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수원에서 만나기로 했던 약속이 엄청 늦어졌다. 지하철로 계산해보니 얼추 1시간은 넘는 거리.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수원역에서 내리기로 했다. 스마트폰으로 코레일 예약을 하려고 보니 5분전부터는 예약이 안된단다. 그래도 일단 탑승하기로 하고, 뛰었다. 기차 앞에서 검수를 하던 역무원에게 ‘이실직고’를 하니, 탑승 뒤 발권은 50% 추가 요금이 있단다. 그래도 뭐 수원은 가까운 거리니 얼마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부담없이 탔다.


▲ 코레일은 부정승차 근절을 통한 ITX-청춘의 정당한 이용문화 정착을 위해 4월 11일부터 부정승차자에 대한 집중단속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번 단속은 코레일 여객운송약관에 따른 것으로 부정승차자로 적발되면 승차구간의 기준운임.요금과 그 기준운임의 10배에 해당하는 부가금을 내야 한다.


저녁 6시 퇴근 시간 무렵인지, 무궁화호는 아직도 이용하는 승객들이 많았다. 빈 자리를 메뚜기 좀 하려다 불편해서 출입문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봤다. KTX만 주로 이용하다가 오랜만에 통로에서 창밖을 바라보니 옛날 생각이 났다. 기타를 메고 청량리역에서 강변역까지 가던 MT 단골의 그 냄새 나는 기차.


그때 기차는 비록 낡았지만 많은 추억들을 준 것 같다. 지금은 주로 KTX를 타는데 창밖을 볼 겨를이 없다. 앉자마자 와이파이 연결해서 스마트폰 노트북 보기 바쁘다. 그런 저런 옛 생각에 빠져들 때즘, 헐레벌떡 타기 전 만났던 여승무원이 내게로 다가왔다.


“아까 그 분이시네요. 승차 뒤 발권은 50% 가산금 있습니다.”


조금전 화장실에 갔을 때, ‘이대로 계속 숨어있을까’ 잠시 장난기가 발동했지만, 젠틀맨이 그럴 수는 없지. 그래도 그 역무원이 딱 나를 알아보고 가산금을 얘기하니 속으로 뜨끔해졌다.


“네, 당연히 내야죠.”


역무원은 휴대용 단말기로 하차역을 찍고 있었다.


“수원까지는 가까우니 얼마 안 내겠죠?”


역무원은 시큰둥하게 대답하더니 단말기를 계속 바라봤다.


▲ 출처=코레일 홈페이지


그러기를, 5분이나 지났을까. 여전히 역무원은 단말기만 뚫어져라 바라봤다. 하지만 여전히 먹통. 역무원의 얼굴이 살짝 긴장한 듯했다. 그녀는 전파가 안 잡힌다며 다른 통로쪽으로 갔다. 거기서 다시 5분이나 흘렀을까. 하지만 여전히 그 단말기는 응답하지 않았다.


“잘 안되나 봐요. 내릴 때 다 돼 가는데, 빨리 요금 내야하는데...”


나의 채근에 역무원은 뒤를 돌아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기차가 서자마자 도망치듯 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요금은요?”


내 물음은 긴 말꼬리만 남긴 채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그 역무원은 왜 도망을 갔을까. 내게 요금을 받아내야지, 왜 도망치듯 사라져버렸을까. 집에 와서 집사람에게 그 얘기를 하니 ‘그렇다면 수동으로라도 요금을 받을 수 있게 해야지, 그냥 가버리면 어떻게 해? 그게 코레일 대응 수준인가?’라고 말했다. 작은 해프닝을 코레일의 경영 무능력으로 비화시킬 생각은 없다. 그래도 그 역무원의 태도나 대응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코레일도 준 공무원인데 매사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다니, 속으로 안타까웠다.


코레일은 부정승차가 적자의 주 원인이라며 시민들의 삐뚤어진 의식을 지적하곤 한다. 실제로 지하철만 보자면 2013년 2만 2천여명이었던 부정승차자는 2014년 만 4천여명으로 감소했지만 지난해 다시 2만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ITX라는 열차는 하루 평균 만 7천여명이 이용하는데, 평일에는 열차 하나당 적게는 스무명에서 많게는 50명까지 무임승차자가 적발된다고 한다. 객차 8개에 검표인원이 1명뿐이어서 제대로 적발하지 못한다고 한다. 코레일로선 단속에 한계가 있다고 강변한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협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 에디터가 경험해본 ‘본의 아닌’ 부정승차는 또 다른 문제를 낳고 있는 거 같다. 원칙이 없는 사회다. 코레일은 단말기가 먹통이 되면 고객에게 부끄러워서 도망을 치듯 외면하는 게 ‘부정승차’에 대한 대응방식인가. 1차적으로 부정한 수단을 이용하는 승객들의 시민의식에 책임이 있다. 하지만 부정승차가 많다고 변명하며 ‘적당히’ 대응하는 코레일의 수준 또한 시민들에 비해 나을 바가 없다. 비화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 우리는 이런 느슨하고 무책임한 시스템속에서 살고 있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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