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판:이인제 원유철 김진

등판대기:황교안 정우택 홍준표 김기현 김관용 김문수 안상수 조경태

 

열거한 이름은 자유한국당의 대선주자들이다. 피닉스 이인제와 원유철은 이미 대선도전을 선언했다. 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도 대권 도전을 선언할 전망이다. 인명진 비대위원장이 깜짝 놀랄 만한 인사가 있다고 호언장담했던 이가, 바로 김진인 것 같다. 이밖에 대선 등판대기 중인 인사만도 8명이다. 김진이 선언하기 전만 해도 ‘10으로 불렸지만 이제는 축구팀이 됐다.


자유한국당의 대권주자 가운데 출마 여부가 불투명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제외하면 의미 있는 지지율이 나오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의미를 떠나 여론조사 기관에서 아예 대상자 명단에도 올려주지 않는다. 어떤 주자는 대선 때마다 습관처럼 이름을 올린다. 총선을 위해서다. 당 사무처 실무자들은 당이 망가져서 변변한 후보를 낼 형편이 못되니 나도 대선에 도전했다는 경력을 남기려고 너도나도 나온다. 우리가 보기에도 부끄럽다고 말했다고 한다.


필자도 부끄럽다. 자유한국당은 의석수가 94석이다. 의원 10명당 대권주자 1명꼴이다. 121석의 더불어민주당이 3명의 대권주자가 나서는 것에 비해서도 자유한국당의 대선주자는 너무 많다. 많아서 좋은가? 한꺼풀 벗겨보면 참 딱한 주자들이다. 보릿고개보다 더한 어려움을 겪는 당 사정은 뒷전이고 너도나도 입신에 이름 석자를 건다.





한나라당은 지난 2004년 차떼기 사건으로 당이 쑥대밭이 됐다. 박근혜 당시 대표는 당 현판을 들고 여의도 찬바람을 맞으며 천막당사로 직접 이동했다. 반성의 퍼포먼스였다. 보수는 책임으로 말한다. 당 지지율은 15%대로 떨어진, 창당 이래 최악의 위기였다. 박관용 국회의장과 최병렬 대표를 비롯한 당시 중진들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덮쳐오는 쓰나미를 온몸으로 막아냈다. 불출마한 사람이 30명에 이르렀다. 당시 여의도 천막당사 생활은 말 그대로 노천생활이었다. 컨테이너 박스에 부서별로 모여 일을 보았는데, 모래섞인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불던지 문을 조금 열어 놓으면 코가 매쓱해질 정도였다. 기자들도 고생이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사무처 당직자 절반을 구조조정하며 갖은 고생을 한 끝에, 한나라당은 총선에서 121석을 얻으며 기사회생했다.


장면을 자유한국당으로 되돌려보자. 촌스런 당명이나 로고는 그렇다 치고 차떼기보다는 아마 100배나 더 위력적인 탄핵 쓰나미가 몰려왔는데도 누구 하나 눈도 껌쩍 하지 않는다. 전임 이정현 대표는 촛불보다 법과 헌법이 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달라며 버티다가 볼썽사납게 쫓겨나갔다. 누구 하나 참회의 반성문을 쓰는 의원이 없다. 책임을 보여주는 사람이 없다. 탄핵의 촛불 화력이 잦아지는 틈을 타서 두더지처럼 숨어 있던 태극기 의인들이 하나둘씩 광장에 모습을 슬그머니 드러내고 있다.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일단 소나기는 피한 다음 희미한 여명과 함께 다시 정치인으로 복귀하고 있다. 어영부영 쇄신한다며 버스 타고 전국도 일주할 모양이다. 당 현판 뜯어 다시 여의도 찬 바람이라도 맞으라는 얘기가 아니다. 도대체 30년 이상 된 그래도 보수의 제 1당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자유한국당의 위기대응력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싶어 나도 놀란다. 전쟁이라도 나면 94명 의원 가운데 과연 몇 명이나 전장에 나설까?


이게 왜 내 책임이냐고 대들면 할 말이 없지만, ‘일본이었으면 할복하는 의원들 몇은 나왔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내가 속한 당이 곧 나의 존재일 텐데 이렇게 무사태평, 뻔뻔함의 극치로 위기를 슬그머니 넘어가려 하다니, 정말 답답하고 안타깝다.


그 뻔뻔함의 하이라이트가 바로 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이다. 보수논객으로 몇 년 전부터 각종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 나름 보수층을 대변한답시고 열심히 논쟁했던 이로 기억한다. 경희대-코리아타임스-중앙일보로 이어지는 언론인 출신이다. 이 양반도 보면 참 뻔뻔스럽다. 만약 그가 계속 보수패널로 토론프로그램에 나왔다면 당의 진정한 반성과 쇄신이 첫 번째라고 일갈했을지도 모른다. 그 다음 대권도전을 선언해도 늦지 않다고 했을지 모른다. 그나마 합리적인 보수패널이라고 생각했을 때 이 정도의 양심은 가지고 자유한국당을 꾸짖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중앙일보에 사표 슬쩍 던지고 나서(일각에서는 해고라는 주장도 있음) 뒤로는 대권주자 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통령이 탄핵 소추되는 것을 보고 그 빈자리를 잽싸게 노린 것이다. 발 빠른 행보다. 이분 또한 멘탈이 강하다. 그는 최근 최순실 사태로 지금까지 쌓아온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 하락이 가장 큰 손실” “박근혜 정부의 범법행위는 역대 정권 모두가 관행으로 해오던 부정행위” “박근혜 정부가 부정하다고 야당이 거룩해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 현실적으로 대권을 차지하리란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기자 출신이니 그 정도 현실감각은 있겠지. 그렇다면? 금배지 아니면 내년 서울시장 정도 도전하지 않을까. 내심 나 정도면 금배지로는 성이 차지 않으니 대권도전으로 직행해야 웨이트가 높아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빤히 보이는 속이다. 그 잇속에는 그가 그토록 걱정하는 국가나 당이나 보수는 없는 것 같다. 그가 대권에 도전해야만 지금까지 드러난 전통의 자유한국당이 쇄신하고 반듯해지는가. 지금까지 언론인 출신이라면 편집국장 출신 정도면 초선 비례의원이거나 지역구 공천을 받는 정도의 예우를 받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김진은 언론인 최초로 곧바로 대권주자로 급상승하는 쾌거를 보여주었다. 이게 정상적인 대선 과정이었으면 가능했을까.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 초유의 운빨을 맞아 이 분도 오버 베팅을 하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그 베팅이 통한 자유한국당은 또 얼마나 가련한 신세인가. 깜짝 놀랄 만한 인사라도 꿍쳐 둔 사람이 바로 김진 정도의 인물이었다니. 자유한국당의 촌스런 로고와도 딱 잘 어울리는 선택이라고 본다. 대권주자도 이쯤 되면 너무 희화화되는 것 같다.

 

이제 자유한국당은 스스로의 권위를 김진 전 논설위원을 대권주자로 옹립하는수준으로 낮춰놓았다. 뭐 이보다 더 큰 일이 있어도 별로 놀라지 않을 거 같다. 그래도 김진은 좀 아닌 것 같다. 자유한국당.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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