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 이재민들이 긴급 피신해있는 모습.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캡처=KBS 뉴스



강원도 고성·강릉·인제 산불 피해 주민을 돕기 위해 420억원의 성금이 모였지만 이재민들에게는 아직 거의 전달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원 방안을 두고 모금단체 간 의견이 엇갈리면서다. 정부는 “권한이 없다”며 조정하지 않고 있다. 


23일 현재 재해구호협회에 301억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100억원, 대한적십자사 10억원, 어린이재단 9억원이 모였다. 행정안전부·보건복지부·강원도·전국재해구호협회·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이 지금까지 두 차례 간담회를 열어 성금 배분 기준과 방식 등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지진·태풍 같은 자연재난은 재해구호법에 따라 재해구호협회가 성금을 총괄해 배분한다. 산불은 ‘사회재난’으로 분류돼 방식이 다르다. 행안부에 배분 권한이 없고 모금단체들이 자율 배분한다. 모금단체의 기준이 다르면 중복으로 지원할 수도 있고, 구멍이 생길 수도 있다. 2011년 연평도해전 때는 재해구호협회·공동모금회·적십자사가 협의를 통해 성금을 지원했는데, 당시는 성금이 많지 않아 별 문제가 없었다. 


재해구호협회는 신속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정희 구호협회 사무총장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요청하면 최대한 빨리 국민에게 돌려줄 생각”이라며 “선지급 규모와 대상만 정해지면 위원회를 열어 성금을 집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협회는 ▶성금을 현금으로 ▶당장 지원하되 ▶기준 협의가 늦어지면 10%만이라도 먼저 지원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사회복지모금회도 신속 지원에는 동의한다. 다만 “기준 마련이 먼저”라고 선을 긋는다. 최은숙 모금회 기획조정본부장은 간담회를 통해 “기준 없이 성금을 배분할 수 없다”며 "정부의 이재민 지원 내용을 공유한 다음 배분 계획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금회는 ▶피해 현황을 집계하고 ▶보상 기준을 마련한 다음 ▶중복되지 않게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공동모금회가 23일 고성군과 강릉시에 각각 9925만원, 1120만원어치 상품권을 배부한 것을 놓고도 갈등이 생겼다. 모금회 측은 "산불 성금이 아닌 긴급지원 사업으로 지급한 것이다. 모금회 강원지회에 지원하고, 각 지자체에서 대상과 기준을 정했다”고 말했다. 구호협회 측은 "벌써 고성은 많이 주고, 강릉은 적게 받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하반기가 돼야 성금이 지원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정부는 "관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안병희 행안부 민간협력과장은 "민간 성금은 세금이 아니어서 정부는 의견을 낼 뿐”이라고 말했다. 류양지 복지부 사회서비스정책과장은 "민간 성금에는 관여할 수 없다”고 했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시급성이 있는 사안인 만큼 어려운 주민을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 정부가 사회재난 성금 지원 기준을 일원화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강원도에서 산불이 나자마자 전 국민들이 따뜻한 성금을 모아 바로 전달했다. 그리고 이재민들이 복구 과정에서 당연히 현금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420억원이라는 거액을 쌓아놓기만 하고 특별히 더 도움이 필요한 이재민들에게 제때 지급이 되지 않는다면, 성금모금도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성금을 준 입장에서는 한시라도 빨리 피해를 복구하고 안정을 찾으라며 급하게 준 돈이었을 것이다. 답답행정에 말이 막힐 뿐이다. 


최수정 기자 soojung@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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