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항공사 몸수색 당해 미국 못가고…


18년 전 일이다.


2000년 9월 4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


인구 2천만 나라의 국가수반 일행이 미 아메리칸 항공사 탑승 수속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보안 검색이 매우 엄격했다. 칠순의 국가수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규정에 따라 손으로 몸수색을 하고 겉옷과 신발도 벗겼다.


"일국의 국가 원수를 몸수색 하다니…. 새로운 천 년을 축하하고 인류의 발전과 세계 평화를 논의하려는 UN 밀레니엄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사절단을, 그것도 미 국무부가 정식으로 비자를 내고 미국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가는 국가 원수급 인사를 이렇게 대우하다니…"


해당 국가는 분개했다. 몸수색에 항의해 탑승을 거부했고 결국 비행기편 예약은 취소됐다.


이후 주장은 엇갈린다.


아메리칸 항공 측은 다른 뉴욕 행 비행기를 제공했다고 주장하지만, 해당 국가는 아메리칸 항공 측이 불량국가 운운하면서 철저한 검색 입장을 고수해 결국 미국행을 포기했다고 말한다.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미국 방문이 무산된 순간이다.


당시 미국은 “김영남이 뉴욕에 오면 상당한 수준의 고위급 대화를 할 계획이었고 이를 통해 미사일 문제 등 북-미 관계에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 걸로 알려졌다. 표면상으론 항공사의 엄격한 보안 검색 때문에 북-미 관계 전기가 무산된 것이다.


② 김정일에 앞서 서울에 올 수도 있었는데…





항공사 홀대라는 표면적 이유로 미국행이 불발된 김영남은 북한에선 김정일 다음 가는 권력 2인자이다. 게다가 북한 최고 지도자 김정일의 격을 높이기 위한 훌륭한 명분이자 장치이기도 하다.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2000년 3월 베이징 남북 특사 회담.


당시 북한이 ‘김대중 대통령-김정일 위원장 정상회담’이라는 표현에 반대해 어려움을 겪었다고 회담에 참석한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술회했다. 북한의 국가수반은 김영남이라며 ‘김대중-김영남 정상회담’을 하고 이 기회에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과의 상봉을 한다고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남한으로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었고 결국 그렇게 되지도 않았지만 북한이 김정일을 높이기 위한 명분과 장치로 김영남을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그런 김영남이 사실 남한에 올 뻔했다.


남북은 당시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서울 답방에 합의했다. 하지만 방문 시기를 명확히 하자는 남측의 요구에 김정일은 “벌써부터 논의하는 건 시기상조”라며 부정적 입장을 내비쳤다. 대신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먼저 서울을 방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2000년 9월 김용순 북한 특사가 남한에 왔을 때 “김정일 서울 답방은 꽃피는 4~5월 경 추진하기로 하고 이에 앞서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12월 서울 방문을 논의했다”고 임동원 전 국정원장은 밝혔다.


하지만 이것도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③ 평창에 오는 북 김영남…북미 접촉은?





1928년에 태어나 북한 헌법상 국가수반에 오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외교관으로 입문해 1983년부터 1998년까지 북한 외교 수장을 지냈고, 명목상의 북한 국가원수 자리를 지킨 지 20년. 수많은 외교무대를 누볐지만 미국행은 불발됐고 한국행도 우여곡절 끝에 성사되지 않았다.


그런 김영남이 국가수반 자격으로 북한 대표단을 이끌고 올 2월 9일 평창에 온단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4년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 등 북한 우방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대표단장으로 참석해 정상 외교활동을 벌이기도 한 김영남이다.


하지만 올해 90세로 고령에다 김정은의 얼굴 마담에 불과해 김영남이 이번 방문에서 의미 있는 외교 행보를 보이기는 어려울 거라는 평가가 많다.



▲ 미국 펜스 부통령 부부.



더구나 방한하는 미국 펜스 부통령은 김영남과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해 달라며 북-미 최고위급 사이의 우연한 조우마저도 차단하려고 한다.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는 북한의 명목상 수반을 잠시라도 만나게 되는 외교적 파장을 철저히 피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 틸러슨 국무장관은 조금 결이 다른 말을 내놓았다. 평창에서 북-미간의 접촉 가능성을 묻자 “그냥 지켜보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봐야 한다”고 한 것이다.


이번 평창에선 북-미간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김연/통일전문기자


김연 통일전문기자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10여년동안 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이슈를 취재했다. 지금은 모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북한정세와 남북관계 관련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인동의 시절에 꽃피는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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