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틸러슨 국무장관이 북한에게 “그냥 나오라”고 했다. “날씨 이야기도 좋고, 테이블 모양 이야기도 좋다”며 일단 서로 만나자는 거다. 언론에선 미국이 기존에 요구했던 ‘북한 선 비핵화 약속’에서 한 발 물러난 파격적인 제안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중국 관영 매체도 “미국이 양보했다”며 긴급 속보를 내보기도 했다. 



하지만 미 외교 수장의 ‘화끈한’ 무조건 대화 제의를 바라보는 필자의 속내는 착잡하다. 북한과 미국사이에 사전 조율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북한과 미국 간의 대화가 물론 순탄할 리 없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만나기부터 하면 분명 덜컹거리고, 서로 얼굴 붉히고, 마지막엔 차기 회담 일정도 잡지 못하고 그냥 끝날 공산이 크다. 그렇게 되면 대화는, 만남은 안하느니만 못한 형국이 될 것이고, 예측불허의 정세로 내몰릴 것이다. 



이걸 모를 리 없는 미 외교 수장이 북한에게 “그냥 나오라“고 한 건 오히려 다른 배경이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틸러슨 장관이 뭔가에 쫓기고 있기 때문에 다급하게 대화 시그널을 보낸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인 것이다.


그러면서 틸러슨 국무장관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내용을 공개했다. 



북한 유사시 비상 대책을 미군과 중국군 고위관계자 사이에 협의했다는 거다. 내용도 구체적이다. ① 중국은 북한 급변사태 때 대량 탈북을 우려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책도 마련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자유 아시아 방송은 중국이 길림성 장백현에 북한 난민 수용소 5곳의 건설을 추진한다는 문건이 발견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틸러슨은 또 ②미국은 북한 핵무기를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둘 것이며 북한 핵무기가 원치 않는 이의 손에 들어가는 걸 막겠다고 했다. ③그러면서 미군이 휴전선을 넘어 북한에 들어가더라도 작전이 끝나면 다시 38선 이남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중국에 약속했다고 밝혔다. 



북한 정권 교체 시 미군이 북한에 주둔하는 시나리오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불식시킨 것이다. 미군의 북한 진주를 큰 안보 위협으로 보고 북한을 ‘전략적 완충지대’로 여기는 중국을 안심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쯤 되면 미국과 중국은 북한 급변사태가 곧 현실화될 수 있음을 알고 있으며 이에 대비한 비상 대책을 상당 수준으로 서로 협의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중국은 그동안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언급 자체를 꺼렸다. 이런 논의를 한다는 것 자체가 북한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도 있고, 한반도 안정을 크게 해칠 수 있기 때문에 중국 입장에서는 하나의 금기였던 사항이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북한 김정은 정권의 교체 혹은 북한 선제 타격에 대한 움직임, 특히 미국내 움직임이 그만큼 긴박하다는 걸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틸러슨 국무장관은 "첫 폭탄이 떨어질 때까지 외교적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고 미 백악관 맥매스터 안보보좌관도 “지금이 무력 충돌을 피할 마지막이자 최고의 기회”라고 강조한 걸 보면 미국 측 입장은 ‘끝내 안 되면 군사행동으로 옮겨갈 수 밖에 없다’는 걸 내포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한 것이기도 하다.


틸러슨 국무장관의 무조건 대화 제의에 미국 백악관 관리는 “지금은 대화할 때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지만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의 대북 견해는 바뀌지 않았다”며 다소 모호한 입장을 내놓는 데 그쳤다. 트럼프의 입장은 그대로이지만 국무장관이 한번 해 보겠다고 하니 일단 맡겨 보겠다는 건지 현재로선 명확하지 않다.





미국 언론에선 국무부와 백악관의 말이 달라 혼선이 빚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차라리 ‘선 대화냐, 북한의 선 비핵화 다짐이냐’ 하는 정책 우선 순위를 두고 백악관과 국무부가 빚는 혼선이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오히려 다행질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 미국 국무장관의 “그냥 나오라“고 하는 무조건 대화 제의가 트럼프에게 사전에 보고된 사항이면 북한의 반응과 미국 핵심 수뇌부의 태도에 따라 한반도 정세는 어느 때보다도 긴박하게 돌아갈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아무런 존재감이 없다는 사실은  상황을 더 불안하게 만든다. 



김연/통일전문기자



김연 통일전문기자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10여년동안 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이슈를 취재했다. 지금은 모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북한정세와 남북관계 관련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인동의 시절에 꽃피는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저작권자 © 피처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