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사진가협회 기념전시 '감각의 방향'

박영숙, 꽃이 그녀를 흔든다(사진=한국여성사진가협회 제공)
박영숙, 꽃이 그녀를 흔든다(사진=한국여성사진가협회 제공)

문명사의 긴 시간 속에서 여성은 항상 남성에 비해 '열등한 존재'로 간주되었다. 미술사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성화가들은 '여성'이라는 젠더의 정체성이 예술적 천재성의 실현을 가로막았다. 작품을 생산하고 공급하는 과정에서 뿐 아니라 후대의 평가에서도 여성화가는 제약과 차별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러한 여성에 대한 미술계의 철저한 침묵 속에서 여성화가의 작품이 남성화가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지는 경우도 있었다.

 

1960년대 말 이후, 페미니즘 미술이 등장하고,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 에바 헤세(Eva Hesse) 같은 세계적인 여성미술가들을 시작으로 여성미술가들이 미술계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며 여성화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변화되는 듯하였다. 

 

바바라 크루거(사진=시카고미술관 제공)
바바라 크루거(사진=시카고미술관 제공)

 

하지만 국제 미술계 전반의 사정을 본다면, 여성화가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차별적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주요 박물관 소장품을 본다 하더라도 여성화가의 작품은 11%정도에 불과하고, 주요 국제 아트페어에 초대된 여성화가는 24%에 머물렀다. 경매시장에서 거래되는 미술품 평가액도 남성화가에 비해 못미치는 금액이다. 

 

물론 여기에는 '젠더'만의 문제가 아닌 여러 다양한 이슈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을 것이다. 그래서 미술사에서의 차별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며, 현재 개최되고 있는 <감각의 방향> 전시를 통해 페미니즘 미술을 다시금 살펴보려 한다.

 

올해로 창립  25주년을 맞는 한국여성사진작가협회(KOWPA)는 창립기념 행사로 여성 작가 릴레이 전시 프로젝트 <감각의 방향>을 진행한다. 전시는 5월9일부터 11월12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김영섭 사진화랑에서 진행되며, 7명의 여성작가들이 전달하는 이야기를 사진, 비디오, 설치, 퍼포먼스의 형태로 선보인다. 

 

전시에는 한국의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사진가 박영숙, 사회적 재난과 여성을 주제로 탐구하는 임안나, 우너초적 여성성을 신체와 관계로 접근하는 김도희, 영성 여성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최인숙이 참여한다. 

 

페미니즘 미술은 크게 3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여성이 남성에 종속된 것으로 다루어지며,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사회비판적 작품들이다. 

둘째, 본질적인 여성성이 반영된 요소 가령, 공예나 여성의 몸을 매체로 사용하여 예술의 이해를 폭넓게 만드는 작품들이다. 

셋째, 두 가지 유형들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고착화된 여성 이미지에 대한 문화 이데올로기적 편견을 비판하는 작품들이다. 

 

페미니즘 미술에서 나타나는 3가지의 유형은 완전히 구분되기 보다는 서로 공존하고 갈등하며 '페미니즘 미술'이라는 큰 흐름을 형성한다. 

 

<감각의 방향>은 이러한 페미니즘미술에 대해 다룬다. 

박영숙의 '꽃이 그녀를 흔든다'시리즈는 꽃과 여성을 향한 아름다움, 연약함이라는 남성 이데올로기적 사회 안에서 형성된 문화적 상징을 거부한다. 사진 속 여성의 신체와 시선은 수동적 존재가 아닌 능동적인 주체로서 자아 이미지를 실현한다. 

박영숙, 꽃이 그녀를 흔든다(사진=한국여성사진가협회 제공)
박영숙, 꽃이 그녀를 흔든다(사진=한국여성사진가협회 제공)

 

최인숙은 현대 여성을 고대 신화 속의 여사제로 형상화하여 인물 사진을 표현했다. 초자연적 에너지를 상징하는 소품들과 다양한 직업을 가진 여성 인물들의 퍼포먼스 행위로 '샤먼 가이아' 시리즈를 선보인다. 

최인숙, prayer of shaman(사진=한국여성사진협회 제공)
최인숙, prayer of shaman(사진=한국여성사진가협회 제공)

임안나는 누드라는 장르와 사진행위를 거리 두기로 바라본 작업인 '외눈박이 천사' 시리즈를 선보인다. 누드는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오래된 예술 형식이다. 그녀는 국내 여러 지역에서 열리는 세미누드 촬영 대회에 참가하며 작업하였다. 

임안나, 외눈박이와 천사(사진=한국여성사진가협회 제공)
임안나, 외눈박이와 천사(사진=한국여성사진가협회 제공)

김도희는 '벽 잠행 바닥' 시리즈를 통해 2015년 텍사스촌에서 진행한 1인 프로젝트 결과물을 보여준다. 텍사스촌은 속칭 성이 상품화된 공이다. 10여년 전 큰 화재 이후 출입금지구역으로 방치되어 온 성매매업소 건물을 몰래 오가며 쓰레기를 치우고 재를 닦아내는 등의 행위를 통해 당시 감응의 기록물을 선보인다. 

 

전시는 사진예술을 통해 다양한 페미니즘 담론을 제시하고, 고착화된 젠더 관념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등 변화하는 여성문화 담론과 새로운 여성성을 탐구하고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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