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초대 개인전 Beyond the Atolls

(사진=호리아트스페이스 제공)
(사진=호리아트스페이스 제공)

 

5월2일부터 6월10일까지 호리아트 스페이스에서 체코의 현대미술가 얀 칼럽(Jan Kaláb)의 개인전 <Beyond the Atolls>을 진행한다. 얀 칼럽은 대만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한국에서 전속 작가의 이름을 올린 체코 아티스트이며, 이 전시느 한국에서 열리는 첫 개인전이다.

 

얀 칼럽(b.1978)의 청소년기는 동서독 통일을 비롯한 유럽의 정치적 격변기였으며, 몸소 체험한 시대적 변화의 감성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크게 주목받았다. 특히 이미 십 대 후반부터 체코에서 볼 수 없었던 그라피티 아티스트(Graffiti artist)로 활동하며 특유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해왔다.

 

전시 제목인 <Beyond the Atolls>에서도 짐작되듯, 얀 칼럽의 추상회화엔 몽환적인 꿈과 이상향이 담겨 있다. 마치 망망대해에서 만난 산호초처럼, 새로운 설렘을 선사하며 신세계로 안내하는 환영의 창을 보는 듯하다. 너무나 황홀하고 감동 어린 색의 향연이다. 회화와 조각의 경계로 특정 짓기 힘든 유기적인 형태의 화면들은 보는 시점에 따라 또 다른 생명력을 자아낸다. 제각각의 미세한 세포들이 하나둘 발아되는 순간을 포착한 듯 신묘한 감각을 지닌 작품들이다.

(사진=호리아트스페이스 제공)
(사진=호리아트스페이스 제공)

 

1978년에 프라하에서 태어난 얀 칼럽은 체코의 대표적인 그라피티 2세대 작가이다. 그의 유소년기는 사회적 급변기로 흔히 ‘피를 흘리지 않고 시민혁명을 이룩한 것’을 비유하는 벨벳혁명(velvet revolution)의 시기였다. 1989년 체코(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정권이 붕괴되면서 국경이 개방됐고, 외부에서 들어온 그라피티 문화는 감수성이 한창 예민했던 얀의 예술가적 감성을 일깨워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90년대 초 15세 소년들은 늦은 밤 프라하 거리를 배회하다 적당한 장소를 발견하면 스프레이 페인팅으로 그들만의 태그를 달았다. 물론 리더는 얀이었고, 여러 번 체포되기도 한다.

 

얀과 그의 친구들은 상징적 크루인 DSK(Da Style Killas)를 설립해 1994~95년 처음 베를린 여행을 시작으로 유럽을 거쳐 뉴욕에 이르기까지 ‘그들만의 순례 여행’을 떠났다. 이 시기엔 지금처럼 본명을 사용하진 않았다. 그만의 태그로 사용된 예명은 ‘SLESH, CAK, CAKES, Point’ 등이었다. 2000년 초반에 뉴욕 순례에서 지하철이나 기차에 칠한 것이 250여 대에 이르렀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거리에서만 예술가로 성장하진 않았다. 얀은 2002년 체코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1800년 설립된 프라하미술아카데미에 입학하면서, 어려서부터 익힌 그라피티를 통해 글쓰기 형태와 콘텐츠의 관계를 심층적으로 연구하고 표현의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가령 글자의 모양이나 색상, 선묘, 스케일 등의 분석으로 좀 더 부피가 큰 3D 그라피티 조각까지 개발해 학교 주변 건물의 외부에 시현하기도 했다.

(사진=호리아트스페이스 제공)
(사진=호리아트스페이스 제공)

 

얀 칼럽은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작가로 체코의 화가이자 그래픽 아티스트인 프란티세크 쿠프카(1871~1957, Frantisek Kupka)를 꼽는다. 쿠프카는 초기 리얼리즘 회화로 시작해 유럽 추상 미술운동과 색채성이 풍부한 입체주의의 한 분야인 오르피즘(Orphisme) 경향의 작품을 선보였다. 그래서일까, 풍요로운 색채의 감각적인 조율과 독창적인 화면의 조형성은 얀 칼럽 작품이 지닌 주된 인상이며 경쟁력이다. 2005년경 그만의 독창적인 시각을 보여준 사례도 있다. 포장도로에 생긴 균열이나 빈 부분에 강렬한 색감으로 칠한 작은 돌들로 채운다든가, 기하학적 구성으로 보도(步道)의 넓은 지역을 칠하는 과도기적 실험은 그만의 작품세계를 만드는 기반이 된다.

 

어렸을 때부터 단련된 게릴라 그라피티의 속도감과 스케일, 새롭고 실험적인 그래픽 표현 연구 등은 현재의 세련되고 복잡한 ‘얀 칼럽 스타일 추상’의 기초가 되었다. 특히 쿠프카에 대한 동경심에 이어 체코 출신 영국 건축가 에바 지르지체나(Eva Jiřičná)에게 프라하 감성의 예술과 건축, 디자인을 종합적으로 배우면서 그만의 ‘순수 기하학 회화’라는 조형언어를 완성하게 되었다. 얀이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무한성, 재해석된 중력, 끊임없이 변모하는 기하학적 실험 등은 그가 만들어 내는 우주의 힘이 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게 된 것이다. 

(사진=호리아트스페이스 제공)
(사진=호리아트스페이스 제공)

 

2011년에 들어서면서 단순화된 큐브와 원형을 근간으로 한 지금의 작품 형식들이 출현하게 된다. 첫 그라피티 작품을 시작한 지 26년 만이었다. 하지만 그 안엔 ‘얀 스타일 그라피티의 상징성과 본질’은 그대로 담겨 이어진다. 제한과 경계가 없는 가상의 세계를 구축하듯, 특유의 조화로움이 구현된 작품세계를 선보인다. 서로 다른 특정한 색들이 어우러져 몸의 체온을 나누듯 다양한 감정을 만들어 낸다. 이것은 얀이 추구하는 색채예술의 언어이자, 교감의 첫 출발점이다. 얀의 작업에 담긴 여러 아이디어나 작가가 심어놓은 감정들 역시 색이 불러일으키는 감성적 언어로 읽어낼 수밖에 없다. 얀에게 원(圓)의 형상은 다원적 개념을 지니고 있다. 원(圓)은 겉보기에 가장 단순하고 쉬워 보이지만, 한편으론 ‘해석하기 가장 복잡한 모양’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얀의 원(圓)은 존재감으로써의 구(球)와 공허함으로써의 뚫림인 구멍(空)의 개념을 동시에 충족시킨다. 온전함과 불완전함, 움직임과 멈춤의 양립된 감성을 한꺼번에 품고 있는 묘한 생명력을 지녔다. 이런 특성들은 소위 얀이 추구하는 ‘미세 우주의 표현법’일 수도 있겠다. 이처럼 얀의 그림은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매우 다양한 형상과 의미로 해석된다. 어떤 이는 신비한 파도의 물결을 떠올리기도 하고, 어두운 밤하늘에 빛나는 별빛이나 행성, 최초의 생명을 잉태한 세포의 분열 장면, 이름 모를 박테리아, 시공을 넘어선 천체의 존재로까지 해석의 문은 열려 있다. 그런 면에서 그림에 담긴 얀 칼럽의 생각이 궁금하다. 굉장히 구체성을 지닌 물성으로 느껴지는 얀의 추상회화에 어떤 의미가 담겼을까?

 

“제 그림은 물질적인 세계를 가리키지만, 구체적인 무언가를 포착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이 세상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창조하고, 그 본질을 시각적으로 구현해보려 노력합니다. 간혹 모양이 유동적이어서 생물학적 형태를 떠올리기도 하고, 기하학적 형태들은 거시적인 우주를 떠올리기도 할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변화하는 형태의 과정’일 뿐입니다.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 자체가 얼마나 많은 우주의 본질을 담고 있는가입니다.” 

 

얀 칼럽 작품이 선보이는 색의 병치는 회화적 질감의 완벽성과 다중적 시각에서 바라본 공간성의 여백미를 동시에 충족시켜 준다. 마치 아직 드러나지 않은 어느 자연의 생명력을 예술가의 영감으로 표현해낸 듯하다. 그렇게 얻어낸 얀 칼럽의 구형(球形)은 데미안 허스트나 야요이 쿠사마, 우고 론디노네, 아니쉬 카푸어 등 익히 알려진 작가들의 그것과는 또 다른 특성을 선보인다. 그라데이션으로 조합된 색의 교묘한 어우러짐은 전체의 완성 과정이 순수한 수작업의 성과다. 덕분에 우리는 얀이 선보이는 추상의 관문을 통해 더없이 평화로운 휴식과 평온함을 만나게 된다.

 

호리아트스페이스

무료관람

5월 2일부터 6월1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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