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 전망은 어찌 보면 상당히 간단하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대세론이 먹히느냐 아니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큰 틀에서 보면 문재인의 대세론이 대선 본선 때까지 그대로 먹힐 만큼 위력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좀 미시적으로 들어가 보면 그 대세론이라는 건축물이 의외로 많은 하자를 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보강 공사를 하지 않으면 작은 균열 때문에 집이 통째로 무너질 수도 있다. 그 작은 균열, 그 첫 번째 변수가 바로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탈당이라고 본다.





필자는 며칠 전 기사에서 김종인의 대권 꿈과 그 전략 일단을 소개한 바 있다. 당시로서는 탈당과 함께 민주당 잔류 가능성도 있다고 봤는데 그 근거는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당내 경선에서 역전할 가능성을 믿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안희정의 급등세가 꺾이고 경선에서도 대 역전극이 일어날 가능성이 줄어들면서, 김종인은 자신이 들고 있던 카드 하나를 과감하게 버렸다. 탈당은 비례대표 사퇴를 의미한다. 남은 3년의 국회의원 임기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대선에 올인하겠다는 뜻이다. 그것도 자신이 대선에 직접 뛴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김종인이 대권 도전은 기정사실화 됐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김종인은 누구보다도 문재인의 약점을 잘 알고 있다. 그 또한 그 약점의 폐쇄성을 견디지 못하고 문재인을 떠난 것이다. 그는 민주당에 안착할 공간을 찾지 못했다. 김종인이 능력이 없어서일까? 김종인이 민주당의 권력 매커니즘을 모르고 괜스레 자신에게 권력 한 줌을 바라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김종인은 1981년 11대 국회 때 등원한 뒤 장관(보건사회부), 경제수석비서관, 당 비상대책위원장 등을 거치면서 권력의 매커니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김종인이 보는 문재인의 최대 약점은 바로 ‘친문 패권주의’다. 왜곡되고 폐쇄적이고 일방적인 의사결정 구조로는 절대 집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집권해도 박근혜 대통령의 문고리 권력의 국정농단 사태같은 ‘제 2의 최순실 사태’가 일어날 것으로 본다. 그는 사석에서도 친문 패권주의 세력을 강도높게 비난하곤 한다. 일부 문재인 핵심 측근들이 당의 공식 결정과정을 무시하고, 당론 결집 시스템을 무시하고 자기들끼리 중요결정을 좌지우지 한다는 것이다.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가지지 못한 조직은 반드시 부패하고 무너지게 돼 있다.

친노 패권세력은 김종인의 존재가 부담스럽다. 그가 껄끄러워 마음대로 당을 컨트롤 할 수 없다고 본다. 사사건건 따지고 드는 김종인이 거추장스러운 것이다. 그들에게 ‘고려장’을 당하느니 차라리 ‘내가 한번 나서보겠다’고 한 것이다. 문재인은 ‘친문 패권주의는 없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최근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친문 패권주의에 대해 부정적으로 느꼈느냐”는 질문에 “나도 그런 부분을 조금 느낀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김종인의 탈당에 문재인은 ‘안타깝다’는 정도의 반응을 보였다. 김종인을 찾아가거나 강하게 만류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그에 대한 친문 패권세력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문재인의 핵심 측근들 사이에서는 ‘비례대표 배지 한 번 달았으면 됐지 너무 욕심이 많은 것 아니냐’는 기류도 있는 것 같다. 문재인 후보 측 예종석 홍보본부장은 “총선 승리가 과연 저분의 공헌이냐, 아니면 그분이 총선 승리라는 시점에 마침 그 자리에 있었느냐에 대해 논란이 있다”라고 말했다. 김종인의 총선 공헌 자체를 부정한 것이다(물론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안희정 후보 측은 “김 전 대표는 당이 어려울 때 와서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고, 함께 집권을 준비하는 우리 당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김종인의 총선 승리 공헌에 대한 온도차가 있다. 즉, 정치적으로 그의 존재와 공헌도를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김종인 입장에서 볼 때 친문 세력에게 충분히 ‘토사구팽’의 분노를 느낄 만한 요소다.





김종인만큼 선거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현장경험을 두루 한 정치인은 많지 않다. 한 정치평론가는 “김종인은 선거를 관통하는 아젠다가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캐치해서 공론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김종인은 탈당할 때 과연 어떤 패 하나를 숨기고 있었던 것일까. 그건 일반적으로 우리가 예상해볼 수 있는 카드다. 바로 비문연대, 개혁연대(손학규 표현), 제 3지대론이다. 김종인은 이번 대선의 구도를 비문 대 문재인의 구도로 끌고 가려고 한다. 이는 문재인의 대선 구도 전략과는 다른 궤도에 있다. 문재인은 이번 대선의 포인트를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적폐세력의 청산에 두고 있다. 적폐세력 대 개혁세력의 구도로 몰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김종인의 전략은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는 순간부터 문재인이 대한민국의 권력 1위가 될 것이라고 본다. 박근혜가 빠져나간 권력의 공간을 문재인이 채울 것이라는 얘기다. 문재인이 박근혜의 자리를 차지하는 순간부터, 문재인도 바로 청산돼야 할 적폐세력(친문 패권주의)으로 몰릴 수 있다. 박근혜의 권좌가 문재인으로 치환되는 순간, 대선 구도도 그렇게 리셋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문재인에 대한 평가가 이번 대선의 주 아젠다가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비문연합세력과 문재인 간의 일대일 구도가 필수적이다. 김종인은 그 비문연합세력을 만들기 위해 자신이 킹이 되든, 누구를 내세우든 하기 위해 탈당을 결행한 것이다.


이 시점에서 그의 파괴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김종인은 반기문이 해내지 못한 제 3지대를 위한 조정자 역할을 강하게 밀고 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 실현 여부를 떠나 문재인으로서는 자신들이 의도하지 않은 ‘문재인 불가론’ 프레임에 둘러싸이게 된다는 점에서 손톱 밑의 가시처럼 불편과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김종인은 문재인의 약점을 잘 알고 있고, 또 그것을 이번 대선에 최대한 활용할 것이다. 문재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개혁성, 원칙론자 정도 될까. 하지만 통큰 정치인, 포용하고 통합하려는 이미지로는 연결이 잘 되지 않는다. 김종인도 이 점이 문재인의 약점이라고 본다. 문재인의 지지세력 확장에 한계가 있는 것도 문재인의 이런 약점 때문이다. 문재인은 김종인의 탈당과 마주하면서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나가야 할 사람이 나간다는 듯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선거를 앞둔 장수의 자세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게 민주당 일부의 평가다.


문재인으로서는 ‘김종인 정도 나가도 대세론은 끄떡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회창 후보가 이런 경우에 속했다. 그는 신한국당 대선 후보 시절 이인제 박찬종 등의 탈당을 그대로 방치했다. 자신의 ‘협량’을 탓하기보다 오히려 탈당한 그들을 비난하기에 바빴다. 김종인이 이인제급은 아니겠지만 전력의 누수를 마치 남 일처럼 대하는 게 선거를 앞둔 후보의 자세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이에 대해 “당이 원래 다양한 세력이 모여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조금씩 다르고, 입장 다르고 하면 또 나가고, 나가고, 끊임없이 나가고. 이건 뺄셈정치죠. 하나라도 더 모아서 키워야 하는데 그런 점들이 참 안타깝다”며 문재인의 ‘옹졸한’ 대처를 비판한 바 있다.




어떤 정치인이든 약점은 있게 마련이다. 문재인의 약점은 대세론이라는 위상 앞에서 더 크게 확대해석 돼 비쳐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약점도 그가 어떤 시대에, 어떤 정치적 상황과 마주하느냐에 따라 ‘그 정도이면 덮고 넘어가자’는 수준이 아니라 치명적인 게 될 수도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국내외적으로 온갖 어려움에 처해 있고, 대통령마저 궐위된 위급한 국가비상사태다. 이런 때 문재인의 ‘옹졸한’ 정치력이 눈감아 줄 수준인지, 국가적으로 큰 해가 될 것인지는, 바로 이번 대선에서 국민들이 판단해줄 것이다. 그 약점을 고칠 시간은 많이 남지 않았지만, 문재인의 칼 같은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적절한 예인지 모르겠지만, 영화 <칼리토>에서 어두운 과거를 씻고 새출발을 하려던 알 파치노는 마지막 장면에서 생각지도 못한 조무래기 조직의 보스에게 실로 어이없는 죽음을 당하게 된다. 꿈의 낙원 바하마로 가는 열차를 타기 바로 직전에 그는 안타깝게도 눈을 감는다. 지금 '조무래기 변수' 김종인의 비수가 문재인의 대세론을 정면으로 겨누고 있다. 과연 문재인은 청와대로 가는 마지막 열차를 탈 수 있을까.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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