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지난 2010년 초 아이패드 광풍이 몰아쳤을 때 충동구매로 덜컥 아이패드1을 구매했던 전력이 있다. 한 몇 달은 잘 가지고 놀았다. 그래봐야 잠자기 전 트위터 용이거나 천체 별자리 앱 등을 보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렇게 아이패드는 몇 달 간의 강렬한 추억을 남긴채 우리집 책꽂이 속에서 긴 겨울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최근에야 우리 딸이 컴퓨터의 존재를 알게되면서 그녀의 장난감으로 되살아났다. 아이패드1을 떠올려 보니 맥북프로의 미래가 어렴풋이 보이는 듯했다. 이 애물단지를 계속 쓸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200만원도 넘게 주고 산 맥북프로가 아까워서라도 그 기능을 충분히 이용(?)하며 잘 사용하기로 굳게 결심했다. 이렇게 구입 초기 불편함을 느낄 무렵, 인터넷 검색을 통해 하나의 오아시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맥북프로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체제를 이식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 패러럴즈는 맥 안에 가상머신을 통해 다양한 운영체제를 설치해서 쓸 수 있게 해주는 소프트웨어다. 재부팅을 통해 윈도를 물리적으로 설치하는 부트캠프 방식도 있는데 패러럴즈는 재부팅 없이도 맥에서 윈도용 앱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2대 모두 장단점이 있는데 맥에서 윈도체제를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해주는 도우미로 인기다.


‘그래, 맥북프로가 불편한 게 이 아저씨만은 아니었구나.’

메모리를 쪼개 윈도 운영체제도 같이 쓸 수 있다는 말에 맥북프로를 들고 곧장 용산 전자상가로 달려갔다. 애플 대리점으로 가서 이유를 설명하자 ‘5만원’이라는 짧은 대답과 함께 금방 윈도를 깔아주겠다고 했다. 묻는 말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단어만 내뱉는 직원을 보면서 속으로 ‘이러니까 용팔이(용산전자상가의 불친절함을 나타내는 네티즌 은어)라는 말을 듣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불쾌한 기분은 결국 작은 사고를 내는 쪽으로 발전하고 말았다. 1시간 후에 오라는 말에 같이갔던 후배 둘과 식사를 마친 뒤 기대에 부풀어 그 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내게 ‘1시간 후’라는 짦디 짧은 말만 남겼던 그 직원은 자리에 없었다. 더구나 맡긴 맥북프로를 달라고 하니 ‘작업이 안 돼 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어디 땅에 떨어졌나 하고 찾아보기까지 했다. 그런데 다른 직원은 별로 당황해하지도 않고(마치 그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라는 듯) 천천히 그 직원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전화를 안 받는데요...’였다.


▲ 용산전자상가에서 컴퓨터를 사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리 친절하지도 않고 프로페셔널 의식으로 고객을 응대하지도 않는 것 같다. 사진은 에디터가 낭패를 본 바로 그곳이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그런데 불쾌한 감정은 둘째 치고 그래도 비즈니스인데 이렇게 일을 허술하게 하나 싶은 마음에 그 사람들이 측은하게 보일 정도였다. 나는 명동의 프리스비에서 가성비 좋은 맥북프로를 권하던 그 개념 직원을 떠올리며 ‘과연 이 사람이 같은 땅에서 맥북프로 대리점을 하는 사람이 맞나’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일을 해놓지도 않고, 직원은 사라지고... 씁쓸한 기분을 뒤로 하고 ‘용팔이 상가’를 빠져나왔다. 내 윈도 이식수술은 이렇게 무위로 돌아갔다. 집으로 오는 길에 ‘다시는 용산전자상가는 가지 않으리라’는 쓰디쓴 다짐을 몇 번이고 되내었다. 지금도 데스크탑 위에는 그 무개념 직원이 깔다가 만 부트캠프 조각이 남아 있다.


사실 ‘용팔이’에 대한 좋지않은 기억은 맥북프로를 온라인에서 살 때부터 있었다. 온라인결제 후 직접수령을 하러간 곳이 그 사고난 가게와 인접한 곳이었는데, 세상에서 두 번째로 불친절한 집 같았다. 영수증을 보여주며 맥북프로를 찾으러 왔다고 했더니 쳐다보지도 않고 ‘기다리라’는 말꼬리만 남긴 채 노트북이 수북이 쌓인 곳으로 가버렸다.


그리고 그 어떤 설명이나 최소한의 감사 인사도 모두 생략한 채 ‘여기 있습니다’ 한마디를 던지고 휙 사라지는 것이었다. ‘아 이렇게도 장사를 하는구나...’ 돈 쓰는 사람이 찾으러 간 게 미안할 마음이 들 정도로 그들의 영업방식이나 프로의식은 엉망이었다. 하도 열이 받아서 온라인 쇼핑몰 구입후기를 그 자리에서 바로 작성했다. ‘불친절하니 가지 마세요...’ 아... 중년 아저씨의 소심한 복수라니...


▲ 용산전자상가 입점업체들은 컴퓨터가 온라인 중심으로 유통되면서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것이 고객에 대한 불친절 등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초창기만 해도 한국의 아키하바라를 꿈꾸며 호기롭게 출범했지만 결국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채 불황의 늪에 빠져 있다.


사실 노트북, 아니 맥북프로를 사서 써보니 별 것도 없다. ‘개발에 편자’라고나 할까. 무한한 앱의 세계와 맥 호환 프로그램과의 연결성, 뛰어난 화질, 단단하고 세련된 외양까지 맥북프로의 장점은 꽤나 많은 편이다. 하지만 윈도체제에 익숙해온 아저씨에게 화려한 맥북프로의 퍼포먼스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자신의 용도에 맞게 적당한 걸 샀어야지'라며 너무 구박은 하지 마시라.


아저씨도 때로는 감성에 묻혀 눈이 멀 때가 있으니까). 더구나 매일 2kg이 조금 넘는 걸 메고 다니다 보니 어깨도 뻐근해질 때가 많다. 요즘 히트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는 LG 그램(1kg미만)에 자꾸 눈이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꿋꿋이 레티나 맥북프로 15인치형을 쓰고 있다. 아니 고집하고 있다. 나도 언젠가는 엣지있는 디지털 유저가 될 테니까.


그쯤되면 잡스형의 청바지와 블랙 터틀넥을 입어도 어색하지 않겠지. 속으로 또 다짐하곤 한다. 그러다가 또 맥북프로가 액세스 안 되는 홈페이지를 발견한 순간, 나는 슬그머니 옆 책상의 윈도가 깔린 데스크탑 컴퓨터로 자리를 옮긴다. 데스크탑의 키보드에 에 손가락이 닿는 순간, 나는 느낀다.

‘아, 이렇게 편안하고 익숙한 기분은 뭐지...’


후기)그래도 잘 나가는 맥북프로


2000년 초반 편집기자로 일할 때 애플 맥킨토시 기종을 써본 적이 있었다. 그때야 신문편집 기능만 알면 사용에 큰 무리가 없었다. 온라인 결제도 그리 활발하지 않았을 때니 애플은 막연히 ‘일할 때’만 쓰는 그런 컴퓨터였다. 그런데 잡스님의 감성 브랜드 전략이 먹힌 덕분일까. ‘아이폰 마니아’층이 안드로이드가 대세인 한국 시장에서 점차 그 입지을 넓혀가면서 애플의 다른 제품들도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게 됐다. 최근 맥북프로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소비자들의 근저에 자리 잡고 있는 감성에 대한 동경 때문일 것이다.


두 달여 정도 써본 맥북프로의 장단점은 뚜렷하다. 이미 설명한 대로 윈도위주의 현 온라인 시스템에서는 여전히 맥을 못추고 있다. 15인치를 사다 보니 무게도 꽤 나가는 편이다. 가끔, 버스를 기다리다 어깨가 뻐근하다고 느낄 때면, 논산훈련소 시절 철야행군이 생각나곤 한다. 그때 외는 무거운 걸 어깨에 많이 메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고마운 맥북프로라고 ㅎㅎ 이 아저씨를 무려 30년 전의 청년시절 기억까지 되살려 주다니...


그런데 우리나라에 나같은 ‘아저씨’가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최근 acrofan.com이 보도한 ‘노트북, 비싸야 잘 팔린다’는 기사를 보면 “2015년 가장 높은 판매량과 매출을 기록한 노트북은 애플의 ‘맥북프로 MF840KH/A’로 집계됐다. 상대적으로 고가에 판매되고 있는 애플의 제품이 연간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린 것은 집계가 시작 된 2010년 이후 처음이며, 이는 노트북 소비시장에서 기능적 속성뿐만 아니라 브랜드, 디자인 등 감성적 속성이 강조되고 있는 현상으로 해석된다”라고 나와 있다.


디지털도 감성이 버무러져야 유저들에게 제대로 어필할 수 있다는 마케팅 전략이 먹히고 있는 셈이다. 한편으론, 감성에만 집착해 기능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사는 ‘호갱’들도 있는 것 같다. 노트북? 자신의 용도에 맞게 ‘가벼운’ 거 쓰는 게 진리인 듯하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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