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앞서가고 있는 1등은 불안하기 마련이다. 시종 뒤를 돌아보며 추격자와의 간격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본인의 레이스에 집중할 수 없다. 끊임없이 2위를 견제하는 데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그러면서 본인의 장점을 잘 살려내지 못하고 자칫 네거티브쪽으로 눈을 돌릴 수도 있다. 반면 2위는 더 잃을 게 없기 때문에 차분히 본인의 레이스에 집중할 수 있다.


지난 10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대선 여론조사(지난 7∼9일 전국 성인남녀 1천7명, 신뢰도 95%, 표본오차 ±3.1%포인트)에서 안희정 지사가 19%로 전주(1∼2일)보다 9%포인트가 급등, 29%를 기록한 문 전 대표를 10%포인트 차로 따라 붙으면서 문 전 대표의 수성을 위협하고 있다. 또 앞으로도 1위 후보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여야 주자들의 전방위 흔들기가 집중될 경우 자칫 가파른 상승세인 안희정 지사의 역전 가능성까지 나오고 있다.




일단 여론조사 지표 중에서 2가지 정도의 변화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문 전 대표는 호남(광주/전라)의 경우 기존 41%에서 31%로 급감한 반면, 안 지사는 13%에서 20%로 높아지면서 격차가 크게 좁혀졌다. 연령별로는 특히 40~50대의 변화가 컸던 점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40대에서는 문 전 대표가 36%에서 31%로 낮아진 반면, 안 지사는 14%에서 26%로 급등했다. 특히 50대에서는 안 지사가 27% 지지율로, 문 전 대표(22%)를 제치기까지 했다. 호남과 40~50대 지지층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호남과 40~50대의 지지여부는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호남은 아직 완전히 문재인 전 대표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더구나 지난 총선에서 안철수 국민의당을 대거 지지했기 때문에 문재인 대세론을 완전히 인정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40~50대는 중도성향의 부동층이 많이 몰려 있는 계층이다. 역대 대선마다 이 세대의 표심에 따라 승패가 엇갈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점에서 이 두 개의 변수가 경선 전부터 요동치고 있다는 것은 민주당 대선후보에 대한 지지층의 흐름이 바뀌고 있음을 말해주는 중요한 지표라고 본다. 물론 여론조사의 응답률이 상당히 낮아 의미있는 여론의 흐름이라고 보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적어도 그동안 지탱돼온 문재인 대세론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단초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흐름대로 가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 벌어진다면 그 결과는? 현재로서는 문재인 전 대표가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올해 1월 경선 방식을 확정지은 바 있다. 민주당이 도입한 완전국민경선은 일반 국민이든 권리당원이든 차별없이 신청만 하면 누구나 1인1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다. 투표 방식은 ▲순회투표 ▲투표소투표 ▲ARS 투표 ▲인터넷투표 중 선택할 수 있으며 경선은 인구가 적은 호남권, 영남권, 수도권 및 제주권 순서로 진행된다. 결선투표제는 1위에 오른 후보자의 득표율이 50% 미만일 경우 1, 2위만을 대상으로 실시된다.


이번 경선 규칙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압승했던 지난 2012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문 전 대표의 우세가 예상된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부겸 의원 등이 주장한 공동경선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민주당은 선거인단 200만명을 목표로 모집운동에 나설 예정이다. 지난 2012년에는 100만명을 목표로 해서 58만명 정도가 투표에 참여한 바 있다. 4가지 투표 방법 중 인터넷.모바일 투표가 가장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당내 일각에서는 모바일.인터넷 투표에서는 문 전 대표가 유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12년 경선 때도 모바일 투표가 불공정했다며 손학규 후보가 문제제기를 해 논란이 크게 일기도 했다. 당시 민주당에서는 특정인이 인터넷 카페지기와 아르바이트생 등을 동원하고 대량 메시지를 살포해 모바일 선거인단을 대량으로 ‘모집’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당시 손학규 김두관 후보 등은 모바일 선거인단의 유효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검증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번에도 당내 유력한 후보들의 경우 전국에 실핏줄처럼 퍼져있는 조직을 총동원해 선거인단 모집을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이번에는 검증단을 두기로 했지만 실효성이 어떨지 아직은 검증이 되지 않는 상태다.




안희정 지사가 현재 여론조사상 좋은 흐름을 타고 있지만 ‘국민의 여론’과 ‘당원의 당심’ 사이의 괴리가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특히 여론조사상 여권성향 지지자들이 안티 문재인 정서에 따라 의도적으로 안 지사를 지지하는 응답을 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 본격화되면 여권의 역선택 문제와 유력후보의 조직적 선거인단 동원 능력 면에서 밀리고 있는 안 지사가 불리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안 지사가 단시간내 문 전 대표가 2012년 이후 착실하게 다져온 전국 민주당 조직을 넘어서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안 지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국민’이다. 민주당에서는 안 지사가 대연정 등의 공격적 아젠다로 보수성향 지지자들까지 끌어모으는 전국적 행보를 벌이고는 있지만 이것이 실제로 민주당 경선의 ‘표’로 연결될지에 대해서는 확신을 못하고 있다. ‘안희정이 좋다’고 응답한 사람들이 실제로 본인인증과 함께 민주당 선거인단 참여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이에 안 지사측은 “예선이 곧 본선”이라며 온 국민의 민주당 경선 참여를 촉구하는 전략으로 선거인당 늘리기를 할 수밖에 없다.


안 지사가 여론조사로 기분은 한껏 낼 수 있지만 그것은 단지 어음일 뿐이다. 경선에서는 결제가 안 된(투표까지는 하지 않는) ‘현찰 부족’으로 석패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2012년 경선 때도 손학규 김두관 후보 등이 지적했던 모바일 투표의 맹점이었다. 이번에도 그 방식은 바뀌지 않았다. 박원순 김부겸 후보는 바로 이런 민주당 경선의 모바일 방식이 전 국민의 뜻을 대변하지 못한다고 지적을 하며 야권 후보들이 모두 참여하는 경선 방식을 요구한 바 있다.


이름은 완전국민경선 방식이지만 한꺼풀 벗겨놓고 보면 민주당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는 게 현재의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방식이다. 이론은 ‘국민’을 포함하는 것이지만 현실적인 제도의 맹점 때문에 결국 ‘당심’에 의해 후보가 결정될 것이란 얘기다. 안희정이 ‘국민’들의 뜻이라면, 문재인은 ‘민주당’의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안희정으로서는 ‘국민 참여’를 최대한 늘려(또는 국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2002 노무현의 광주 경선 기적’을 재현하는 수밖에 없다. 안희정이 경선에서 승리할 정도로 일반국민들의 선거인단 참여가 대거 늘어난다면, 본선도 그 흐름을 그대로 탈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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