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유영하 변호사가 연일 황교안 전 국무총리 등 자유한국당 당권 주자들을 향해 비판적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옥중에 있는 박 전 대통령이 유 변호사를 통해 사실상 정치적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박 전 대통령이 정치 문제와 관련해 자기 입장을 내보낸 건 2017년 3월 31일 구속 수감된 이후 678일 만이다.


정치권에선 "박 전 대통령이 한국당의 2·27 전당대회를 앞두고 '옥중 정치'를 시작했다"는 말이 나왔다. 특히 당내 친박계 의원 상당수의 지지를 얻고 있는 황 전 총리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면서, '박심'이 당대표 경선의 최대 변수가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유 변호사는 한 언론에 또 다시 "박 전 대통령은 남에 대해서는 말을 잘 하지 않는 분인데 황 전 총리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직접 했다"며 "황 전 총리의 면회 요청을 여러 차례 거절한 이유를 말씀하셨고, 그 내용을 밝히지는 않겠지만 무슨 뜻인지는 다들 알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TV조선에 출연해 "박 전 대통령이 허리 통증 때문에 교도소에 의자·책상을 넣어줄 것을 요청했는데 (황교안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조치를 안 해줬다"고 말한 데 이어 또다시 황 전 총리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표출한 것이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에게 이전에도 방송 출연을 3~4차례 말씀드렸었다"며 "이번에는 사전 허락을 해주셔서 출연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 건강과 관련해 '위독설' 등 온갖 억측이 난무해 이를 해명하는 차원에서 방송에 출연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한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를 '옥중 정치'로 보는 것은 지나치게 정치공학적 해석"이라고 했다. 한국당 관계자는 "굳이 전대를 앞두고 메시지를 낸 건 정치적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8일 유영하 변호사의 주장에 대해 "최선을 다해 (박 전 대통령이) 어려움이 없도록 노력해왔고, 할 도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대구를 찾은 황 전 총리는 기자들과 만나 박 전 대통령의 면회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한 사실 등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유 변호사는 "도리(라는데), 황 전 총리가 어떤 도리를 다했는지 한번 말해보라고 묻고 싶다"며 "자신을 장관과 총리로 발탁했던 사람이 영어의 몸이 돼 있는데 명색이 법조인이라는 사람이 할 일이 분명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유 변호사는 그러면서 "황 전 총리는 박 전 대통령 수인번호를 권한대행 때도 보고를 받았을 것이고 인터넷에도 다 떠 있는데 그걸 몰랐다고 했다"며 "수인번호(503)가 100자리 200자리도 아니고 단 3자리밖에 되지 않은 것을 모른다고 한 것을 보면 얼마나 무관심했다는 말이냐"고 했다. 이어 "'친박'을 박 전 대통령과 정치철학을 공유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런 개념에서 볼 때 황 전 총리가 친박인지는 국민이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당 2·27 전당대회를 앞두고 황 전 총리는 박 전 대통령 지지 기반이었던 대구·경북(TK)과 친박계 지지를 받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유 변호사의 발언대로라면 박 전 대통령이 황 전 총리에 대한 상당한 반감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전대 판세에 변수가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한국당에서는 "탄핵을 당한 전 대통령과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의 충돌"이라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이른바 '빅3'로 불리는 홍준표 전 대표나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 대해서도 거리감을 드러내면서 특정 후보 지지 여부를 떠나 보수정치권 전반에 영향력을 과시하려 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유 변호사는 홍 전 대표를 향해서는 "홍 전 대표가 박 전 대통령을 출당시키면서 도움이 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했는데 과연 어떤 도움을 줬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오 전 시장에 대해서는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했다. 홍 전 대표와 오 전 시장 모두 비박계로 분류된다.


홍 전 대표는 이에 대해 "나는 박 전 대통령과 같은 당에 오래 있었지만 은원(恩怨)관계가 없다"며 "박 전 대통령이 법무부장관과 총리까지 시킨 황 전 총리에 대해선 배신감을 느껴 그런 말씀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 출당 조치는 탄핵 정당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였고, (바른정당으로 탈당했다가 돌아온) 복당파들의 복당 전제조건이었다"며 "역대 대통령들도 당이 어려울 때 탈당하는 게 관례였다"고 했다.


오 전 시장은 페이스북에 "유 변호사의 인터뷰를 계기로 우리 당은 진짜 친박이냐, 가짜 친박이냐의 논쟁으로 다시 접어들고 있다"며 "당이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고 또다시 퇴행한다는 현실이 암담하기 그지없다"고 했다. 오 전 시장은 "논란 속에 빠져든 황 전 총리, 이것이 황 전 총리의 한계"라고 했다. 친박으로 분류되는 정우택 의원은 "황 전 총리는 친박인가? 아니다. 그는 친황계를 원하고 친박은 결국 그에게 굴레일 뿐"이라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이 옥중 메시지 발신을 통해 앞으로도 각종 정치 현안에 관여할지도 관심사다. 박 전 대통령이 계속 정치적 메시지를 낼 경우 당권 향배뿐 아니라 한국당의 진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만일 박 전 대통령 석방이나 사면이 이뤄질 경우 총선을 앞두고 '친박 신당' 출현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총선 공천에 적잖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한국당의 한 의원은 "유 변호사가 '친박 신당설' 등에 대해서는 침묵했지만, 이를 무언의 긍정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도 당내에 있다"고 전했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의 정치 활동 계획 등과 관련해선 "더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그동안 언론노출을 극도로 꺼리던 박 전 대통령이 이번에 작심을 하고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 옥중 메시지를 보내는 것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과도 관련이 있다. 최근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경기침체와 민주당 대권주자들의 잇단 수난으로 답보 상태에 빠져 있다. 문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와 신뢰가 조금씩 빠지고 조정상태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중도보수층을 중심으로 대통령 탄핵에 대한 '현자타임' 성격의 되돌아보기 움직임도 일고 있다. 그동안 꽉 막혀 있던 박 전 대통령에게 운신의 공간이 조금씩 열리고 있는 형국이다. 바로 이런 분위기를 극적으로 촉발시킨 것이 유영하 변호사의 옥중 메시지 발언이다. 이제 또 다시 박근혜 정치가 현실정치로 돌아오고 있다. 대통령 탄핵까지 유발시켰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본질과 반성은 얼렁뚱땅 지나간 채 또 다시 친박의 유령들이 몰려들고 있다.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치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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