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KBS 화면 캡처



①‘수행 못하고 2선 후퇴’ 김영철


2019년 4월 24일 북한 조선중앙 TV. 남성 아나운서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린다.


“우리 당과 국가, 군대의 최고 영도자이신 김정은 동지께서 로씨야 련방을 방문하시기 위하여 4월 24일 새벽 전용렬차로 출발하시였습니다. 당 부위원장들인 김평해 동지, 오수용 동지, 외무상인 리용호 동지, 총참모장인 리영길 동지, 외무성 제1부상인 최선희 동지와 당중앙위원회, 국무위원회 성원들이 함께 떠났습니다.”


없다. 김영철이 빠졌다.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공개된 TV화면 어디에서도 김영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북한 김정은이 하노이 노딜 이후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는 러시아 방문길에 대남 전략과 북핵 협상을 총괄했던 오른팔 김영철 부위원장이 수행에서 빠진 것이다. 


폼페이오와 고층 빌딩에서 식사를 하며 뉴욕을 발 아래에 두고 바라봤던 김영철. 뉴욕에서 워싱턴까지 차로 4시간 남짓 거리를 달리면서 미국의 도심과 목가적 풍경 모두를 목도 했을 김영철. 세계 초강대국 미국의 심장 백악관에 들어가 김정은의 흰색 대봉투 친서를 트럼프에게 어색하지만 직접 전달했던 김영철. 


서훈 원장, 폼페이오 장관과 함께 남북미 스파이 라인을 구축해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의 판을 짰던 김영철이 북핵 협상의 뒷전으로 물러났다. 때마침 국정원은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김영철에서 장금철로 교체됐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일각에서는 하노이 노딜에 대한 문책성 경질이라는 분석도 내놓는다. 


북한이 제 2기 국무위원회 출범 때 공개한 사진을 보면 김영철은 김정은 바로 뒷줄 정중앙에 위치해 위상을 뽐내고 있다. 김영철은 여전히 당 부위원장에다 국무위원직 등을 겸하고 있어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번 김영철의 북핵 협상 2선 후퇴는 김정은이 향후 대외 관계를 대남라인과 대미 라인으로 명확히 구분하려는 의도로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대남 라인은 기존 통일전선부가 담당하고 대미 핵 협상은 최선희로 대표되는 외무성 라인이 전담하는 것이다. 새로 임명된 통전부장 장금철이 아태 평화위에서 대남 교류에 잔뼈가 굵고 김영철 아래에서 통전부 부부장을 한 인물인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특히 대미 핵 협상은 최선희가 전면에 나서면서 미국에 대해 새로운 협상 틀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 외무성 관리가 북미간 핵 협상에서 “폼페이오를 배제하라”는 당돌한 요구를 한 것을 감안하면 당분간 북한은 북미 직접 협상을 요구하면서도 새로운 협상 구조를 설계해 교착 국면을 돌파하려는 의지를 보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이 6자회담 재개를 통해 영향력 확대를 원하는 러시아의 희망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인민군 말단에서 80년대 남북 대화에 얼굴을 내밀면서 자수성가해 권력 최측근에 오른 김영철. 남북미 스파이 라인으로 김정은 대외 정책의 전면에 나서고, 스스로를 천안함 폭침의 장본인이라고 칭할 정도로 저돌적이었던 김영철이 하노이 노딜로 일단 일선에서 한발 물러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 사진=SBS 뉴스 캡처



② 평양을 지키는 ‘오뚝이’ 최룡해 


언제나 그렇듯 최룡해는 김정은 해외출장을 열렬히 배웅한다. 


남성 아나운서의 힘찬 육성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들인 최룡해 동지, 박봉주 동지를 비롯한 당과 정부, 무력기관의 간부들이 최고령도자 동지를 환송하였습니다. 이들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동지께서 외국방문의 길에서 안녕히 돌아오시기를 충심으로 축원하였습니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직책을 담당하게 된 최룡해. 과거 북한의 대외 수반 김영남이 가졌던, 상징성이 매우 큰 자리이다. 게다가 최룡해는 국무위원회 제 1부위원장도 겸직해 명실상부 북한의 2인자가 됐다.


시쳇말로 팔자가 센 최룡해는 북한판 오뚝이다. 


아버지 최현은 김일성의 동지이자 충신으로 북한에서 인민무력부장을 지낸, 북한식 표현대로 혁명 1세대이다. 그런 아버지 덕에 잘나가던 최룡해는 사로청 비서 시절이던 1998년 이른바 ‘부화방탕한 생활’로 해임된 뒤 평양시 상하수도 관리 사무소로 쫓겨 간다. 북한판 오렌지 사건이다. 


2003년 당 총무부 부부장으로 다시 등장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번엔 비리 혐의로 2004년에 협동농장에서 혁명화 교육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은 등장과 함께 화려하게 복귀한 최룡해는 2012년 인민군 차수가 되더니 군을 총괄하는 군 총정치국장이 된다. 사실상 권력 2인자로 부상한 것. 하지만 무슨 문제인지 2014년에 황병서에게 밀리더니 2015년 11월 12일에는 지방 협동 농장으로 좌천돼 북한의 이른바 혁명화 교육을 받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사실이라면 혁명화 교육 재수인 셈.


그런 최룡해가 김정은 체제 2기에서 완벽하게 2인자로 우뚝 선 것이다.


2019년 4월 1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추대 경축 보고 대회에 나선 최룡해는 화끈한 충성 맹세를 외쳤다.


“김정은 동지를 전체 조선 인민을 대표하는 최고직책에 높이 모심으로 하여 공화국 정권을 강국 건설의 위력한 정치적 무기로 더욱 강화할 수 있게 되었다.…새로운 만리마 속도를 창조하기 위한 대진군에 총궐기하여 경제 전반을 정비 보강하고 활성화하기 위한 당면한 경제건설 목표들을 반드시 점령하고 나라의 방위력을 세계 선진수준으로 계속 향상시키자."


김정은이 나라를 비울 때 마다 평양에서 국정을 챙기는 최룡해. 


갖가지 시련과 구설수에도 중용되는 이유는 김정은이 백두혈통인 김여정을 제외하고는 가장 믿을 수 있는 혁명 1세대의 후손이라는 점일 것이다. 


김연/통일전문기자


김연 통일전문기자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10여년동안 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이슈를 취재했다. 지금은 모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북한정세와 남북관계 관련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인동의 시절에 꽃피는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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