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역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해 2호선 운영이 중단됐습니다. 환승하실 분들은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주십시오.”


지난 5월 29일, 저녁 약속을 위해 서울 지하철 1호선에 탑승하고 있었던 에디터는 갑작스러운 안내방송을 듣게 됐습니다. 안전사고라니 정전인가? 인터넷 뉴스를 검색해봤지만 아무런 정보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SNS를 통해 인명사고가 발생했음을 알곤 얕은 한숨이 흘러나왔습니다. 또 한 생명이 세상을 떠났구나. 그렇게 약속장소에 조금 늦게 도착했고 집에 돌아오기까지 구의역 사고는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 다시 한 번 뉴스를 찾아봤습니다. 처음 사고를 접한 그 순간보다 더 안타까움이 밀려왔습니다.



겨우 20살 꽃다운 나이의 청년이 죽음이라니. 게다가 스크린도어 수리는 2인 1조가 규정인데 ‘혼자’ 처리하다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을 청년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그리고 청년의 가방 속에서 발견된 유품은 남겨진 가족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습니다. 평소 끼니를 거르며 일하던 20살 청년의 가방 속에는 공구들 틈에 뒤섞인 숟가락과 고작 몇백 원짜리 컵라면이 발견됐습니다.


이를 발견한 부모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고등학교 재학 중 지하철 스크린도어 정비업체에 취직한 믿음직스러운 아들, 100만 원이 채 안 되는 월급으로 6개월 수습기간을 버티고 이마저도 어머니께 전부 드렸던 착한 아들, 가족여행을 꿈꾸던 기특한 아들, 생일을 단 하루 앞두고 있었던 사랑스러운 아들, 서울 메트로 정직원을 목표로 노력하던 아들...


그런 아들을 보낸 부모의 마음을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서울메트로 설비처장은 유족에게 찾아가 “전자운영실에 보고 안 하고 작업한 아이의 잘못”이라 말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시킨 대로 했을 우리 아이가 규정을 어겨서 죽임을 당한 것이냐”며 “언론이 내 원통함을 풀어달라”고 목놓아 울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청년을 추모하기 위해, 사고 재발을 촉구하기 위해 구의역을 찾고 있습니다. 국화꽃과 포스트잇 메모로 생일축하를, 명복을, 미안함을 전했습니다.



시민들뿐 아니라 정치권 인사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유족을 찾아 “보상과 예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어 31일에는 “지하철 공사의 안전 관련 업무의 외주를 근본적으로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곧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도 찾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을 향한 시민들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습니다. 2013년 상수역 스크린도어 작업자 사망 이후 서울메트로는 2인 1조 작업원칙을 도입했지만 지난해 강남역 사고에서도 변한 것 없었습니다. 결혼을 앞둔 28세 청년은 그렇게 혼자 세상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구의역 사고도 달라진 건 없었죠.


그러니 시민들은 사고가 났을 때만 반짝 관심을 보이는 정치인들의 모습에 쉽게 믿음을 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의 트위터는 시민들의 분노를 자극했습니다.


▲ 출처=안철수 대표 트위터


안 대표는 30일 오후 “수많은 사람의 안전을 지키는 일을 하다가 당한 참담한 일”이라며 “가방 속에서 나온 컵라면이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며 “조금만 여유가 있었더라면 덜 위험한 일을 택했을지도 모른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이에 네티즌들은 “구의역 사고는 개인적인 비극이 아니다” “불합리한 노동여건을 지적해야지 돈 없어 위험한 일을 했다니” “사회구조적 문제가 원인이다” 등의 지적을 쏟아냈습니다.


한바탕 소란이 발생하자 안 대표는 해당 글을 대신 “앞으로도 누군가는 우리를 위해 위험한 일을 해야 한다.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조금이라도 위험을 줄여줘야 한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할 일”이라고 수정했습니다.


이제 누가 찾아오든, 어떤 대책을 내놓든 20살 청년은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희생자가 다시 생겨나지 않게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박민정 에디터 pop@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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