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만릿길 달려 도착한 ‘개혁·개방’ 베트남


천릿길 아니 만릿길이다.


평양에서 대륙을 지나 3일을 전용열차로 달렸다. 2월 23일 오후 4시 반 평양을 출발해 약 66시간 만인 26일 오전 8시 10분 (한국시간으로 오전 10시 10분) 베트남 국경 동당역에 도착했다. 할아버지 김일성 시대 천리마 정신을 본인 시대에는 만리마 정신으로 개칭하더니 정말로 만 리, 4000km를 넘게 달려 사회주의 형제국 베트남에 도착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 이후 두 번째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베트남을 찾았다.


1950년 수교한 북한과 베트남. 북한은 베트남 전쟁 당시 현금 5000만 달러와 대포, 수송 차량 같은 전쟁 물자를 베트남에 지원하면서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두 나라의 경제적 규모는 1986년 베트남의 개혁개방 정책, 도이머이 추진 이후 급격하게 벌어진다. 1986년 GDP 260억 달러 수준이던 베트남은 개혁 개방 정책으로 2017년 현재 GDP 2400억 달러 수준으로 성장하였고, 세계 40위권의 경제 중진국으로 자리매김했다. 비약적 발전을 한 베트남은 2001년 김영남 북한 상임위원장의 베트남 방문 때 쌀 5000톤을, 2002년엔 쩐득르엉 주석의 방북때 또 쌀 5000톤을 지원했으며 이후에도 수시로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단행했다.


한때 북한이 전쟁 물자를 지원하던 사회주의 형제국 베트남이 눈부신 개혁개방으로 잘사는 나라가 됐고, 그런 나라로부터 식량을 지원받는 신세가 된 것에 북한의 속내가 착잡할 것 같기도 하다. 여전히 GDP 300억 달러 규모에 머무르고 있는 북한, 경제총력 노선을 선포한 김정은이기에 베트남의 경험을 이번 기회에 배우지 않겠느냐는 언론들의 희망 섞인 관측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도착 직후 두문불출하던 북한 대표단 일행이 회담 당일인 27일 오후 2시 40분 베트남 경제 발전의 상징인 하이퐁 산업단지를 찾았다.


방문한 곳은 빈패스트 자동차 공장.


베트남 토종 자동차를 본격 생산할 이곳은 그 자체로 베트남 산업 발전을 상징한다. 이 공장에선 기술과 노동의 집약체인 자동차 생산뿐 아니라 전기 오토바이 출시에 이어 전기 자동차까지 선보일 계획이라고 한다. 북한 대표단은 스마트폰을 만드는 공장 등 IT 산업 시설도 참관했다.


북한 대표단 일행은 이어 베트남의 대표적 관광지 하롱베이를 찾았다. 김정은이 외자 유치와 관광산업 진흥을 위해 야심차게 개발하는 원산갈마 해안 관광지구가 닮고 싶은 세계적인 휴양지이다. 북한 대표단은 이 세계적 관광지가 어떻게 운영되고 지 배우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 산업 시찰에 김정은 위원장 본인은 빠졌다. 리수용 국제담당 부위원장과 오수용 경제담당 부위원장, 김성남 부부장, 현송월 삼지연 관현악단장 등이 시찰에 참가했을 뿐이다.


김정은이 경제 총력 노선 성공을 위해 닮아야 하는 롤 모델을 눈앞에 두고도 참관을 미룬 걸 보면 2차 북미 정상회담의 무게가 그만큼 무겁다는 걸 알 수 있다.





② 260일만의 만남…“내일은 바쁜 하루가 될 것”


2019년 2월 27일 오후 6시 28분.

성조기와 인공기가 각각 6개씩 걸려있는 베트남 메트로폴 호텔 회담장.


굳은 표정의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다가서더니 약 9초간 손을 맞잡는다.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260일 만이다.


1차 회담 땐 두 사람 모두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수인사를 나눴지만 이 날은 조금 달라 보였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은 굳은 표정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탐색전 성격인 첫 번째 만남과 달리 이번 두 번째 만남에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일까?


단독 회담에 앞서 공개한 두 정상의 말 속에는 왠지 모를 가시가 돋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1차 회담은 성공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일각에서는 조금 더 속도를 냈으면 좋겠다며 덜 만족스럽다는 평가도 내 놓는다”고 은근 자락을 깐다.


김정은 위원장은 “불신과 오해의 눈초리도 있고 적대적인 것들이 우리가 가는 길 막으려고 했다.”며 “어느 때보다 많은 고민과 노력, 인내가 필요했던 기간이었던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그동안 진행 상황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시한 걸로도 읽힌다.


하지만 본격 담판을 앞둔 두 정상, 훈훈하게 일합을 마무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은 굉장히 무한한 경제적인 잠재력이 있다. 북한 앞에 놀라운 미래가 펼쳐질 것이고 그걸 고대한다.”며 비핵화 합의 이후에 대한 북한 경제 상황을 장밋빛으로 제시했다. 김정은 위원장 역시 “모든 사람들이 반기는 훌륭한 결과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확신하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화답했다.


약 20분 정도의 단독회담을 가진 트럼프-김정은 두 정상은 저녁 7시10분쯤부터 90분 동안 이른바 친교만찬(social dinner)을 하며 협상을 벌였다. 이 자리엔 북한에선 김영철 부위원장과 리용호 외무상이, 미국에서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멀베이니 비서실장 대행이 동석했다. 이른바 3+3 형식의 정상회담. 두 정상과 핵심 참모들만 참가한 형식이어서 북한 비핵화와 상응 조치를 놓고 심도 있는 대화가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은 지구상에서 흔치 않게 번영하고 있다”며 “북한도 비핵화한다면 매우 빨리 똑같이 될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 하지만 기자들의 잇따른 질문에 속내를 쉽게 내주지 않았다. 특히 ‘한국전쟁 종전을 선언하느냐’는 질문엔 “지켜보자”며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여기에 일본 언론은 이번 회담에서 북한 비핵화에 따른 상응 조치에 합의하더라도 일본은 경협이나 대북 지원에서 빠지겠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는 상황이고 보면, 회담 전망을 예측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특히 미국의 뜻을 거의 거스르지 않는 일본이고 보면, 북-미간 합의가 나오기도 전에 대북 지원에 나설 수 없다며 선을 긋는 의도가 무언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260일 만의 만남에 속을 감춘 채 덕담을 나눈 북미 두 정상, 친교만찬까지 하며 분위기를 잡은 만큼 비핵화와 상응 조치를 놓고 본격 핵 담판을 하게 될 28일은 트럼프 대통령의 말처럼 “아주 바쁜 하루”가 될 것이다.



김연/통일전문기자(북한학 박사)


김연 통일전문기자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10여년동안 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이슈를 취재했다. 지금은 모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북한정세와 남북관계 관련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인동의 시절에 꽃피는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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