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12일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


김일성과 김정일의 커다란 사진 아래 14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김정은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국무위원회의 단체 사진이다. 얼핏 보면 가족사진처럼 보이기도 하고, 미국 백악관을 배경으로 한 미국드라마 ‘웨스트 윙’의 한 장면 같은 느낌도 난다.


2019년 4월에 구성된 제 2기 북한 국무위원회 사진이다.


국무위원회는 2016년 6월 29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3기 4차 회의에서 신설된 국가 주권의 최고 정책적 지도기관이다. 북한의 경제, 사회, 문화 등 대내 문제뿐 아니라 외교와 안보, 통일까지 아우르는 포괄적 정책결정기구다. 위원장과 부위원장, 위원들로 구성되는데, 이번 2기 국무위원회는 김정은 위원장을 포함해 모두 14명이다.


이 사진에서 유독 눈에 띄는 인물은 홍일점 최선희.


두 달 전인 2019년 2월 28일 심야 하노이의 한 호텔. 북미 정상회담 결렬 뒤 전 세계 기자들에게 비상을 걸었던 북한 기자회견 때 대표로 참석했던 바로 그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다.


“수뇌회담을 옆에서 지켜보니 국무위원장 동지께서 미국식 계산법이 잘 이해가 안가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식의 거래에 대해 조금 의욕을 잃지 않으시지 않았는가 하는 느낌을 제가 받았습니다.”


당시 최선희 부상은 김정은 위원장의 심경을 헤아리고 대변하는 발언으로 관심을 끌었다.


1964년 8월 생으로 올해 나이 55세.


최선희는 김일성 책임서기를 지낸 최영림 북한 내각 총리의 수양딸로 알려졌는데, 평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중국, 오스트리아 및 몰타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해외 유학 때의 경험으로 영어를 수준급으로 구사하며, 1980년 외무성에 입부한 뒤 대미 외교를 주로 담당했다.


2008년까지 진행된 북핵 6자 회담에서는 북한 수석대표의 통역을 맡았으며 2010년엔 외무성 북아메리카국 부국장으로 발탁됐고, 그해 6자 회담 북측 차석대표로 다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016년 외무성 국장이 된 최선희는 2018년 외무성 부상으로 승진한데 이어, 2019년 올해 외무성 제 1부상으로 사실상 외무성 최고 실세가 됐다. 그리고 이번에 북한 권력의 핵심인 국무위원회까지 진입했다. 장관급인 국무위원들 사이에서 그녀는 차관급인데, 이는 그만큼 김정은의 신임이 두텁다는 걸 반증한다.


흥미로운 건 최선희가 통역 업무를 담당하면서 모셨던 북한 대미 외교의 베테랑 김계관 제1 부상의 자리를 이번에 물려받았다는 것이다. 북한 외교의 기둥으로 2016년 사망한 강석주와 김계관 제1부상의 뒤를 잇는 명실상부한 후계자로 인증을 받은 것이다. 또 김정은이 최선희를 발탁함으로써 북한 대미 외교의 세대 교체도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이다.


한 대북 소식통은 “최선희에게는 두 명의 아버지가 있는데, 업무상의 아버지가 김계관, 수양 아버지가 최영림 전 내각 총리”라며 “이제 최선희가 아버지들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 언론이 전하고 있다. 또한 6자회담에서 그녀를 본 적이 있는 외교 소식통이 한 언론에 “최선희가 김계관의 말을 단순히 옮기는 게 아니라 전략적으로 수정해서 발표하곤 했다”고 말할 정도이니 이번 그녀의 발탁이 더욱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외교 올드보이를 무대 밖으로 내리고 대미외교 전면에 화려하게 등장한 최선희.


김정은 심경을 대변하는 그녀의 외교 전략은 김정은 위원장의 최고인민회의 시정 연설에서 그대로 옮겨졌다.


김정은 위원장 연설 한 토막.


“우리도 물론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을 중시하지만, 일방적으로 자기의 요구만을 들이먹이려고 하는 미국식 대화법에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고 흥미도 없다…하노이 조미수뇌회담과 같은 수뇌회담이 재현되는 데 대해서는 반갑지도 않고 할 의욕도 없다”


최선희 부상이 하노이 회담 결렬 직후 김정은의 심경을 대변하면서 발표했던 표현 대부분이 그대로 김정은 연설에 녹아 있는 것이다.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북한과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은 조건에서 제3차 북미정상회담을 한다면 한 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고 밝힌 북한.


미국에 대해 새로운 길을 촉구하는 북한의 외교 전략 최전선에 최선희 제 1 부상이 서 있다.



김연/통일전문기자


김연 통일전문기자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10여년동안 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이슈를 취재했다. 지금은 모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북한정세와 남북관계 관련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인동의 시절에 꽃피는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저작권자 © 피처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