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상임대표가 갤럽의 차기 정치지도자 선호도 조사 후보군에 포함된 이래 가장 높은 지지율(21%)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20대 총선에서 정치권의 예상을 뒤업고 보란 듯이 38석을 차지해 명실공히 제 3당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고, 이번 총선에서 올인했던 안 대표의 대권 가도도 다시 탄력을 받게 됐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총선에서 김종인 대표와의 갈등을 노정하고 호남에서도 ‘배척’당하는 등 하락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안철수의 부상은 야권 대권주자의 ‘대안론’으로 뜰 여력도 생겨나고 있다.


안철수 공동대표 페이스북 캡처


이처럼 안 대표에게 총선 뒤 정국은 ‘호시절’로 다가올 전망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안철수가 이번 총선 결과를 자신의 힘 때문에 이겼다고 착각하는 순간 그대로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먼저 이번에 드러난 총선 민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다. 민주당이 호남에서 참패했지만 수도권에서 입지를 강화했고, 국민의당은 호남을 거의 싹쓸이했지만 수도권에서는 민심을 얻지 못했다. 이런 양분 구도는 당분간 야권 세력을 일방적 독주가 아닌 경쟁을 통한 내부 역량 강화를 원하는 민심의 발로다. 지금까지 야권은 계파투쟁에 매몰돼 정책역량 강화나 친 서민적 홍보에 실패했다는 게 중론이다. 지금이라도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서로 경쟁해서 대선에 대비한 체질을 개선하라는 게 절묘한 양분의 뜻이다.


하지만 정치인이 한번 ‘표맛’을 보면 쉽게 그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내가 예뻐서 찍었는데 무슨 딴소리냐’는 생각이 들법도 하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박근혜를 이어온 전직 대통령들의 말로가 좋지 못했거나 내치에 결국 실패한 원인도 선거의 표맛을 그대로 국정 운영에도 적용했기 때문에 빚어진 불행한 결과다. 선거는 그 자체로 민의의 선택을 결정하는 시스템에 불과하다. 그 후는 ‘정치’의 본령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선거가 끝난 뒤 되풀이되는 ‘패자를 끌어안고 국정의 중간 조정자로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는 주문이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지만, 이미 표맛을 본 권력자에게 그런 주문은 승자의 감흥을 빼앗는 무례한 저항으로밖에 비칠지 모른다.


국민의당이 38석을 얻은 것이 ‘안철수 얼굴’ 때문이었다고 믿는 국민들은 얼마나 될까. 물론 당 대표로, 자신의 사재까지 출연하며, 이번 선거에서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이 안 대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승리의 뿌리가 안 대표에게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본 에디터가 이번 총선에서 안철수의 약진을 예측한 것은, 여전히 조정과 화합보다 자신의 ‘옳은 가치’에만 빠져 있는 안철수 본인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대선 참패 뒤 단 한 장의 반성문조차 제대로 써내지 못하고 계파갈등에만 빠져있는 민주당에 대한 반감과 질타의 발현이라고 본다. ‘안철수가 예뻐서가 아니라 민주당이 꼴보기 싫어서’ 이탈한 표가 일단 국민의당으로 쏠린 결과다. ‘더 잘못하면 완전히 안철수쪽으로 갈 것’이라는 경고 정도 한 것이 이번 선거의 표심이다. 이것이 호남의 대승으로 이어졌다.


‘안철수가 정말 예뻤다면’ 수도권에서도 국민의당이 선전했어야 한다. 하지만 김성식 의원 외에 거의 발을 들이지 못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여전히 안철수의 정치력이나 리더십에 대해 수도권 민심은 불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본 에디터는 혹시라도 안철수가 대권에 욕심이 있다면 이번 선거 결과를 보고 화장실에서 혼자 웃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 내가 이 정도로 하니까 결국 표가 오는 거잖아’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38석이 과연 국민의당과 안철수를 온전히 사랑하고 지지해서 얻은 것일까’라는 냉철한 표 분석을 먼저 했으면 한다.


두 번째는 국민의당에 퍼져 있는 안철수에 대한 여전한 불신과 반감이다. 선거가 끝난 뒤 국민의당 한 관계자는 “안철수 본인이 혼자 다 하려고 한다. 고집이 보통이 아니다. 절대 주변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청와대 경력 등 어느 정도 경력과 카리스마, 신망이 검증된 거물급 인사의 조언 정도만 겨우 들어주는 정도다. 그렇게 혼자 다하려고 하면 절대 대선도 희망이 없다. 참모들과 주변 인사들을 믿고 그들과 수평적인 호흡을 맞추지 않는 이상 어렵다. 중요한 건 안철수가 그런 것을 알아도 전혀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안철수 공동대표 페이스북 캡처


물론 이번 선거에서 과거 박근혜의 저력처럼 안철수도 한방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제는 안철수 앞에서 함부로 대들 정치인은 없을 것이다. 표맛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정치인에게 선거에서 표 이상만큼 권력의 세계를 냉엄하게 나타내는 지표도 없다. 일단 국회에 입성하면 비례대표 의원은 일단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호남과 영남에서 안정적으로 당선된 의원들도 좀 뒷전으로 밀린다. 수도권에서 그것도 탄핵바람, 안철수 바람 등의 극변수를 극복하고 이겨야 어느정도 인정을 한다. 안철수도 그런 ‘인정’은 받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안철수가 ‘이당은 내당이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폭망’한다. 실제 국민의당 재산의 대부분은 안철수 본인의 것이다. 대기업 총수가 회사를 자기 것으로 생각하다가 횡령에 자주 걸리듯 안철수도 국민의당을 자기 재산쯤으로 여기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다.


박지원이 누군가. 천정배가 누군가. 그런 노회한 정치인들이 ‘이 당은 내 당인데 왜 그러느냐’며 설칠 경우 언제든 돌아설 수 있다. 특히 대권을 바라본다면 이 당은 여러분의 것이다라고 선언해야 한다. 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율권과 당권을 대폭 양보해야 한다. 지금 안철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겸손과 협치다. 표맛을 보고 오버하다가는 결국 망한다. 표맛은 표맛으로 끝나야 한다. 그건 4월 13일로 끝났어야 한다. 이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더구나 패배했거나 저항했던 사람들을 잘 다독이며 가야 한다. 그런데 불안하다.


박 대통령의 ‘양적완화’ 발언에 대해 안철수는 표맛의 즐거움을 그대로 드러내고 말았다. 천박하다. 승자의 오만이다. 지난 4월 26일 열린 국민의당 워크숍에서 한성대 김상조 교수의 경제특강을 들은 뒤 박지원 의원에게 “박근혜 대통령이 양적완화가 뭔지 모를 것 같은데요. 하하하, 아유 참”이라고 비웃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또 천정배 대표를 향해 “너무 경제를 모르는 사람이 청와대에 앉아 있어 가지고. 경제도 모르고 고집만 세고…”라고 말했단다. 정치인의 입은 상황에 따라 독이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은 표맛을 되새김할 게 아니라 그것을 빨리 잊어버리는 게 대권으로 가는 첫 지름길이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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