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19일 밤 10시 26분. 


대동강 연꽃 모양을 한 거대한 경기장이 들썩였다. 8층 높이의 15만석을 가득 메운 평양 시민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을 쏟아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단상에 섰다.


“평양시 각계층 인민들이 모두가 하나와 같은 모습, 하나같은 마음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남측 대표단을 따뜻하고 열렬하게 맞아주시는 모습을 보니 넘쳐나는 기쁨을 다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오늘 이 순간을 역사는 훌륭한 화폭으로 길이 전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대통령에게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를 보내줍시다.” 


대한민국이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자 북한도 뒤질세라 자신들의 스포츠 경제력을 과시하기 위해 지은 세계 최대 규모의 능라도 5.1 경기장. 


그곳에 북한 최고 지도자의 소개를 받고 선 대한민국의 대통령. 


“평양시민 여러분. 북녘 동포 형제 여러분. 





평양에서 여러분을 이렇게 만나게 돼 참으로 반갑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함께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두 정상은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8천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했습니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자고 확약했습니다.…(중략)…


평양시민 여러분, 동포 여러분. 우리 민족은 우수합니다. 우리 민족은 강인합니다.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5천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습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지난 70년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자고 제안합니다. 8천만 겨레의 손을 굳게 잡고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나갈 것입니다. 우리 함께 새로운 미래로 나아갑시다.”


밤 10시 33분까지 약 7분 동안 이어진 대한민국 대통령의 첫 평양 시민 대중 연설. 15만 평양 시민들은 990자 302개의 낱말로 구성된 문 대통령의 연설에 귀를 기울이고, 또 13차례 커다란 박수와 함성으로 화답했다.


특히 문 대통령이 “어려운 시절에도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며 끝끝내 스스로 일어서고자 하는 불굴의 용기를 보았다”라고 말한 부분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졌다.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를 잘 버텨낸 북한 주민의 자존심을 잘 살려 준 것으로 읽혔다. 


이 장면에선 2000년 여름 평양을 방문했을 때 ‘고난의 행군 시기를 어떻게 넘겼냐’고 물어보자 눈물 짓던 당시 40대 중반 김영수 안내원의 표정이 오버랩됐다. 김 선생은 당시 남에서 온 동생뻘의 기자에게 “통일되면 나의 중학생 아들들을 잘 보살펴 달라”는 말을 은밀하게 전하기도 했다. 


그런 시기를 넘긴 북한 주민들이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어가자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연설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어떤 감정이 들었을까? 


북한을 떠나 서울에 온 김자영씨는 한 방송사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능라도 연설을 TV로 보면서 너무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이 연설을 하고 ‘이제 꿈을 꿀 수 있다, 미래를 가질 수 있다’는 게 북한 주민들에게 얼마나 기쁨으로 다가왔을까 생각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진짜로 저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도 고향에 빨리, 더욱 빠른 시일 내에 가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냥 눈물이 났다”고도 했다. 


하지만 부정적인 반응도 있었다. 서울의 한 대학에 다니고 있는 최00씨는 “북한 주민들은 문 대통령이 자신들을 억압하고 힘들게 하는 김정은 정권과 손을 잡고 평양을 방문하는 것은 오히려 북한 기득권을 강화해 나갈 수 있기에 이번 방북과 연설을 부정적으로 볼 것”이라고 말했다.





어느 쪽이 맞을지 판단할 수는 없다. 또 지금 북한에 사는 사람들이 문 대통령의 연설을 어떻게 들었고 평가하는지 알기도 힘들다. 


다만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대한민국 대통령의 대중 연설을 수용한 것은 그만큼 자신감을 나타낸 것은 아닐까 추측해 본다. 또 남쪽에서 온 대통령의 연설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북한 주민이 개방됐다는 걸 반증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한때 학생운동을 했던 국회의원은 문 대통령의 연설에 큰 감동과 격한 전율이 몰려왔다고 전했다. 과거 사회주의권 지도자도 그렇게 많은 주민들 앞에서 대중연설을 한 적이 없다면서 문 대통령의 연설은 한반도가 새로운 시대로 대전환한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1963년 6월 나는 베를린 시민이라고 외쳤던 케네디의 연설이 자유 수호의 의지를 고취시켰듯이,  남과 북 새로운 미래를 선언한 문 대통령의 연설이 평양 시민들의 심금을 울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올 단초가 될 수 있을까? 


역사는 이 연설을 어떤 화폭으로 기록하게 될까?



김연/통일전문기자


김연 통일전문기자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10여년동안 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이슈를 취재했다. 지금은 모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북한정세와 남북관계 관련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인동의 시절에 꽃피는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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