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의 에드워드 호퍼(1950).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스튜디오의 에드워드 호퍼(1950).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제공)

 

20세기초 현대인이 마주한 일상과 정서를 독자적인 시각으로 담아낸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를 소개하는 대규모 전시가 20일부터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열린다.

서울시립미술관이 미국 뉴욕 휘트니미술관과 공동 기획한 전시로, 드로잉과 판화, 유화, 수채화 등 작품 160여점과 호퍼의 이웃이었던 산본이 기증한 '산본 호퍼 아카이브'의 자료 110여점 등 270여점을 선보인다.

흔히 호퍼는 '현대인의 고독'을 그린 화가로 알려졌지만, 전시는 그의 작업에서 의미가 있는 지역과 키워드를 따라 다채로운 면모를 살필 수 있도록 구성됐다.

애덤 와인버그 휘트니미술관 관장은 19일 기자간담회에서 "호퍼는 그가 보고, 알고, 창조해내고, 소망한 세상을 그렸다"면서 "이번 전시는 뉴욕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확장해 그가 방문했던 장소들, 작품에 대한 접근 방식에 영감을 줬던 의미 있고 중요한 장소를 따라간다"고 소개했다.

 

에드워드 호퍼의 1925년작 '자화상'과 1949년작 '계단'.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에드워드 호퍼의 1925년작 '자화상'과 1949년작 '계단'.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첫 섹션 '에드워드 호퍼'에서는 호퍼의 습작과 자화상, 고향인 미국 뉴욕주 나이액의 고향 집과 연관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고향집을 떠올리며 작업한 1949년작 '계단'은 집에서 바라본 문밖 수풀의 풍경을 담고 있다. 문명을 상징하는 '집'과 문명의 대척점으로서 '숲', 그리고 이 둘을 경계 짓는 계단, 창문, 현관문은 호퍼의 여러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모티브다.

뉴욕에서 삽화가로 출발한 호퍼는 예술가의 꿈을 안고 1906년 당대 예술의 수도로 여겨졌던 프랑스 파리로 간다. 이후 호퍼는 1910년까지 세 차례 파리에 머물면서 야외 작업을 처음으로 시작한다. 킴 코너티 휘트니미술관 큐레이터에 따르면 호퍼는 파리에서 도시의 미장센에 눈을 떴다. 호퍼는 이후 뉴욕에 돌아와 파리 카페를 배경으로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푸른 저녁'(1914)을 완성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당시 혹평을 받았고 이후 호퍼는 미국적인 풍경을 그리기 시작한다. '파리' 섹션에서는 다양한 파리 사람들을 스케치한 수채화 캐리커처와 '푸른 저녁' 등을 볼 수 있다.

 

에드워드 호퍼 '푸른 저녁' 1914년작.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에드워드 호퍼 '푸른 저녁' 1914년작.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뉴욕' 섹션은 호퍼가 평생 머물렀던 뉴욕의 풍경과 뉴요커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들로 꾸며졌다. 20세기 초 뉴욕은 마천루가 형성되고 다리와 고속도로가 건설되던 곳이었다. 그러나 호퍼는 북적이는 도시의 화려한 면모보다는 낡고 사라져가는 건축물의 코너나 지붕에 관심을 기울였다. 고층 건물의 수직성보다는 옆으로 길게 뻗은 다리의 수평선 같은 구도,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점 등도 호퍼 작품에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다. 호퍼의 대표작 중 하나인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은 이번 전시에 오지 않았지만 이 작품을 위한 습작을 '뉴욕' 섹션에서 볼 수 있다.

전시 제목이기도 한 '길 위에서' 섹션에서는 호퍼의 미국 풍경화를 소개한다. 대표작 '철길의 석양'은 일몰을 배경으로 철길 옆의 신호탑과 녹색 언덕을 그린 작품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풍경이다. 호퍼는 종종 사실주의 작가로 분류되지만 실제 관찰에 바탕을 두되 기억과 상상력이 더해진 그림을 그렸던 그의 작업 특성이 잘 드러나는 작품 중 하나다.

'뉴잉글랜드' 섹션에서는 호퍼가 여러 차례 여행했던 뉴잉글랜드 지역의 풍경화를 볼 수 있다. 메인주의 작은 어촌과 바다 절벽으로 둘러싸인 섬을 그린 그림들은 과감한 구성과 거친 마티에르(질감)가 두드러진다. 뉴잉글랜드 지역 중 매사추세츠주 케이프코드 지역과 관련된 그림들은 따로 섹션을 마련했다. 지역 우체국장에게 빌린 집을 그린 '벌리 콥의 집, 사우스트루로'(1930∼1933)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재임 시절 백악관 집무실에 걸었던 그림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섹션에서 소개되는 '이층에 내리는 햇빛'(1960)과 '오전 7시'(1948) 같은 작품은 건축물, 그리고 빛의 효과에 대한 호퍼의 관심을 보여준다.

 

에드워드 호퍼 '맨해튼 다리' 1925-26년.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에드워드 호퍼 '맨해튼 다리' 1925-26년.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제공)

 

호퍼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부인 조세핀 호퍼(1883∼1968)다. 뉴욕예술학교에서 호퍼와 함께 공부했던 조세핀은 호퍼의 충실한 조력자이자 모델이었다. 또 호퍼의 전시 이력과 작품 판매 등의 정보가 담긴 장부를 30년 이상 관리했던 매니저이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세핀 호퍼' 섹션을 따로 마련해 조세핀이 모델로 등장하는 수채화와 유화, 드로잉 등을 소개한다.

두 사람의 관계를 두고는 호퍼가 역시 작가였던 조세핀의 작품 활동을 막았다거나 물리적으로 통제했다는 식의 논란이 있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그런 내용은 언급되지 않는다.

 

에드워드 호퍼 '햇빛 속의 여인' 1961년.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에드워드 호퍼 '햇빛 속의 여인' 1961년.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와인버그 관장은 "호퍼는 어디서나 관찰자 역할을 했고 독보적인 시각의 화법과 내면의 인상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서 특별함을 찾아냈다"면서 "이번 전시에서 거리와 실내를 비추는 극적인 빛과 어둠의 대조, 거칠고 표현주의적으로 칠해진 해안선, 고립된 환경의 고독한 인물 등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를 함께 여는 휘트니미술관은 호퍼의 삶에서 중요한 곳이다. 호퍼 사후인 1968년 조세핀이 작품 2천500여점을 미술관에 기증했고 2017년에는 아서 R. 산본 호퍼 컬렉션 트러스트의 아카이브 4천여점도 이어받았다. 1937년 호퍼의 첫 개인전 역시 미술관의 전신인 휘트니 스튜디오 클럽에서 열리기도 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초까지 휘트니미술관에서 열린 호퍼 전시에는 54만5천여명이 방문했다.

전시는 8월20일까지. 예약제 유료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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