특별한 인연이 있던 분들 이었을 게다.

어떤 이는 술에 취해 한탄하기도 했다.
어떤 분은 어르신의 사고와 관련한 각종 소문을 전달해 주기도 했다.
내 손에 자신의 한스런 슬픔을 눈물로 전해 주신 분도 계셨다.
나를 나무라신 어른도 계셨고, 피로와 분위기에 지쳐 기분이 언짢아진 분도 계셨다.
대통령의 장례에 음식이 너무 없다며 세상을 원망하던 친구도 있었다.
모두 오욕칠정의 인간 모습이다.
자연스럽고 고마웠다.

장례기간 내내 다른 문상객들 보다, 지극한 정성으로 장례식장을 지킨 분도 있었다.
장례기간 동안에 처음 만나 분이었는데, 나중에 그 분을 수소문해서 고마움을 표시했다.
특별한 정성을 보여 주신 그 분은 나중에 국회의원이 되었고 지금은 백수로 세월을 기다린다.

하지만, 장례기간 동안,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있었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다.

화장을 하거나 심지어 머리에 무스를 바르고 장례식장에서 문상객을 맞이하는 모습은 이해할 수 없었다.
추모의 방식은 다를 수 있고 사람과 삶을 이해하는 방식도 다르겠지만.
자신을 치장하며 상을 치르는 모습은 고인의 슬픔 보다 타인의 시선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보였다.
추모와 슬픔의 자리에서 타인의 시선이 신경 쓰인다는 것, 부자연스럽다.
그래도 고통을 감추기 위한 방편이라고, 굳이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도 있었다.
어떤 이는 장례 기간 중에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자신이 얼마나 돌아가신 분을 사랑했고 그 분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말했다.
그 분을 돌아가시게 한 세상과 권력을 원망하며 포효하기도 했다.
지금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선언을 하신 안희정 지사를 그 중 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나는 전직 대통령이 되신 어르신이 수사를 받고 모든 언론의 표적이 되었던 그 때 그가 도대체 무엇을 했는지 도무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게 사랑하고 미안한 마음을 가진 대상이 생사를 넘는 고통 속에 있을 때는 왜 아무런 용기가 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세상과 권력을 원망할 정도라면 어르신을 따르는 사람으로서 자결로써 어르신을 지켰을 법한데, 장례 전에는 왜 언론에 인터뷰를 하지도 않았고 어떻게 혼자만 그 울분을 삼켰는지 모르겠다.
어떠한 이유로,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 슬프고 분주한 장례식장에서 언론에 인터뷰를 할 생각을 했으며 언론에 촬영될 장면을 남기려 했는지 모르겠다.
무슨 정신으로 그 애도의 자리에서 기자들을 만나거나 카메라 앞에서 포효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모습은 그 죽음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단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정치적 탐욕이라고 의심했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안희정은 그 후 충남도지사로 선출되었고 연임하여 지금은 대통령직에 도전하고 있다.
내 생각과는 달리, 오히려 많은 분들은 안 지사가 장례기간 동안 보인 태도를 기억하시고 그로 인해 호감을 갖고 계시다.

삶은 늘 죽음을 내포하고 있다.
죽음이 없는 삶은 없다.
죽음은 한 개체의 마지막 시간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살아 있는 동안 시간의 절연은 모두 죽음의 다른 형태이다.
잠에서 깨는 것도, 오늘에서 어제를 바라 보는 것도, 한 시기를 지나 다른 시기로 옮기는 것도, 사람과의 이별도 모두 마찬가지다.

우리가 먹고 마시며 생명활동을 이어가는 모든 형태는 다른 생명체의 죽음에 기반한다.
그들이 죽음으로써 새 생명이 잉태하고 다른 생명체의 활동이 이어진다.
다른 생명체의 죽음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며, 모든 생명에 감사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죽음은 숭고하고 모든 삶은 죽음에 기반하고 있다. 삶은 죽음을 예로써 대해야 한다.
일상의 죽음도 마찬가지인데 하물며 특별한 죽음이야.

대통령 박근혜는 국민의 생명 보다 자신과 측근의 이익을 우선해 왔다.
소위 일베 세력들은 사람의 죽음을, 국민의 죽음을 자신들의 놀이로 삼고 있다.
이 때문에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죽음은 삶의 이면이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이 사람의 삶을 바라보는 기저를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이런 이유로 안희정 지사를 의심하고 있고, 이것이 그에 대한 평가의 첫번째 근거다.
다음은 그가 지사직 선출 이후 계속 강조하고 있는 “언어의 의미 - 민주세력 장자론", 즉 김대중과 노무현의 장자라는 주장”에 대한 제 견해를 말씀 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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