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19대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집권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문재인 전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등 후보 3명의 여론조사 지지율 합이 60%를 넘어서고 있다. 상대가 누가 나와도 이들 톱 3 가운데 한 명이 단일후보가 될 경우 바로 대선 승리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세 후보의 경선 경쟁도 차츰 격렬해지고 있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친 이명박 계와 친 박근혜 계가 둘로 나뉘어 피 튀기게 싸웠던 전력이 떠오른다. 이들 두 계파는 대선이 끝나고서도 정권 내내 수도권 이전 등의 문제를 놓고 드잡이질로 세월을 보냈다. 여당의 두 계파가 사사건건 충돌하면서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삐걱거렸고 민생보다 명분싸움에 더 골몰했었다. 그 갈등은 친박계 박근혜 후보가 집권하면서 더욱 격렬해졌다. 총선 공천 등에서 친박계의 복수극이 이어졌고 결국 보수정권 10년은 친이-친박계의 내전 포화 속에서 막을 내렸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도 어찌 보면 친이-친박계의 감정싸움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친이계의 모진 견제속에 탄생한 친박정권은 전 정권보다 더욱 악랄하게 공무원 사회를 장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핵심측근들만의 권력유지 장치가 필요했고 상상을 초월한 정도의 미세한 곳까지 권력의 실핏줄이 퍼져나가길 바랐다. 친이계가 다져놓은 권력 기반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이다. 정권 초기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 등과 같은 것도 결국은 친이계가 장악해놓은 권력(검찰) 네트워크를 친박계로 바꿔놓는 물갈이의 전주곡이었다.


박근혜 정권은 ‘통치’보다 ‘권력유지’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고 그 핵심장치의 키를 불행하게도 최순실이라는 민간인이 쥐고 있다가 탄핵사태까지 내몰리게 된 것이다. 이렇듯 집권여당의 계파 갈등은 심각한 국정 혼란 사태로 이어지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결국 두 계파는 19대 대선을 앞두고 ‘연대’의 명분을 잃은 채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보수정당 두 계파의 분열을 보면서 현재 진행중인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 중 벌어지는 세 후보간의 갈등이 묘하게 오버랩 된다. 공통점이 있다. 친이-친박계가 죽기살기로 권력싸움을 벌였을 때가 바로 2007년 대선 승리 가능성이 가장 높았을 때였다. 친문-친안-친이계가 현재 죽기살기로 권력싸움을 벌이는 것도 2017년 5.9 대선에서 민주당의 승리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기 때문이다. 정치는 타이밍이다. 하늘이 준 기회를 놓치면 ‘다음’이라는 단어는 없다. 그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측이 안희정 이재명 후보일 것이다. 경선이 무르익을수록 뒤쳐진 안희정 이재명 후보의 ‘분노 지수’도 덩달아 뜨겁게 높아지는 것 같다.





민주당의 경선 레이스를 보면서 2007년 친이-친박계의 갈등까지는 아니더라도(그때의 양측 네거티브전은 정말 정치부 기자 시절 최고의 ‘무서운’ 경험이었다), 세 후보간 갈등이 점점 감정싸움 형태로 치닫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전조는 꽤 심각한 후유증을 동반할 것이다. 정책과 가치의 경쟁이 아니라 ‘타인을 정 떨어지게 하고 질겁하게 만든다’ ‘사람을 질리게 한다’ ‘서운하다’는 등의 다분히 감정적인 전선이 형성되면 한국 정치의 수준을 감안할 때 경선 뒤에도 심각한 후유증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싸움이란 게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그것을 넘어서면 앞 뒤 재지 않고 그냥 맞부딪치게 된다. 그 끝은 증오와 분노, 감정의 앙금밖에 남지 않게 된다. 박근혜 전 대표는 2007년 경선이 끝나고 자신이 해야 할 최소한의 지원유세만 했다. 물론 선거가 일방적으로 흘러갔기 때문에 발벗고 나설 필요가 없기도 했겠지만 경선의 후유증 때문에 자발적인 지원은 없었다고 봐야 한다.


이런 점에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안희정의 분노는 예사롭지가 않다. 문재인 후보가 집권한다고 해도 정권 내내 당내 계파 갈등이 이어지지 않을까 솔직히 우려스럽다. 만약 안희정이 패배한다면, 당연히 대선 이후를 볼 것이다. 이른바 ‘차기주자’ 코스프레를 해야 한다. 현재권력과 맞서야 미래권력이라는 훈장이 붙는 것이다. ‘대통령 문재인’에 당당하게 맞서야 당내 2인자의 정치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 현안을 두고 사사건건 견제를 해야 미래권력의 힘이 나오게 된다. 이는 문재인과 사이가 나빠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차기를 바라봐야 하는 안희정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현재의 안희정 분노는 바로 그 전조를 보여주는 것 같아 꺼림칙하다는 것이다.


사실 정치판만큼 정글의 법칙이 작용하는 곳도 없다. 정치인은 자신을 ‘까는’ 것은 저승에 갈 데까지 기억하고 있다가 반드시 갚아준다. 받은 만큼 정확하게, 아니 2배로 돌려주는 게 정치판의 경쟁논리다. 총선 공천을 취재하면서 느낀 것은 특정후보가 어이 없이 공천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를 들어보면 정말 가관도 아니다. 수년 많게는 10년도 넘은 옛날 일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가 그때의 일을 복수하기 위해 공천에서 탈락시키는 경우를 자주 봐 왔기 때문이다. 이게 정치판의 생존 논리다.





이런 점에서 안희정의 분노는 경선에서 일어남직한, 전투의 한 자락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가 아름다운 경선을 외친 지 이틀만에 한밤에 페이스북에 문재인 후보를 두고 ‘사람을 질리게 한다’는 등의 막말을 쏟아낸 것은 다분히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대응이지만 그게 바로 정치의 한 단면이다. 선조들의 사색당쟁을 보라. 그게 어디 대 중국 외교나 거대한 국정 개혁 과제를 놓고 벌인 정쟁이었던가. 신권을 무시한 왕권의 생트집이거나 왕비의 질투 때문에 벌어진, 지금 보면 황당한 명분 싸움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점에서 안희정의 분노는 불길한 예감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그토록 주장하는 대연정까지는 아니더라도 민주당 내부에서의 소연정마저도 우려하게 만드는 내부갈등의 전주곡처럼 들린다(친이-친박계 갈등보다 더 살벌하고 격렬한 싸움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안희정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 그 정도의 투정은 할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분노 유발자 문재인이다. 집권을 앞둔 유력한 차기 주자가 한참 뒤쳐져 따라오고 있는 약한 상대에게 감정싸움까지 하고 이기려 든다. 통합이나 포용의 메시지는 없다. 오로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만 맞서고 있다.


그래서 거둔 승리는 또 다른 복수만을 부를 것이다. 참여정부에서 잘 나갔던 한 정치인은 “옳은 말도 싸가지 없이 한다”고 해서 한때 비난을 많이 받았다. ‘옳은 일도 싸가지 없이 할 때’ 정치를 볼 맛이 사라진다. 대선은 축제다. 특히 승리를 앞둔 민주당에게는 더 없이 즐거운 축제가 될 것이다. ‘타인을 질겁하게 만들고 정 떨어지게’ 하는 장면은 이제 좀 거둬주었으면 한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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