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담판, 세기의 대화로 불리는 북미 정상회담의 장소와 시간이 확정됐다.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싱가포르 현지 시각 2018년 6월 12일 오전 9시에 만난다고 발표했다. 우리 시각으로 6월 12일 오전 10시. 정상회담으로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이른 시간부터 두 정상이 만나게 되는 것이다. 오전 단독 회담에 이어 오찬, 오후 확대 정상회담까지 가능한 시간 선택이다. 


또 미국 동부 시각으로는 6월 11일 밤 9시다. 미국 방송의 프라임타임 시간대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최대한 시청자들을 확보할 수 있는 'SHOW-TIME'이다. 


장소도 확정 발표됐다. 백악관 대변인이 트윗으로 세계적 특종을 알렸다. 싱가포르의 휴양지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 장소가 갖는 상징성도 만만치 않다. 그 유래는 분명 북미 정상회담과 크게 관련이 없지만, 북한과 미국이라는 두 나라의 대좌인 만큼 호사가들은 그 유래에 북미 두 나라의 관계를 빗대어 해석하기도 한다. 


① 해적 섬에서 ‘평화와 고요’가 되다


싱가포르 본섬에서 남쪽으로 800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센토사섬. 동서로 4km, 남북으로 1.6km 길이, 면적으로는 4.71km²의 작은 섬이다. 하지만 원래 이름은 무시무시하다. ‘블라캉 마티’, 등 뒤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섬이라는 뜻이란다. 해적의 은신처였다는 전설이 있다. 이 섬이 1960년대 영국에서 싱가포르로 넘겨지면서 관광지로 본격 개발되었다.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 총리가 이 섬을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1972년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산스크리트어로 ‘만족’을 의미하는 단어, 말레이어로 ‘평화와 고요’를 뜻한다는 센토사로 작명한 것이다. 이후 세계 최대 규모의 해양 수족관과 골프장, 고급 리조트, 테마파크인 유니버설 스튜디오 싱가포르 등이 잇따라 세워졌고, 연간 1900만 명이 찾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등 뒤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섬에서 평화와 고요의 섬으로





북-미 관계도 그랬다. 북한 핵 개발과 미국의 적대 정책으로 서로 불신하고 위협하는 관계였다. 북한은 미국을 철천지원수로 불렀고, 미국은 북한을 악의 축, 불량국가로 치부했다. 한국전쟁 이후 무력을 동원한 충돌만 없었지, 언제든지 상대방 등 뒤에서 해코지할 수 있는 대립관계였다. 그런 두 나라가 핵 포기와 체제보장을 놓고 역사상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갖기로 했다. 이제는 이름이 ‘평화와 고요’로 바뀐 바로 그 센토사섬에서 말이다. 서로 상대방을 죽일 듯이 비난하던 것에서 벗어나 평화를 이룩할 수 있을까? 센토사섬 이름이 갖는 유래에서 향후 북미관계를 기대하고 유추하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 


② 풍요를 상징하는 ‘새끼염소’ 카펠라 호텔


센토사섬 오른쪽 깊숙이 자리 잡은 카펠라 호텔. 트럼프 김정은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세기의 담판을 할 회담장이다. 250여m 길이의 구불구불한 진입로를 거쳐야 호텔에 도착할 수 있고 수령이 높은 나무들에 둘러싸여 있어 주변 호텔 등에서도 카펠라 호텔로의 시야가 막혀 있다. 보안과 경호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 두 나라 실무팀에게는 외부의 접근을 차단하기 쉬운 그야말로 최적의 회담 장소인 것이다.


19세기 싱가포르를 점령했던 영국군을 위한 막사에서 세계 최고급 호텔로 거듭난 카펠라 호텔. 영국의 세계적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디자인한 이 호텔은 110여 개의 객실을 갖춘 최고급 휴양시설이다. 붉은색 지붕에 콜로니얼 양식으로 지어진 5성급 호텔로, 리조트와 호텔, 골프 코스, 테마파크 등이 자리 잡고 있다. 


경호와 보안이 최적이라서 회담 장소로 최종 선택됐지만, 필자에겐 그 이름이 갖는 상징성도 함께 다가온다. 


‘카펠라’, 라틴어로 새끼 염소를 뜻한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카펠라가 신 중의 신, 신의 제왕인 제우스에게 젖을 먹인 염소 아말테이아를 상징한다고 한다. 어떤 연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제우스가 이 염소의 뿔을 부러뜨렸다고 한다. 아마 아무런 의도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이 부러진 뿔에는 주인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채워주는 힘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뿔을 코르누코피아, 풍요의 뿔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카펠라는 또 밤하늘의 빛나는 별자리 이름 이기도 하다. 우주 상공의 마차부자리라는 별자리가 있다고 한다. 카펠라는 이 별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이라고 한다. 밤하늘에서 여섯 번째로 밝고, 북반부에서는 3번째로 밝은 별. 특히 초겨울에 잘 보이는 밝은 별이라고 한다.


북-미 관계는 그동안 어두운 암흑기를 보냈다. 한반도도 늘 긴장이었다. 북미 정상회담이 이 암흑기를 거둬낼 수 있을까? 회담이 열리는 ‘카펠라’ 그 이름처럼 밤하늘에서 반짝일 수 있을까? 미국을 적대하며 고난의 행군길을 걸었던 북한과 북한 주민들에게 과연 이 회담이 코르누코피아, 풍요의 뿔이 될 수 있을까?


이탈리아에선 카펠라가 ‘성당 안의 기도실’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북미 정상회담이 회담장 이름이 갖는 의미만큼 성과가 나기를 바라는 건 지나친 기대일까? 


③ 이번엔 팔라완 비치 인생 샷?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들어 인생에 남을 만한 기념비적인 ‘인생샷’을 남겼다. 문재인 대통령과 4월 27일 판문점 회담을 가진 데 이어, 군사분계선 표식이 있는 도보다리에서 역사적인 산책을 했다. 이른바 도보다리 산책은 전 세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어진 김정은 위원장의 중국 다롄 방문, 5월에 이뤄진 시진핑 중국 주석과의 두 번째 정상회담에서도 비슷한 그림을 연출했다. 중국 국가공인 AAAA급 관광지인 다롄 앞 방추이다오 해변가 산책이 바로 그것이다. 중국 시진핑 주석과 해변을 걸으면서 이런저런 담소를 나눈 장면이 전파를 탔고,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두 번째 중국 방문 이후 태도가 바뀌었다며 중국 배후론을 공개적으로 제기하기도 했다. 


판문점과 다롄에 이어 이번엔 싱가포르 센토사섬. 트럼프 대통령을 만날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엔 어떤 인생샷을 남길까? 상상해 보면 카펠라 호텔에서 남서쪽으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아름다운 해변, 팔라완 비치가 북미 두 정상이 함께 산책할 장소로 유력해 보인다. 만약 팔라완 비치 산책이 이뤄진다면 두 정상의 허심탄회한 대화가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해변에는 또 흔들다리라는 관광 명소도 있다고 한다. 


어쨌든 싱가포르 정부는 회담이 열릴 센토사섬과 그 인근 지역을 특별행사 구역으로 지정했다. 6월 10일부터 14일까지다. 센토사섬은 물론 섬 크기와 맞먹는 인근 해역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다. 보안과 경호를 위해 섬 자체와 둘러싼 바다까지 원천봉쇄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김정은 두 정상은 이르면 6월 10일 회담장인 싱가포르에 도착할 것으로 보인다. 회담 이틀 전이다. 이제 관심은 싱가포르 현지 시각으로 12일 오전 9시에 쏠려있다. 전 세계의 눈과 귀가 싱가포르 세기의 회담을 주목하고 있다.



김연/통일전문기자


김연 통일전문기자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10여년동안 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이슈를 취재했다. 지금은 모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북한정세와 남북관계 관련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인동의 시절에 꽃피는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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