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경남지사가 막말로 대박을 치고 있는 모양이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이라고, 홍준표 특유의 적대적이고 직설적인, 지극히 주관적인 표현을 들이대며 논란을 즐기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됐다가 항소심에서 극적으로 무죄를 받은 그는, 언제 그런 송사가 있었느냐는 듯 최근 들어 활발한 대권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아직 대권 도전 선언을 하지도 않았지만, 자유한국당 초선의원들과 ‘상견례’ 회동을 계획하는 등 사실상 자유한국당 접수작전에 들어간 모양새다.




홍준표 지사와는 기자 시절 몇 번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한때 저격수로 잘 나가던 그는 사석에서 항상 이런 말을 빼놓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저격수 역할을 해도 별 탈이 없는 것은, 일단 내가 룸살롱에는 절대 안 간다. 다른 의원들은 걸핏하면 여자들하고도 잘들 어울리지만 나는 일체 그런 적이 없었다. 그렇게 수도승 같은 살아야 저격수 생활을 할 수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당시 잘 나가던 한 미남 의원의 화려한 여성편력을 뒷담화로 서비스하기도 했다. 사실 진위 여부를 떠나 기자들은 그의 ‘혹’ 하는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기도 했다. 이렇듯 화려한 입담과 거칠 것 없는 행보가 홍준표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렇게 해서 그는 검사 출신에 고려대 학맥이라는 양두마차를 끌고 결국 2011년 8월 한나라당 대표에도 올랐다. 당시 유력 대권주자였던 그는 당 대표 취임 한달 만에 눈썹에 문신을 하고 등장, 의원들을 웃게 만들었다. ‘눈썹 문신’은 “나도 이제 대권에 도전할 것이다”라는 선전과도 같았다. 동료들의 칭찬에 어색한 웃음을 짓던 그였지만, 속내는 ‘미용술’로 대선주자의 자격을 가지려는 듯보였다.


하지만 홍준표는 5개월 천하로 막을 내렸다. 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 사건 의혹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것이다. 그 뒤를 이어 박근혜 전 대표가 곧바로 당 비상대책위원장에 올라 당권을 장악하고 곧바로 대선 도전에 오르는 계기가 되었다. 홍준표의 조기 낙마로 당은 박근혜 전 대표의 수중에 완전히 떨어지고 만 것이다. 그 여세를 몰아 박근혜는 대선 승리의 발판을 확실히 다질 수 있었다. 어찌보면 홍준표도 박근혜 탄핵 정국의 나비효과를 낸 또 한 명의 장본인지도 모른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홍준표의 불씨는 2012년 대선 정국에서 김두관 경남도지사가 사퇴를 하면서 다시 타올랐다. 재보궐 선거에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집권여당의 당 대표까지 지낸 거물급 인사가 광역단체장 도전에 나선다고 하자 당 안팎에서 그를 비난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개인의 정치생명 연장을 위해 국회와 당의 위상을 깎아내렸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특유의 독불장군식 행보로, 그런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재보궐에 당선됐다. 그 뒤 재선을 거쳤고, 그 와중에 또 다시 ‘성완종 리스트’로 벼랑 끝까지 몰렸지만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고 기사회생한 셈이다. 그는 선고 직후 곧바고 대권 출마의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홍준표에 대한 시각은 엇갈린다. 당 대표까지 올랐지만 이른바 ‘직계’로 불리는 의원들이 별로 없다. 세력이 없다. 왜일까. 그의 정치 이력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검사 출신에 별다른 정치 인맥이 없던 그는 오로지 ‘튀기’ 위해 저격수를 자처했고 그렇게 해서 스스로의 입지를 다졌다. 다소 퉁명스러운데다 타인을 배려하기보다 본인 위주의 처신에 익숙해있었던지라 세력을 모을만한 시간이 부족했거나, 본인 부덕의 소치였는지 모른다. 큰바다는 작은 내를 아우르지만 큰 바다가 되기에 그의 입담은 거칠었고 평소의 언행은 ‘내가 최고다’였기 때문에 동료 선후배들의 존경과 지원을 받기에는 다소 박한 평점을 받았던 게 사실이다.


오뚝이 홍준표의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청치인으로서의 야망과 불굴의 의지는 높이 사고 싶다. 그렇게 해서 집권여당 대표직까지도 올랐고, 운 좋게 광역단체장도 재선에 성공했다. 도지사직은 은퇴 직전의 당 대표 출신에게 주는 마지막 봉사자리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 계기 또한 도정을 잘 이끌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정치자금 추문에 휩싸여 재심까지 가는 공방 끝에 무죄를 받은 다음 나온 것이다. 도지사로서 보여준 그의 행보만으로도 홍준표는 충분히 여당 정치사에서 손꼽을 만한 정치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정치계의 불문율을 깨고 도지사직을 ‘봉사’직으로 여겼던 그의 선택을 존중했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제 도민들과의 약속을 깨고 지사직을 사퇴한 뒤 대권도전 선언을 할 모양이다. 도전은 자유다. 그럼에도 4선 의원에 당 대표, 도지사까지 두루 경험한 그의 화려한 정치 이력에 비해 대권 도전 선언의 과정은 좀 유치하고 비열하기까지 하다. 전직 대통령에 대해 철 지난 ‘마타도어’를 하는 정도는 이해한다고 해도, 홍준표의 식의 정치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그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홍준표’만의 정치를 보여준 적이 없다. 저격수를 자임하며 검찰 주변의 떠다니는 정보를 토대로 정치인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물론 박수무당처럼 기막히게 맞춘 적도 있지만 틀린 적도 많았다. 그 피해는 물론 면책특권이 있는 국회의원 홍준표의 책임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홍준표 하면 떠오르는 게 뭔지 묻고 싶다. 저격수, 막말... 왠지 긍정적인 단어는 아닌 것 같다. 홍준표의 정치는 남을 띄워 웃기는 유재석식 개그가 아니라 남을 깎아내려 웃기는 김구라식 개그에 가깝다. 그래서 안타깝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생각으로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을 볼 때마다, 왠지 서글퍼진다. 그가 권좌에 올랐다 해도 ‘자기 대장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과 함께 협치를 잘 해낼지 걱정이 앞선다.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그가 이번 대선판을 막말이 판을 치는 난장판으로 만들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게 홍준표가 가장 잘 하는 것이니까. 그러기에 지금 우리나라는 너무나 곤경에 처해 있다. 서민경제는 파탄 났고, 사드에 트럼프에 김정남에 김정은에 4차산업혁명에 이르기까지. 막말보다 구체적인 대안 좀 내놓아보라고, 제발.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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