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은 피그미, 오바마는 열대 우림 원숭이”




북한 미사일과 미국의 첨단 전투기가 한반도를 휘감으며 실력 행사를 하더니 이제는 무시무시한 말 폭탄으로 한반도 상공이 또 다시 혼전이다. 


'선빵'은 트럼프 미 대통령이 먼저 날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9월 19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작심한 듯 북한에 해댔다. 


“북한은 범죄자 무리이며 타락한 정권이기 때문에 올바른 다수가 이 사악한 소수에 맞서 싸워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악이 승리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을 악이라고 한 것이다. 북한을 악으로 규정한 건 트럼프가 처음은 아니다. 2001년 이미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바 있다. 악은 뿌리 뽑아야 할 대상이다. 그래서 악을 척결하기 위해서는 행동이 필요하다. 과거 부시는 북한을 악으로 규정 했지만 북한에 대한 행동엔 돌입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나라가 폭탄 맞았지만)


하지만 트럼프는 한발 더 나아갔다. ‘로켓맨’ 김정은이 자신은 물론 정권에 대한 자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며 미국과 동맹을 지키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다.


트럼프의 말 선빵에 북한도 발끈하며 즉각 반격했다. 





리용호 외무상이 미국 대통령을 개에 갖다 붙인 것이다. 리용호 외무상은 20일 "개들이 짖어도 행렬은 간다는 말이 있다"며 "개 짖는 소리로 우리를 놀라게 하려 생각했다면 그야말로 개꿈"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보좌관들이 불쌍하다"고도 했다.


사실 북미 정상을 향한 말폭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2년 초반. 이번에도 선빵은 미국이다.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피그미라고 부른 것이다. 2002년 5월 공화당 상원의원과의 비공개 대화에서였다. 아프리카 적도 부근의 키 작은 흑인을 일컫는 피그미. 흔히 보잘 것 없는 사람을 비유하는 단어에 김정일에게 갖다 붙인 것이다. 더 나아가 식탁에서 버릇없이 구는 아이 같다고도 했다. 


당연히 북한은 발끈했다. 당시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나서 부시를 '불망나니', '도덕적 미숙아', '인간추물' 등으로 불러 양측 사이에 가시 돋친 말 전쟁이 벌어졌던 것이다.


가장 최근 사례는 오바마에 대한 북한의 선빵이다.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국은 2014년 12월 27일 오바마 대통령을 “열대우림 속에서 서식하는 원숭이 상”이라며 “말과 행동이 경망스럽다”고 비난했다.


이는 김정은 암살을 다룬 소니사의 영화 ‘인터뷰’를 격렬히 비난하면서 오바마에 대해 원색적으로 조롱한 것이다.


이에 오바마는 대응하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 부부는 미국 내에서조차 인종차별적인 단어인 원숭이로 모욕 받는 일이 종종 있었다. 미국 웨스트 버지이나의 한 소도시 시장은 미셸 오바마를 '하이힐 신은 원숭이'에 비유했다 사임하기도 했는데, 미국 내에서 조차 이런저런 인종 차별적 모욕이 나왔기에 북한이 하는 말에는 으레 그러려니 한 것일까?  


하지만 퇴임 뒤엔 인종 차별적 모욕에 대해 아픈 마음을 토로했다.  2017년 7월 미셸 오바마는 '원숭이'에 비유당한 일이 "가장 지우고 싶은 기억"이라고 속내를 털어 놓았다. 백악관 8년 동안 인종 비하 발언을 들었을 때가 가장 속상했다는 것이다. 


피그미, 인간추물, 원숭이, 로켓맨, 개


북한과 미국 사이에 원색적인 막말이 결코 한반도 정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만큼 양쪽의 입장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이고, 간극을 메우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걸 반증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 막말이, 원색적 대결이 그대로 끝까지 갈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김정일을 피그미라고 불렀던 부시 대통령은 2007년엔 태도가 완전히 바뀐다. 2007년 5월 부시 대통령은 버릇없는 아이, 피그미를 미스터라고 호칭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6자회담 9.19 공동 성명 이후 북한 비핵화 실행 방안을 만든 2007년 2.13 합의가 맺어진 직후이다.


그 이후는 더 극적이다. 


2007년 12월 부시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 앞으로 보낸 친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친애하는 위원장께(Dear Mr. Chairman)” 


그리고 

“마음으로부터(Sincerely)... 미 합중국 대통령 조지 부시”로 마무리 된다.


당시 페리노 백악관 대변인은 백악관 문장이 찍힌 편지지에 친서가 작성됐으며, 부시 대통령이 친필로 서명했다고 설명했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9.19 공동성명에 이어 2.13 합의로 액션플랜을 마련한 6자회담 당사국.


2007년 10.3 합의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 대 행동 계획을 왕성하게 논의했다. 특히 2007년 12월 당시는 북한의 완전한 핵 신고를 앞두고 있던 때였다. 완전한 핵 신고는 북한이 그동안 만든 핵탄두 수와 무기급 핵물질의 양, 핵기술과 핵물질이 다른 나라와 오고간 내역 등을 신고하는 절차를 말한다.


부시 대통령이 최고의 격식을 차린 것은 북한이 완전한 핵 신고를 거쳐 핵을 폐기하고 북-미 관계를 정상화하자는 의지를 직접 밝힌 것으로 당시는 해석됐다. 하지만 북한이 2007년 12월 말로 예정된 완전한 핵 신고를 이행하지 않으면서 합의는 물거품이 됐다. 김정일의 호칭이 5년 동안 피그미에서 미스터 체어맨으로 옮겨 갔지만 성과는 없었다





어쨌든 북한과 미국이 서로를 향해 독한 말과 표현으로 치고받은 건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독한 말과 원색적 비난이 격식을 차린 언어로 바뀌기까지는 정말로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완전 파괴’ vs ‘개짖는 소리‘ 로 맞붙은 북-미간 말폭탄 대결. 


한반도 정세가 심상찮은 요즘 이 조폭의 말들이 다시금 외교의 언어로 돌아오기엔 한참의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김연/통일전문기자


김연 통일전문기자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10여년동안 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이슈를 취재했다. 지금은 모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북한정세와 남북관계 관련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인동의 시절에 꽃피는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저작권자 © 피처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