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정권의 민정라인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한 고위관계자는 피처링과의 인터뷰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결국 구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인사는 경찰청 특수수사과와 청와대 민정라인을 두루거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 인사는 청와대의 권력속성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이 인사는 "현 정권 실세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명령'이 아니라 하더라도 충성 차원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어떻게든 구속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 지사가 이번 사안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재인 정권과 그 실세들이 이번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이 지사가 '설마 구속까지야...' 이렇게 안일하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권력 생리를 볼 때 충분히 그런 상황까지 상정해볼 수 있다.


역대 정권의 역사를 보면 권력에 맞선 반대파들은 대체적으로 정권으로부터 고초를 겪었다. 김영삼 정권 때 김대중 전 대통령과 동교동계가 대표적인 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이명박 정권 시절 본인과 박지만 EG 회장, 그리고 친박측근들이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었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면서 노무현 정권 때도 대북송금 특검을 거치면서 김대중 정권 실세들이 여럿 날아갔다.


권력 교체기마다 1인자에 맞섰던 라이벌이나 측근들은 어떤 식으로든 '정리'가 되는 게 한국 정치의 역사였다. 특히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혐의점과는 별개로 이 지사가 문재인 대통령과 대선 때 맞서는 과정에서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어섰다는 게 현 정권 실세들의 판단일 수도 있다.


이에 대한 근거는 두 가지다. 먼저 이 지사는 대선 주자 토론회 과정에서 '친문'들에게 단단히 찍혔다. 문재인 후보 측근들도 이 지사가 공세적으로 대응하거나 일부 대화에서는 '문프'를 비아냥거리거나 면박을 줘 친문진영의 분노를 샀다. 이런 앙금은 오래 가기 마련이다. 정치에서는 공격을 받으면 반드시 되갚는 게 불문율이다. 현재 이재명-김혜경 부부가 수시로 검찰청을 들락거리는 것은 분명 이 지사 입장에서는 과도한 것이라고 믿을 것이다. 정권 차원의 의도가 없다면 불가능할 수 있다. 현재의 이 지사 고초는 대선 토론회 과정의 앙금을 되갚는 차원임을 가정해보면 결코 가볍게 응징하는 수준이 아닐 것이다. 반대파는 철저하게 밟아야 다시 덤빌 생각을 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이 지사가 급한 나머지 아들 준용씨까지 건드린 것이 큰 실수였다. 이것도 지난 대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재명 후보 지지 그룹 ‘손가혁’(손가락 혁명군)이 문준용 특혜 채용 등에 관해 빈약한 근거로 비난 트윗 등을 확대 재생산했던 것이 당시 큰 논란이 됐다. 친문으로서는 결코 가볍게 봐 넘길 사안이 아니었다. 만약 이 지사가 더 큰 정치인이 돼 권력을 잡을 경우 준용씨 사건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반격의 칼날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민감한 사안을 이 지사가 다시 건드리자 문 대통령 측근들도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다'며 이 지사 인신구속까지 시나리오를 확장시켰을 수 있다. 작용과 반작용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최근 친여성향의 경향신문은 한 칼럼에서 “청와대의 그립(grip·움켜 쥠)이 너무 세다”고 지적한 바있다. "지지율이 높으니까 청와대에 힘이 모이고, 청와대의 장악력이 커지니까 부처는 먼저 움직이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청와대와 정부간의 힘의 권력 관계를 지적한 것이긴 하지만 이 그립은 국정전반에 작용하고 있다.


이재명 지사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잠재적 위협요소다. 지지율이 빠지게 되면 가장 먼저 차기주자가 떠오르게 된다. 문 대통령의 그림자를 밟고 그를 넘어설 수 있다. 대통령은 허수아비가 되고 집권 후반기가 권력 추가 이재명 지사에게로 급격히 쏠릴 경우 문 대통령뿐 아니라 그 옆의 참모들까지 죽게 된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쉽지 않은 일이지만, 권력 생리를 보면 그렇게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그 싹을 미리 자르지 않으면 친문세력들이 당하게 된다. 이 지사의 구속은 그 단도리의 최정점이다.


이 지사의 구속은 '손가혁' 그룹에게 치명상을 줄 수 있지만, 빠지고 있는 문재인 지지층을 재결집시키는 데 유용한 카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지사의 혐의점이 중대한 범죄는 아니다. 그래서 이 지사 부부의 도덕성을 집중적으로 건드리고 있다. 혜경궁김씨 사건은 그들의 단점을 부각시키기에 더없이 좋은 소재다. 이 지사 구속은 한 부도덕한 정치인 부부의 응징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준다.

하지만 이 지사 구속은 그리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그를 둘러싼 혐의들은 대부분 몇년 전 이미 문제가 됐었던 일이고 구속까지 가기에는 미약한 부분이 있다. 이를 억지로 엮을 경우 반드시 역풍이 분다. 문 대통령의 빠지는 지지율도 이 지사 구속의 그립을 약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살아있는 권력이 마음만 먹으면 못할 일도 없다. 일단 저질러놓고 그 다음 수습하는 것이 아예 하지도 못하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할 경우 이 지사는 검찰 호송차에 몸을 실을 수도 있다.



12월 4일 이른바 ‘혜경궁 김씨(@08__hkkim)’ 트위터 계정의 소유주로 지목된 이재명 경기도지사 부인 김혜경씨가 검찰에 출석했다. 그의 얼굴은 이전과 확연히 달랐다. 초췌하고 피곤해 보이는 것이 역력했다.

베이지색 코트를 입은 김씨는 타고 온 차량 창문을 보며 옷매무새를 다듬은 뒤 취재진 앞에 섰다. 김씨는 “심경 한마디 말씀해달라”는 취재진 질문에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고 짧게 답했다. 이어 “트위터 계정과 똑같은 다음 아이디가 자택에서 접속된 것으로 확인됐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묻자 “저도 힘들고 억울하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현재 이 지사 부부는 '힘들고 억울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상황인 것이다.


한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은 없다. 잠재적 태양이 현재의 태양을 가릴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을 없애는 것이 맞다. 그게 권력의 생리다. 이재명 지사 부부가 검찰청을 수시로 들락거리는 것은, 그들을 둘러싼 혐의점과는 무관하게 또 다른 권력의 기제가 작동하고 있다.


한 전직 민정 고위관계자의 '멘트'이지만 그의 예감이 왠지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저작권자 © 피처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