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1600 Pennsylvania Ave., Washington D.C.에 내리다.


현지시각 6월 1일 오후 1시 12분 검정색 SUV 차량이 백악관에 도착했다. 북한의 2인자, ‘김정은의 복심’ 김영철 부위원장이 자신들이 적이라고 부르는 나라의 핵심 장소에 내렸다. 뉴욕에서 워싱턴까지 4시간 가량을 차로 달려왔기에 가는 여정에 미국 일상의 모습을 차창 밖으로 지켜봤을 김영철 부위원장. 18년 전 조명록 총정치국장이 군복을 입고 나타난 것과는 달리 짙은 색 양복에 넥타이 차림으로 백악관에 들어섰다. 


다소 긴장된 차림의 김영철 부위원장.


미국 백악관 존 켈리 비서실장이 직접 영접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있는 집무실 오벌 오피스로 안내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평양에 함께 갔던 앤드루 김 CIA 코리아 임무센터장과 마크 램버트 국무부 한국과장도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최강일 북 외무성 국장대행과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은 건물 밖에서 대기했다.


그리고 이어진 트럼프 대통령과 예방. 김영철 부위원장은 흰색 봉투에 든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다.


“김 부위원장은 내가 지금 김정은 친서를 읽어보기를 원합니까?”

“나중에 읽으셔도 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친서를 뜯어보지는 않았지만 매우 좋고 흥미로운 친서라고 평가했다. 약 80분가량 계속된 면담에서 양측은 열흘 후에 있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의제에 대해 최종적으로 의견을 나눴다. 미국에선 폼페이오 장관과 켈리 비서실장이 배석했다. 북한의 껄끄러운 감정을 의식했는지, 그리고 이를 미국이 배려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리비아식 모델을 주장해 북한 비난 담화의 대상이 됐던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볼턴 안보 보좌관은 참석하지 않았다.


세기의 회담을 마지막 주춧돌을 놓는 면담이 성공적이었을까?





면담을 마치고 나온 김영철 부위원장의 표정이 한층 부드러워졌다. 배웅 나온 트럼프 대통령과 여유롭게 환담도 나누고, 동행했지만 백악관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최강일 외무성 국장 대행과 김성혜 통전부 실장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인사를 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고, 옆에 불러서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 대통령의 이례적인 북한 대표단 환대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 김영철 부위원장이 차량에 오르도록 배려했고, 북한 대표단이 백악관을 떠날 때 까지 자리를 지키는 파격도 보였다.


② 6월 12일 ‘빅딜 프로세스’가 시작된다.


자신의 말대로 “북한에서 두 번째 힘센 사람(Second most powerful man)” 김영철 부위원장을 떠나보낸 트럼프 대통령은 열흘 후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북한 위원장을 만날 것이라고 기자들 앞에서 밝혔다. 한때 본인의 전격 취소 발표로 혼돈에 빠졌던 세기의 회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개최를 공식 확인한 것이다.


폼페이오 방북과 김영철 방미로 이뤄진 ‘비핵화와 체제 보장에 대한 사전 조율’이 마음에 들었는지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립 서비스를 제공했다. 





회담 중에는 새로운 대북 제재를 하지 않을 것이며 ‘최대의 압박'(maximum pressure)이라는 말이 더는 사용되질 않길 바란다고 까지 밝혔다. 북한이 확실한 체제 보장을 원한다는 점을 의식한 듯 한국전쟁의 종전 문제도 언급했다.


“한국전쟁의 종전선언은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일이다. 우리가 70년이 넘은 한국전쟁의 종전을 논의한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느냐?”


트럼프 대통령은 1953년 이후 75년간 정전상태인 한국전쟁에 대한 종전 문제도 논의하겠다고 밝히면서 북미 정상 회담 전에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에서 남북미 정상이 참여하는 종전 선언이 나올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확실하고 완전하게 비핵화를 이뤄야 한다는 전제를 분명히 했다.


“김정은이 비핵화에 전념할 것이라고 믿는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것이 일어나기를 보고 싶어 한다. 그는 조심스럽게 하기를 원한다. 그는 달려가서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말했다. 우리는 제재를 가하고 있다. 매우 강력한 제재다. 그들이 하지 않는다면 제재를 해제하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들은 그게 얼마나 강력한지 봐왔다. 이란과 관련해서 그게 얼마나 강력한지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제재를 가하고 있다. 어떤 시점에서 나는 북한에 대한 제재를 해제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목표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 모든 게 ‘빅딜 프로세스’의 시작이라고 규정했다.


"6월12일 빅딜이 시작될 것이다. 이날 사인을 하지 않을 것이며, 과정을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시간을 갖고 천천히 갈 수도, 빨리 갈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은 무언가 일어나길 희망하고 있고 그것을 만들어낸다면 대단한 일이 될 것이다. 그 과정은 싱가포르에서 12일에 시작될 것이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이 한 번이라고 말한 적이 없고 한 번에 합의가 성사된다고도 말하지 않았다며 회담이 계속 열릴 것임을 시사했다. 6월 12일 싱가포르 회담에서 북한 비핵화에 종지부를 찍는 합의가 나오지 않더라도 후속 회담을 열어 "결국에는 매우 긍정적인 결론에 도달”해 북한 비핵화를 이뤄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은 북한의 안전을 확실히 할 것이다. 북한은 위대한 나라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두 차례 방북과 한 차례 방미로 이어진 2인자들의 특사 외교와 친서 교환. 

숨 가쁜 사전 조율끝에 나온 ‘트럼프 모델’에 만족한다는 김정은 위원장. 

“회담은 매우 성공적일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최종 조율된 뒤 나온 당사자들의 발언은 희망을 품게 한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역사적인 그리고 전례가 없었던 ‘한반도 빅딜 프로세스’가 이제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김연/통일전문기자


김연 통일전문기자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10여년동안 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이슈를 취재했다. 지금은 모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북한정세와 남북관계 관련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인동의 시절에 꽃피는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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