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예상대로였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세론은 강했다. 적어도 당내에서만큼은 대세론에 확실한 도장을 찍었다고 할 수 있다. 문재인은 당 대선후보 선출의 첫 관문인 호남 경선에서 60.2%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압승했다. 경선 전 혹시하며 안희정 이재명의 분전을 기대하는 측도 있었지만 문재인이 2012년부터 다져온 조직력 앞에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민주당의 호남 경선 결과가 문재인의 압승으로 끝나자 대선 판도 급격히 그쪽으로 쏠리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은 문재인이 대선의 7부 능선을 넘었다라고까지 표현하고 있다. 특히 문재인이 압승을 거두면서 그를 뒤쫓는 안희정 지사와 이재명 시장의 추격 의지마저 꺾게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가히 문비어천가라고 해도 될 정도의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일부 진보 매체들은 이번 문재인의 승리를 두고 문재인 개인의 역량과 노력이 빛을 본 것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이로써 문재인은 경쟁후보들과의 격차를 여유 있게 벌리며 남은 경선투표에서도 선두를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특히 문재인은 호남의 반문 정서를 극복하고 다른 후보들과 3배 넘게 격차를 벌리면서 전체 경선에서 과반 득표 가능성에도 더 가까이 다가섰다. 문재인이 전체 경선에서 과반 득표에 성공할 경우 결선투표 없이 다음달 3일 대선후보로 바로 결정된다. 문재인이 일단 흔들리지 않는 대세론을 입증한 만큼 앞으로 승산이 있을 것 같은 후보를 지지하는밴더웨건 효과 덕을 더 볼 것으로 보인다. 과연 이 효과가 어디까지 갈 것인지는 일단 지켜봐야 한다.


이번 호남 경선의 핵심 포인트는 과연 호남이 문재인을 버렸느냐 하는 점이었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압승을 거두자 문재인의 대권도 끝난 것 아니냐는 섣부를 추측까지 나왔다. 정계은퇴 발언 번복 등 호남에 대한 온갖 악재에 시달려온 문재인으로서도 이번 호남 경선에 모든 것을 걸어야했다. 호남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서는 대선 출마는 꿈도 못 꾸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재인은 경선을 앞두고 전윤철 전 감사원장을 비롯해 캠프 요직에 호남 출신 인사를 앉혔고, 김영록 전 의원을 비롯해 당내 호남 유일의 3선 의원인 이춘석 의원 영입 등을 통해 호남 내 여론 형성층에 다가가려 노력했다. 5.18 정신의 헌법 조항 삽입같은 공약도 호남 민심을 조금이나마 달래주는 호재로 작용했을 수 있다.


결과는 나타났다. 일반국민이 다수 참여한 ARS 투표에서 문재인은 59.9%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캠프도 이 같은 결과에 대해 그만큼 정권교체에 대한 호남의 염원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며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문 전 대표를 호남이 인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문캠프측의 주장에 대해 필자는 유보적인 입장이다. 과연 호남 민심이 오롯이 문재인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을까. 일단 이번 경선의 결과는 지난 총선 때 민주당을 지지했던 열혈 지지자들 가운데 60% 정도의 사람들이 여전히 문재인을 지지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호남 전체의 의견이라기보다 민주당 지지층 가운데 60%가 문재인을 선택했다고 보는 게 맞다. 물론 일반 국민들의 의견도 반영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ARS도 조직력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2012년 경선의 예를 보더라도 민주당의 경선은 조직력에 따라 크게 엇갈렸다. 이번 경선에서 문재인이 호남에서 압승을 거두었다고 표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호남의 민주당 지지층 가운데 60%의 지지를 받았다고 하는 게 맞다. 민주당 경선이 그만큼 조직력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경선 결과가 이번 대선에도 그대로 나타나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른바 숨은 표심에 대한 평가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문재인의 호남 압승은 유보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앞서의 글에서 밝혔듯 민주당은 당의 풀뿌리 조직네트워크가 워낙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비주류의 기적이나 역전극은 거의 불가능하다. 2012년 경선 때도 문재인이 초반부터 세를 확실히 장악하고 나갔고 그 어떤 역전의 빌미도 주지 않았다. 이번 2017년 경선도 2012년 경선의 재판이 될 것이 확실하다. 설마 하며 기적을 바랐던 안희정 이재명 두 후보는 당내 조직력의 쓴맛을 제대로 본 것이다. 당내 주류와 비주류의 격차가 이렇게 크게 되면 아무래도 세대교체의 선순환 가능성은 낮아지게 된다.


당의 권력 집중도도 한 후보에게로 쏠리게 마련이다. 패권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건강한 언로가 형성되지 못하고 비판적이고 대안 중심적인 토론 문화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이런 폐쇄적인 당의 구조를 바꿔나가야 한다. 당의 주류에 대해 비주류들이 안심하고 비판할 수 있는 열린마당을 만들어야 한다. 문재인의 경선 압승은 단기적으로 대선 승리의 파란불을 켜게 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2012년이나 2017년이나 당을 꽉 움켜쥐고 있는 세력이 여전히 공고하게 버티며 그들만의 리그를 만든다면 당의 미래는 없다. 인적 교류도 없게 되면 그 물은 썩기 마련이다.


이런 대세론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향후 문재인은 강력한 리더십으로 대선 판을 확실히 장악하게 되었다. 문재인의 압승은 대선 판세를 비교적 명확하게 정리해주는 효과도 낳았다. 예측 가능한 선거가 된 것이다. 문재인-안철수-유승민-홍준표-심상정의 1차 구도가 확정될 수 있다. 안철수-유승민의 1차 반문연대가 어떻게 성사될지에 따라 향후 구도도 바뀔 것이다.


무엇보다 문재인으로서는 예선에서의 대세론 위력을 본선까지 그대로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서 나오는 자신감이 다른 후보를 압도하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 역대 대선은 자잘한 변수보다 큰 흐름이 잡히면 그곳으로 힘(표심)이 집중되는 경향을 보여왔다. 과연 문재인의 대세론이 59일 대선 당일까지 그대로 이어질까.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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