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책을 읽지 않는다. 아니 그렇게 알고 있다.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고. 일단 통계가 그렇다. 2015년 국내 성인 연평균 독서율은 65.3%, 평균 독서량은 9.1권이다. 100명 중 65명만이 책을 읽고, 그나마 한 달에 한 권도 채 읽지 못한다. 통계청이 공개한 올 1분기 가구당 도서구매비는 평균 2만 원 남짓이다. 이런 상황에서 2014년 시행된 도서정가제는 악의 축으로 불릴 만하다.


성인들이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는 '새로운 지식/정보를 얻기 위해서'라고 한다. 난센스다. 워드프레스나 인디자인을 배우려면 실용서 한 권 읽는 것보다 네이버 블로그나 유투브 동영상을 찾는 것이 훨씬 쉽다. 가끔 여행책을 사기는 하지만 구글로 검색한 뒤 가야할 곳을 구글맵으로 표시하고 숙박 어플에서 제공하는 시티 가이드를 내려받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다. 게다가 두꺼운 소설보다야 대한민국 뉴스가 드라마틱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꾸준히 책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도서정가제로 인해 전체 시장 규모는 줄었지만 꾸준히 책을 읽는 '진성 독자'들은 늘어나고 있다. 대형출판사의 마케팅 압박 전술을 버텨내고 빛을 보는 중소형 출판사들도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시장 질서가 잡히거나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지려는 조짐이 보인다.


깨나른한 7월의 어느 저녁, 해방촌을 거닐었다. 이곳은 기성출판과 독립출판을 넘나 들며 자기 만의 관점을 지니고 내보이는 동네 서점들이 있었다.







고요서사


용산구 신흥로15길 18-4

http://blog.naver.com/goyo_bookshop



서점에 들어서자 주인이 직접 담근 샹그리아를 건넨다. 오래된 타자기 위에는 <에곤 쉴레/벌거벗은 영혼>이 놓였다. 앉을 곳도 마땅치 않고 움직이기도 불편하다. 사람들은 개의치 않고 서점 안 책들을 놓칠세라 탐색한다. 덩달아 시선이 멈춘 곳에 무라카미 하루키 <1Q84> 문고본과 한국일보 최윤필 기자의 연재기획을 엮은 <가만한 당신>이 있다. 또 다른 리스트가 궁금하다면 오는 8월 3일 문을 두드리는 것도 좋겠다. 한 달에 한 번, 주변 서점과 뜻을 모아 자정까지 문을 연다.







별책부록


서울시 용산구 용산동2가 1-184

http://www.byeolcheck.kr/

070-5103-0341


고요서사에 비해 발랄하고 경쾌하다. 턴테이블에서 음악이 들리고, 그 옆은 잡지 마니아들에게는 친숙한 일본의 <브루터스> <뽀빠이> 등이 쌓여있다. 서태지와 아이들, 키스 자렛의 중고 LP도 판매한다. 서울 아파트 생활의 추억을 공유하는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동명의 영화 컬렉션북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도 반갑다. 고요서사에서 만든 샹그리아를 여기서 한 컵 들이켠 뒤 여행 에세이를 한 권 집어들었다.







스토리지북앤필름


용산구 용산동2가 1-701번지 1F

http://www.storagebookandfilm.com/

070-5103-9975


해방촌 비탈길에 동굴처럼 패여 있다. 주변의 집과 분리된 채 붕 떠 있는 모습은 <우주 감각 : NASA 57년의 이미지들>와 맞닿아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커버만 봐서는 속내를 짐작하기 힘든 잡지들이 반긴다. 움직이는 명함 만들기, 빈센트 반 고흐st 가죽수첩 만들기와 같은 워크숍도 열린다. 딱히 쓸모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한 번쯤 참여해도 좋을 것들이다. 적어도 공간을 꾸민 주인의 빛나는 재치와 아이디어를 읽을 수 있다.






동네 서점은 소수만을 위한 전유물일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국내 마케팅의 첨병에 선 현대카드는 3곳의 라이브러리(디자인·트래블·뮤직)를 열었다. 정태영 부회장은 지난해 심야서점을 열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현재 서점업은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돼 있다). 가수 요조는 북촌에 '책방무사'를 열었고, 방송인 노홍철도 곧 해방촌에 '철든 책방'을 연다. 올해로 8회째를 맞은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580여팀이 참가를 희망했다.


책(과 책을 위한 공간)은 분명히 진화하고 있다.


김임수 에디터 rock@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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