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SNS에 ‘출마 선언 동영상’을 공개하는 형식으로 19대 대통령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문 전 대표의 경선 캠프인 더문캠은 지난 3월 24일 오전 브리핑을 열고 문 전 대표의 출마 선언 동영상이 오전 10시를 기점으로 페이스북과 유튜브, 트위터 등에 동시에 공개됐다고 밝혔다. 출마 선언 동영상은 2~3분 내외 길이의 영상으로 총 3가지 버전으로 제작됐다. 제주에서 태백까지 22개 지역의 국민이 참여한 ‘종합편’과 해외에 거주하는 교포와 유학생들이 직접 촬영해 보내준 영상으로 구성된 ‘해외편’, 문 전 대표가 그동안 국민과 함께했던 순간의 영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문재인편’ 등이다.





더문캠은 1위 주자답게 출마 선언에도 상당히 신경을 쓴 흔적이 엿보인다. 미국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민주당 후보가 영상물을 통해 출마를 알렸던 방식을 벤치마킹하되, 국민 참여를 통해 새로운 시도를 선보였다는 게 더문캠 측의 설명이다. 문 전 대표는 지난 2012년 18대 대선 당시 서울 서대문구 독립문 앞에서 직접 출마 선언문을 낭독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공식 행사 없이 ‘문재인편’ 내레이션을 통해 출마의 뜻을 밝혔다. 해당 편에서 문 전 대표는 “모든 국민의 마음을 모아 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합니다. 정권교체, 국민이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바꿉니다. 우리는 오늘 함께 출마합니다. 국민과 문재인이 함께 갑니다”라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출마 선언문을 국민들로부터 직접 받았다는 것이다. 기존 주자들이 대통령이 되려는 당위성을 선언문이라는 형식을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오롯이 쏟아붓는 것과 달리 문재인의 선언문은 국민들이 직접 써준 셈이다.
고민정 더문캠 대변인은 “최근 일주일 동안 국민에게서 출마 선언문을 받았다. 5000여 명의 국민이 자신이 꿈꾸는 대한민국을 그려줬으며 선언문에 담긴 내용은 모두 국민이 보내 준 문구를 그대로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신선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동안 기존주자들의 선언문에 대해 ‘구체성이 없고 무엇을 말하려는지 모르겠다’는 일부 평가를 의식해서인지 아예 국민들이 써준 선언문을 그대로 ‘카피’해 비판의 날을 피해갔다는 지적도 있다. 출마 선언문은 어찌됐든 후보의 비전과 철학, 국가운영 로드맵의 총화이고 국민들은 그것을 통해 그 후보의 진면목을 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좀 아쉬운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 선언문’에 대해 1위 주자의 자신감에서 나오는 ‘여유’이자 포용적인 전략이라는 반응도 있다. 


문재인 대세론은 여전히 강고하다. 문재인이 대선출마 선언을 한 날인 3월 24일, 그의 지지율은 31%였다. 전주보다 2%포인트 내린 것이지만 여전히 1위다. 한국갤럽이 지난 3월 21∼23일 전국 유권자 1천7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에서 나온 결과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1%포인트 내린 17%로 2위를 기록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는 10%(전주와 동일), 이재명 성남시장은 8%(전주와 동일), 홍준표 경남지사는 6%로 뒤를 이었다. 문재인이 30%대에서 안정적인 1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고, 안희정-이재명의 순위도 그대로다. 





몇 차례의 대선후보 토론회도 거쳤지만 좀처럼 그 격차가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물론 민주당 경선 참여 선거인단의 수가 200만명을 넘어서면서 그 ‘숫자’에 변수가 있기는 하겠지만, 여론조사 지표와 민심의 흐름은 그나마 안정적인 문재인으로 운동장이 기울어지는 형국이다. 역대 대선에서 ‘신인급’ 정치인이 급부상해 당선되는 적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문재인의 대세론은 여전히 튼튼한 편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대선이 2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문재인의 대세론은 지난 2007년 이명박의 대세론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가까지 하고 있다. 최근 들어 김종인 전 대표 등을 중심으로 ‘반문연대’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시간이 너무 촉박해 실현 가능성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종인 전 대표 측에서도 ‘시간이 아쉽다. 대세를 거스를 수 있을지 걱정이다’라는 말도 흘러나온다. 워낙 촛불 민심의 화력이 강해 민심이 여전히 ‘정권교체’쪽으로만 쏠려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개헌을 매개로 한 반문연대의 정치 쟁점도 일단 여론에 밀린 모양새다.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후보는 BBK 등 개인을 둘러싼 여러 의혹이 있었지만 본선에서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2017년 문재인 후보도 패권주의 논란, 독단적 리더십 등이 비판을 받고 있지만 판세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2007년이 ‘묻지마 이명박 지지’였다면 2017년은 ‘묻지마 문재인 지지’로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섣부른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반문연대는 현재 마지막 한방을 날릴 소중한 ‘골든타임’ 시기에 놓여 있다. 대선 불참을 선언하는 유력 주자들이 나오지 않는 이상, 반문연대의 그 어떤 정치적 행위도 정략적이라는 비판에 내몰릴 수 있다. 





최근 들어 일부 종편에서는 ‘안티 문재인 패널’에 대한 ‘정리’에 들어갔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언론사들이 정권교체를 감지하고 미리 분위기 만들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일부는 보수성향 패널의 출연을 자제시키고 있고, 일부는 아예 출연을 금지하는 곳까지 생겨나고 있다. 권력이동의 속성을 누구보다 빨리 감지하는 언론사들이 서둘러 줄서기에 들어간 것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동안 권력의 해바라기로 살아온 기존 언론사들이 선택할 카드는 많지 않다는 점에서 당연하다는 반응도 있다. 


한 보수성향 일간지는 문재인을 둘러싼 패권주의 논란에 대해 아예 해명성 기사까지 써주고 있다. ‘친문(친문재인) 패권주의’ 논란에 대해 “마이너리티(소수자)의 생존 전략”이라는 설명을 달아준다. 그리고 ‘실체가 없는데 당 비주류와 비문(비문재인) 인사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 만들어낸 프레임’이라는 더문캠의 부연설명을 달아주고 있다. 패권주의의 주요 근거로 제시되는 친문 비서그룹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썼다. 친문 성향 온라인 당원들이 당내 여론을 왜곡하고 선거를 좌지우지한다는 주장도 과장됐다는 더문캠의 해명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자발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더문캠에서도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문재인의 자신감, 강고한 지지율, 언론사들의 줄서는 분위기 등은 대선을 40여일 앞둔 시점에서 분명 대세론을 더욱 튼튼히 지키는 방패막이다. 하지만 이번 대선도 지난 2007년 때처럼 흘러간다면 정치사에 불행한 이벤트로 기록될지 모른다. 지난 2007년 대선은 후보 개인의 비전과 철학 등에 대한 검증보다는 ‘진보정권 교체’라는 열망만이 선거를 지배했다. 이번 2017년 선거 또한 후보들에 대한 검증과 정책 비교보다는 ‘적폐청산’이라는 깃발만이 펄럭이는 것 같다. 대선까지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지금부터라도 후보 개인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과 이성적인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어찌 보면 선거는, 최선을 뽑는 게 아니라 차악을 선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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