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을 공모한 혐의로 김경수 경남지사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과 사법부가 정면 충돌하는 모양새다.


이번 판결을 '양승태 사법적폐 세력의 보복'으로 규정 짓고 법관 탄핵까지 거론하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민주당을 향해 김명수 대법원장은 1일 "법치주의 원리에 비춰 적절치 않다"며 직설적으로 반박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 출근길에서 취재진과 만나 김 지사 판결에 대한 여권의 비방이 계속되는 데 대해 "판결 내용이나 결과에 관해 국민께서 건전한 비판을 하는 건 허용돼야 하고 바람직할 수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하지만 도를 넘어서 표현이 과도하다거나, 재판을 한 개개의 법관에 대한 공격으로 나아가는 건 헌법상 보장된 법관 독립의 원칙이나 법치주의 원리에 비춰 결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헌법과 법률에 의하면 판결 결과에 불복이 있는 사람은 구체적인 내용을 들어 불복할 수 있다"면서 1심 판단에 대한 이의는 법 절차에 따라 항소심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여당에 대한 사실상 '경고'로 민주당과 사법부의 대립 구도로 비화될 우려가 있다. 이미 법조계에선 여당의 지금까지 격한 반응이 사법부를 양분화하고 불신을 조장하는 등 매우 부적절했다는 불만이 상당하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 30일 김 지사에 대한 선고 직후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어 이번 판결을 성토하고 '사법농단 세력 및 적폐청산 대책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당 차원에서 적극 대응해나갈 것을 예고했다.


민주당은 특히 김 지사에 대해 실형을 선고한 성창호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비서실에서 근무한 이력을 들어 이번 판결을 사법농단 세력의 보복성 재판으로 규정했다.


'사법농단 세력 및 적폐청산 대책위원회' 위원장인 박주민 최고위원은 1일 오전 서울 용산역에서 진행된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어제 김 지사에 대한 판결문을 얻어 밤 늦게까지 분석해봤다"며 재판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직접적인 증거는 상당히 부족한 상태에서 사실관계를 인정하기 위해 필요한 많은 부분을 진술에 의존해 채워넣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며 "진술이라는 것도 적대적 관계나 공범군에 있는 자들에 의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박 최고위원은 "특히 그 진술이 더 나아가 조작의 의심도 있다"면서 "드루킹과 그 일당 메모를 보면 변호인을 통해 진술을 맞추려고 시도한 것을 넉넉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런 진술을 토대로 작성된 판결문"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재정 대변인은 전날 민주당 유튜브 홍보채널 '씀'에서 성 부장판사를 겨냥해 "객관적 증거에 의해 (유죄를) 인정했다는 말을 유독 앞부분에서 강조했다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다"며 "본인의 열등감이랄까 부족한 논리를 앞에서 강설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맹비난했다.


한편 김명수 대법원장이 민주당과 정면충돌하는 양상을 보이면서 여당에서는 '항명'이라며 부글부글 끓고 있다. 지난 2017년 김명수 당시 춘천지법원장이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되자 '충격적 인선'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법원장이 대법원장으로 직행한 전례가 없는 데다 김명수 지법원장은 양승태(69) 대법원장보다 법조 경력이 13년 후배였기 때문이다.


당초 문재인 대통령은 박시환(64) 전 대법관을 유력 후보로 검토했다. 하지만 그가 고사하면서 대법원 주변에선 '청와대가 지난주부터 다른 후보를 검토 중'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당시 김 지법원장 지명은 세대교체와 아울러 '사법부 주류 교체의 신호탄'이라는 의미도 가졌다. 당시 법조계에선 김 지법원장 지명에 대해 "청와대가 사법부를 바꾸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 후보이던 지난 2017년 5월 1일 라디오에 출연해 "제왕적 대법원장이 전권을 휘두르고 있는 법관에 대한 인사권도 각 고등법원장 쪽으로 분산을 시킨다든지 사법부의 민주적인 운영이 필요하다"며 "사법부의 독립 문제가 있어서 함부로 공약에는 (넣기) 조심스럽지만 그 취지에는 뜻을 같이하고 사법 개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도 충분히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그만큼 문재인 대통령의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한 신임은 컸다. 당시 법조계에선 대법원의 판결 경향도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대법원장은 대법관 전원이 참여해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이나 기존 판례 변경 여부를 결정하는 전원합의체의 재판장을 맡는 등 대법원 재판의 중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대법원장이 이번 김경수 지사 판결에 대한 여당의 불만에 대해 정면 경고를 함으로써 양측간의 갈등은 더욱 커지게 됐다. 여당은 '문재인 대통령 지키기' 차원에서 이번 싸움은 물러설 수 없는 한판이다. 김명수 대법원장도 문재인 대통령의 파격적인 '성은'을 입었지만, 그의 등뒤에는 결국 '법조권력'이라는 지켜야 할 친정이 있다. 가재는 결국 게편이지 가재를 키운 사람의 편이 아닌 셈이다.


김경수 지사 판결은 한국의 정치권력과 법조권력의 한판 대결장이 돼 가고 있다. 문 대통령이 김명수 대법원장을 통해 사법기득권 세력에 대한 정리를 하려고 했으나, 김경수 지사 판결로 오히려 더 큰 저항을 맞게 됐다. 그만큼 법조권력도 기득권 세력으로서의 아성이 두텁다.


하지만 이렇게 정치-법조 권력 간 정면대결 양상은 결국 국론 분열과 국정 혼란의 난맥만 초래할 뿐이다. 마주보고 달리는 기차를 누가 먼저 멈추느냐는 결국 국정을 이끌어가는 여당의 손에 달렸다. 냉정하고 이성적인 접근이 필요한 때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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