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초대 의장 출신이자 당내 86(80년대 학번·60년대생) 운동권 그룹의 대표주자인 이인영 의원이 8일 집권여당의 원내사령탑에 올랐다.

'친문'(친문재인), '실세'로 통하는 김태년 의원과 '원내대표 경선 삼수생' 노웅래 의원을 꺾고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에 당선된 이 의원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선봉에서 이끈 '강성 운동권' 출신의 3선 의원이다.

이 원내대표는 1987년 고려대 총학생회장이자 전대협 초대 의장으로 활약하며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자 전대협 부의장 우상호 의원과 함께 '6월 항쟁' 당시 대학생 시위를 앞장서서 이끌었다.

이 원내대표는 올해로 정치 입문 20년째를 맞았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재야 생활을 오래 하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 창당 당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젊은 피' 수혈 차원의 영입으로 정치권에 첫 발을 들였다.

이 원내대표는 2004년 17대 총선 때 서울 구로갑에서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다. 그러나 18대 총선에서 당시 한나라당 소속 이범래 후보에게 패해 다른 운동권 동료들과 함께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패배에 굴하지 않고 19대 총선에서 재도전, 국회에 재입성한 뒤 20대 총선에서 내리 당선되며 3선에 성공했다.

이 원내대표는 재야 민주화운동의 대부인 고 김근태(GT)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최측근이기도 하다. 'GT의 분신', '리틀 GT' 'GT계의 적장자'라 불렸고, 김 전 의장의 장례식에서는 맏상제 역할을 했다. 당 지도부 경험으로는 두 차례 최고위원을 지낸 것을 들 수 있다.

이 원내대표는 지난 2010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손학규·정동영·정세균 후보 등 '빅3'에 이어 4위를 하며 최고위원으로 당 지도부에 입성했다. 2012년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 한명숙·문성근·박영선·박지원 후보에 이어 5위로 최고위원에 당선, 지도부에 다시 합류했다.

새정치민주연합시절인 2015년 전당대회에서 또다시 당권에 도전, 본선에 올라 당시 문재인·박지원 후보에 이어 3위로 레이스를 마쳤다. 이밖에 민주당 야권통합위원장으로도 활동하며 2010년 당시 당 통합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경험도 있다.

크고 작은 선거를 이끌며 선거판에서의 잔뼈도 굵다. 2011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당시 박원순 후보의 상임선거대책본부장을, 이듬해 대선에서는 당시 문재인 후보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각각 맡아 선거를 진두지휘 했다.

▲ 전대협 초대의장 시절의 이인영 원내대표.

하지만 이후 정치활동이 활발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던 그가 작년 본격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이 원내대표는 지난해 8·25 전당대회에서 '혁신'을 부르짖으며 당권에 도전했지만, 예비경선을 통과하지 못하고 '컷오프' 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다 체급을 낮춰 '변화'와 '통합'이라는 두 키워드를 앞세워 총선 승리의 야전사령관이 되겠다면서 이번 원내대표 선거에 출사표를 던져 승리를 맛봤다.

당내 지지 기반은 GT계가 주축인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와 진보·개혁성향 의원들의 정치행동·정책의견 그룹인 더좋은미래다. 이번 선거에서 친문 사조직 '부엉이모임'의 지지를 받은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 원내대표는 동료 의원들 사이에서 뚝심이 있고 소신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강성 운동권, 원리 원칙주의자 이미지가 약점으로 꼽힌다. 선거 과정에서 이미지 탈피를 선언, 희끗희끗한 머리를 검게 염색하고 의원들과 활발한 소통을 하는 모습을 보여 "우리 인영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평가가 일각에서 나왔다. 이 의원은 정견발표에서도 "발끝까지도 바꾸려고 한다. 정치라는 축구장에서 레프트 윙에서 옮겨 중앙 미드필더가 되겠다"면서 "변화와 통합의 길로 나가야만 총선에서 승리한다"고 말하며 변화 의지를 거듭 밝혔다.

국회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간사를 역임하며 야당과 개헌 논의를 이끌었고, 현재는 남북경제협력특별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여야 협상에 유연히 임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의 앞에는 일단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대치로 장외투쟁에 나선 자유한국당을 상대로 협상력을 발휘해 꽉 막힌 정국을 돌파해 내야 한다는 첫 번째 과제가 놓여 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는 별다른 인연이 없다. 3선을 하면서 같은 상임위를 한 적도 없을 정도로 인연은 없는 편이다. 나이는 나 의원이 한살 더 많고 선수도 나 의원이 4선으로 높다. 나 의원은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지지층 결집을 유도해 대선주자로 순항중이다. 체급 면에서 나 의원이 조금 앞선다는 평가도 있다. 

이 의원은 지난해 당 대표 경선에 나섰지만 예상을 깨고 컷오프 되는 수모를 겪었다. 민주당의 젊은 대선주자급에 속했다고 나름 판단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당내 김근태계가 만만치 않은 세를 형성하고 있음에도 기대에 못미치는 결과를 거두자 대부분 '이인영의 카리스마 부족과 개인역량 부족'이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이 의원도 지난해 당 경선 결과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번에 원내대표로 방향을 바꿨고, 선거운동 기간 내내 철저하게 동료 의원들에게 몸을 낮췄다. 50대 3선을 한 젊고 가능성 있는 정치인으로 주목받았던 것에 본인이 안주하면서 그만의 색깔과 강점을 잃어버렸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 원내대표 선거기간 동안 이 의원은 철저하게 변하려고 했다. 지난해의 실패가 그의 정치인생을 되돌아보게 한 것이다. 민생에만 주력할 수 있다면 정국 주도권을 한국당에 내줘도 된다고 할 만큼 현 정국에 대한 해결 의지를 강하게 보이고 있다. 이른 '통합' 전략은 개혁 선명성을 강조하는 청와대와 일정한 갈등을 일으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일각에서는 '친문'이 아닌 GT계가 원내대표에 올랐다는 점에서 내년 총선의 공천경쟁도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하는 사람도 있다. '친문 좌장'격인 이해찬 당 대표는 청와대 출신 신인들을 중심으로 개혁공천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잘 알고 있는 현역의원들이 그 안전판으로 친문이 아닌 이 의원을 원내대표로 옹립했다는 것이다. 이는 이 대표가 공천권을 무리하게 행사할 경우 이인영 원내대표와 필연적인 갈등을 일으킬 것을 암시한다. 

이 원내대표는 인삿말에서 "이해찬 대표님 옆에 앉아 이해찬 대표님을 보좌하니 너무 기쁘고 옛날 생각이 난다. 잘 모시고 멋진 민주당의 모습을 만들 수 있도록 헌신하겠다"며 한껏 몸을 낮췄다. 20대 국회 4기 마지막 원내대표로 당선된 이인영 의원에게는 총선이 일생일대의 마지막 기회다. 그것도 '자기 정치'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가 지금 몸을 낮추고 있지만, 청와대 나팔수로 임기를 마치지는 않을 것이다. 원내대표라는 도약대를 '혼자 힘으로' 얼마나 힘껏 밟느냐에 따라 대선의 착지점도 그만큼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임석우 기자