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을 하거나 부동산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요즘 심심찮게 듣는 용어가 있으실 겁니다. 바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 사진=pixabay


젠트리피케이션은 중·상류층이 도심 낙후지역으로 유입되면서 그 지역의 주거 환경이 개선되고 이에 따른 지가상승으로 기존 거주하던 원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국립국어원에선 '둥지내몰림'이라는 순화용어를 권하고 있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땅값이 높은 서울에서 흔히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신촌, 홍대, 연남동, 경리단길 등에서 삶의 터전을 꾸린 상인들과 수공업자, 예술인들이 임대료 상승으로 쫓겨나고, 그 자리에는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이 들어서는 광경, 가수 리쌍의 건물에서 곱창집을 하다가 쫓겨날 위기인 '우장창창', 그리고 싸이와 분쟁 중인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 등도 젠트리피케이션의 사례로 언급되고 있죠.


과정과 원인은 조금씩 다르다지만 특색있는 상권 형성에 공헌한 이들이 임대료 급상승을 감당하지 못하고 거주하던 지역을 떠난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겠죠. 재주는 세입자가 부리고 돈은 건물주가 챙기는 형국이랄까요.



▲ 이태원 우사단로 계단장. 낙후된 상권을 되살렸지만 덩달아 치솟은 임대료로 인해 결국 중단됐다(사진=우사단마을 페이스북 페이지).



지난해 11월, 심각함을 인지한 서울시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종합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이후 서울시는 6개 지역(대학로, 인사동, 신촌·홍대·합정, 북촌·서촌, 성미산마을, 해방촌·세운상가·성수동)을 대상으로 '상생협약'을 맺어 시설 투자, 금융 혜택 등 각종 행정적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서울시는 지역상권 상생발전을 위한 법률안 제정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해당 법안은 지역상생발전구역의 지정, 지역상생협의체 구성, 지역상생발전구역내 특정 영업의 금지 제한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회는 서울시가 제안한 법률이 심각한 수준의 규제로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고 위헌의 소지가 있어 그대로 발의하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고 정치권에서 마냥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5월 13일 개정된 상가임대차보호법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이 법이 통과되면서 환산보증금에 상관없이 모든 세입자는 5년간의 임대기간을 보장받고, 법의 사각지대였던 권리금 역시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 사진=pixabay



하지만 많은 자영업자는 여전히 자신들이 사각지대에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환산보증금 제도가 여전히 유효하고, 재개발·재건축을 이유로 퇴거를 요청할 경우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권리금 조항 역시 많은 건물주가 부동산 계약 시 '제소전 화해조서' 작성 의무를 명기하는 식으로 무력화합니다.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더욱 분명합니다. 프랑스의 경우 최소 9년까지 영업을 보장받고, 심각하고 중대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세입자를 쫓아낼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일본 역시 건물주가 재계약을 거절할 경우 그 정당성을 통해 재판을 통해 심사를 받아야 하고, 고액의 보상금을 지불해야 합니다. 영국은 세입자의 과실이 있을 경우 보상금 없는 퇴거가 가능하지만 과실의 입증 책임이 건물주에게 있다고 합니다.


마음 편히 장사할 수 있는 사회는 요원한 일일까요. 한가지 다행인 것은 20대 국회에서 총대를 멘 분이 있다는 것.


▲ 사진=홍익표 의원 페이스북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서울 중구성동갑)은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1호 법안'으로 발의한 상태입니다. 해당 개정안은 비현실적인 환산보증금 제도를 폐지하고, 임대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는 등 지난해 개정안보다 한층 진일보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개정안은 재개발·재건축으로 건물주가 재계약 요구를 거절할 경우, 세입자에게 '영업시설이전보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습니다. 임대료 인상 상한선 역시 전국소비자물가변동률의 2배를 넘지 않는 선에서 광역자치장이나 기초자치장 의견을 들어 정하게 했습니다.


아주 괜찮은 법안같은데, 통과되기까지 수많은 반대와 시행착오가 있겠죠. 이곳은 조물주보다 건물주가 높다는 대한민국이니까요.


김임수 에디터 rock@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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